[아무튼, 주말]
[김기철의 라르고]
예술도시 獨 드레스덴을 가다
드레스덴은 프로이센·바이에른과 독일의 패권을 놓고 힘겨루던 작센 공국 중심지였다. 세계사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강건왕’ 아우구스투스(1670~1733)가 예술 도시 드레스덴의 기틀을 닦았다. 개신교인 루터 교회가 압도적인 이 도시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까지 외교 수완을 발휘해 폴란드 왕을 겸했다. 츠빙거궁과 레지덴츠궁을 새로 짓거나 보수했고, 유럽의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을 불러 모았다. 화려한 보석과 예술품 수집에 심혈을 기울였다.
당시 최고 하이테크 상품이던 중국 도자기 수집에도 온 힘을 쏟았다. 프로이센에 근위병 600명을 빌려주고 도자기를 받아올 정도였다. 드레스덴 인근 마이센에서 유럽 최초로 자기 제작에 성공했다. ‘하얀 금’으로 불릴 만큼 귀한 자기 판매와 거래를 통해 드레스덴을 부와 권력의 중심지로 키워냈다. 츠빙거와 레지덴츠를 가득 채우고 있는 그림과 조각, 보석, 도자기는 모두 아우구스투스 덕분에 가능했다.
드레스덴 도심을 에워싸고 흐르는 엘베강가에 자리잡은 젬퍼 오페라. 1841년 개관한 드레스덴의 심장이다. /semper oper/Matthias Creutzig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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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가 초연 지휘한 젬퍼 오페라
예술 도시 드레스덴의 아이콘은 엘베강변에 자리 잡은 젬퍼 오페라 극장이다. 1841년 독일 건축가 고트프리트 젬퍼 설계로 완성된 이 궁정 극장은 화려하면서도 세련된 스타일로 유명하다. 바그너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과 ‘탄호이저’, 슈트라우스의 ‘살로메’ ‘엘렉트라’와 ‘장미의 기사’가 초연된 곳이다. 바그너가 직접 ‘방황하는 네덜란드인’과 ‘탄호이저’ 초연을 지휘했다. 독일 낭만 오페라의 최고봉 ‘마탄의 사수’를 작곡한 카를 마리아 폰 베버가 궁정 악장을 지냈고, 바그너가 뒤를 이었으니, 가장 독일적인 음악가와 음악을 키워냈다는 명성을 들을 만하다.
2차 대전 막바지인 1945년 2월 13~15일 미국과 영국 연합군 폭격기가 드레스덴을 강타했다. 2만5000명의 시민이 죽었고 오페라 극장도 불에 탔다. 40년 만인 1985년 재개관작으로 ‘마탄의 사수’를 올리면서 부활했다. 쿠르트 잔데를링,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 주세페 시노폴리,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파비오 루이지, 크리스티안 틸레만 등 쟁쟁한 지휘자들에 이어 작년부터 다니엘레 가티가 이끌고 있다.
정명훈·강효정 등 한국 예술가 활약
젬퍼 오페라는 우리와도 관련이 많다. 이 극장 오케스트라는 1548년 창단된 궁정 악단까지 거슬러 올라가 유럽 최고(最古)악단으로 꼽힌다. 오페라 연주 이외에 오케스트라로 활동할 때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로 불리는데, 정명훈이 2012년부터 수석 객원지휘자로 호흡을 맞춰왔다. 지난 1월 한국 투어를 비롯, 아시아 투어 때 단골로 지휘를 맡는다. 테너 김우경, 바리톤 양준모, 지휘자 김은선 등이 젬퍼 오페라 무대에 섰다. 발레단에는 지난해 하반기 빈 국립발레단에서 옮긴 수석 무용수 강효정을 비롯, 제2 솔리스트 정서현과 김수민이 활약하고 있다.
