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07 (토)

    강대국에 늘 배신당한 ‘중동의 집시’… 독립 꿈꾸며 또 총을 들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란 지상전 투입되는 쿠르드족

    조선일보

    오랫동안 단일 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중동 지역에 뿔뿔이 흩어져 살아온 쿠르드족은 지난 100년간 독립의 숙원을 위해 열강들의 대리전에 동원돼왔다. 이번 미국·이스라엘-이란전에의 지상전에 참가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진은 2017년 쿠르드족 시리아 민주군(SDF)이 시리아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상대로 전투하는 모습./게티이미지코리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일 로이터 인터뷰에서 쿠르드족이 이란 상대 지상전에 참가하는 상황에 대해 “그들이 그렇게 하려는 것은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전적으로 찬성할 것”이라고 했다. 이라크 쿠르드 민병대가 분쟁 지역에서 자주 쓰이는 도요타 SUV 차량 50대를 구매한 정황도 포착됐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쿠르드족 지도자들과 최근 통화해 “전폭적인 공중 지원”을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작전에 앞서 트럼프에게 쿠르드족 동원을 제안했다고 한다. 미국이 쿠르드 독립국 승인을 미끼로 참전을 요청했을 가능성도 있다. 통일 국가를 가져본 적 없는 쿠르드족 입장에서 독립의 숙원을 이룰 기회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쿠르드족 참전이 과거 여러 차례 열강의 용병으로 동원됐다 배신당한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는 총잡이 용병 아니다”

    지난 100여 년간 쿠르드족이 영국·소련·미국의 대리전에 이용됐다가 뒤통수를 맞은 주요 사례만 최소 일곱 차례다.

    1차대전 당시 영국은 쿠르드족에 “오스만 제국과 싸우면 독립 국가를 세워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1923년 체결된 로잔 조약에는 쿠르드족 국가 건설이 포함되지 않았다. 2차대전 직후엔 소련의 도움으로 1946년 이란 북부에 마하바드 공화국을 세웠지만, 소련이 쿠르드족 지원에 소극적 태도를 취하는 사이 1년도 안 돼 이란에 궤멸됐다.

    조선일보

    그래픽=김현국


    1972년엔 미국·이란의 도움으로 이라크 내 쿠르드 자치정부 수립을 위해 이라크군과 3년 동안 싸웠으나 이란·이라크 관계 개선으로 토사구팽 신세가 됐다. 1987년 이란·이라크 전쟁 때는 이라크 정부군의 화학 가스 공격을 받아 약 18만명(쿠르드족 자체 추산)이 학살당하는 참극을 겪었다.

    1991년 미국은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군을 격퇴한 뒤 사담 후세인 정권 타도를 위해 이라크 쿠르드족의 내부 봉기를 촉구했다. 쿠르드족이 호응해 무장 투쟁에 나섰으나 미국은 군사 지원을 제공하지 않았다. 2003년 이라크전 때도 쿠르드족은 미국을 도와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에 기여했지만 이라크·이란·튀르키예의 견제와 반발로 독립하지 못했다.

    2014년부터는 미군과 함께 이슬람국가(IS)와 싸우며 수만 명이 희생됐다. 이후 쿠르드 자치정부가 국제사회에서 독립 인정을 본격적으로 요구했지만 미국은 이를 외면했다. 2019년엔 트럼프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통화 이후 시리아 북부에서 미군을 철수시켰다. 미군은 사용 가치가 떨어진 쿠르드족을 사실상 방치했고, 쿠르드족은 튀르키예 공격에 그대로 노출돼 큰 피해를 봤다.

    쿠르드계인 이라크 대통령 부인 샤나즈 이브라힘 아흐메드 여사는 5일 성명을 내고 “우리는 고용되는 총잡이가 아니다”라면서 “쿠르드족은 그들의 힘이나 희생이 필요할 때만 기억된다”고 했다.

    ◇쿠르드족, 이란 분열 씨앗 될까

    쿠르드족이 겪은 비애의 배경에는 오랫동안 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흩어져 살아온 역사가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나라 없는 민족’으로 불리는 쿠르드족은 3000만~4000만명 규모다. 기원전 3세기부터 중동 일대에서 고유의 언어와 생활 양식을 지키며 살아왔다. 오스만 제국 시절을 포함해 오랫동안 ‘쿠르디스탄(쿠르드족의 땅)’이라고 불리는 지역에 밀집해 살았다. 이란·튀르키예·이라크·시리아·조지아·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등에 걸친 쿠르드족 분포 지역을 합치면 튀르키예 국토에 맞먹는다. ‘중동의 집시’라는 별명도 있다.

    튀르키예에 1500만~2000만명, 이라크에 800만명, 이란에 1000만명가량이 거주한다. 이란에 사는 쿠르드족은 이란 인구(9300만명)의 10% 안팎을 차지한다. 이란은 페르시아 정체성으로 국가를 형성했지만 페르시아인 비율은 61% 안팎이다. 이에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라크 쿠르드족을 동원해 이란 내부에 혼란을 일으키고, 이란 내 쿠르드족의 호응을 얻어 이란 북부에 이스라엘에 유리한 ‘완충 지대’ 조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리=원선우 특파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