작년 4월 젬퍼 오페라에서 만난 푸치니 ‘토스카’는 최고의 출연진과 오케스트라가 빚어낸 호연이었다. 올해 마흔여덟 살 동갑내기인 이탈리아 소프라노 마리아 아그레스타는 몰타 출신 테너 조셉 칼레야와 연인으로 나서 사랑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토스카를 격정적으로 소화했다. 마르코 아르밀리아토가 이끈 젬퍼 오페라 오케스트라는 독일 레퍼토리는 물론 이탈리아 오페라에도 능숙했다. 이태 전 본 벨리니 ‘몽유병 여인’도 만족스러웠다.
스웨덴 출신 안무가 요한 잉거가 새로 만든 차이콥스키 발레 ‘백조의 호수’는 뜻밖의 경험이었다. 고전 발레를 완성한 전설적 무용가 마리우스 프티파의 우아한 안무를 떠올렸다가 순백색 튀튀를 입은 백조 대신 트레이닝복 같은 옷을 입고 달음박질하거나 고함치는 무용수를 만나 깜짝 놀랐다. 프티파의 ‘백조의 호수’를 현대적 시각으로 비튼 작품이다. 젬퍼 발레단원인 정서현이 주연급 오데트 역으로 전격 데뷔해 주목받았다.
다니엘레 가티의 야심작, ‘파르지팔’
젬퍼 오페라는 2025~2026 시즌 신작 오페라 8편과 발레 4편, 그리고 레퍼토리 29편을 포함, 모두 292회 공연한다. 여름휴가를 제외하면 거의 매일 오페라·발레를 올린다. 베르디 ‘팔스타프’로 시즌 개막 프로그램을 시작한 가티는 이번 달 바그너 ‘파르지팔’을 네덜란드 출신 플로리서 비저 연출로 야심 차게 내놓는다.
젬퍼 오페라극장에서 600m 떨어져 있는 문화궁전(Kultur Palast)은 드레스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주홀이다. 2017년 재개관한 문화궁전(1800석)은 음향이 좋기로 소문났다. 콘서트홀 리노베이션 성공 사례로 꼽힐 정도다. 1870년 창단된 드레스덴 필하모닉은 쿠르트 마주어, 마렉 야노프스키, 미하엘 잔데를링을 거쳐 작년부터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 음악감독 출신 도널드 러니클스가 지휘를 맡았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함께 이 도시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로 연간 80회 이상 왕성하게 연주한다.
드레스덴 구도심은 볼거리로 가득하다. 젬퍼 오페라에서 길 하나 건너면 레지덴츠 궁전 외벽에 새겨진 102m 길이의 조각 ‘군주의 행렬’이 나온다. 12세기부터 작센 지역을 다스린 군주 35명의 행진을 조각했다. 마이센 자기를 붙인 조각은 1945년 드레스덴 폭격에도 거의 손상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드레스덴 공습으로 대형 돔이 내려앉은 채 방치됐던 성모 교회는 2005년 재건돼 전쟁의 참화와 화해의 모습을 전한다.
콧수염, 털까지 재현한 ‘도자기 동물원’
젬퍼 오페라 곁에 자리 잡은 츠빙거 궁전의 도자기 박물관은 아우구스투스의 도자기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원숭이와 사자는 물론 독수리·코뿔소까지 모아놓은 ‘도자기 동물원’ 같다. 모양만 닮은 게 아니라 콧수염과 털까지 생생하게 재현해 생동감이 넘친다. ‘고전 거장 회화관’은 라파엘로의 걸작 ‘시스티나의 성모’를 비롯해 렘브란트·루벤스·뒤러까지 걸작으로 가득하다. 특히 ‘편지 읽는 여인’과 ‘뚜쟁이’ 같은 베르메르의 희귀 유화를 만날 수 있다. 한 시간 남짓이면 둘러볼 수 있을 만큼 아담한 규모라서 더 알차다.
봄철의 드레스덴 시장엔 화이트 아스파라거스가 쏟아져 나왔다. 츠빙거 궁전 카페에서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로 끓인 수프와 삶은 감자를 곁들여 구운 아스파라거스를 먹었다. 통통하게 살찐 아스파라거스를 수북이 담은 접시가 풍성했다. 오페라와 고전 명화, 도자기에 화이트 아스파라거스까지 무엇 하나 아쉬운 게 없는 여행이다.
[김기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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