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환 산업부 차장
실제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관세정책을 강행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이 여럿 남아 있다. 미 국가 안보 위협을 명분으로 관세 부과를 허용하는 ‘무역확장법 232조’가 대표적이다. 해당 조항은 과거 철강·알루미늄·자동차 등에 대한 관세 부과의 근거로 활용된 바 있다. 불공정 무역 관행을 이유로 보복 관세를 허용하는 ‘무역법 301조’ 역시 강력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시절 이를 무기로 중국산 4000여 개 품목에 대해 최대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이 같은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하다. 눈에 불을 켜고 관세를 인상할 방법을 찾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꼬투리 잡힐 만한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대미투자특별법(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안)’ 입법 지연이 좋은 예다. 한미는 지난해 11월 한국산 수출품에 부과되던 25% 대미 수출 관세율을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의 미국 내 대규모 투자와 산업 협력을 약속하는 ‘한미 전략적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MOU)’에 서명했고 여당은 합의 이행을 위해 대미투자특별법을 국회에 발의했다. 하지만 법은 예산 논의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청문회 등을 이유로 두 달 넘게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관세 25% 복귀를 선언하는 빌미를 줬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으름장 이후에도 대미투자특별법이 처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는 대미투자특별법 처리를 위해 즉각 대미투자특별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여당의 ‘사법 개혁 3법’ 강행 처리 등 문제로 활동에 차질을 빚어왔다. 여야가 국정 운영과 정책 방향성을 두고 논쟁을 벌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할 일은 해야 한다. 이견도 없고 처리도 시급한 안건을 질질 끌 이유가 없다.
대미 관세가 인상되면 기업의 손익은 물론 국내 제조업 전반의 고용 구조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액은 1229억 달러(약 182조 5000억 원)에 달했다. 이를 기준으로 관세율이 15%에서 25%로 인상되면 추가 비용은 18조 원에 이른다. 이 중 중소기업의 몫이 2조 7000억 원가량이다. 중소기업은 가격 협상력이 약해 관세 부담을 전가하기 어렵고 수출 시장 다변화도 어려워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다.
대미투자특위의 활동 시한은 9일까지다. 이날 대미투자특별법이 의결되지 않으면 또 한 차례 홍역을 치러야 한다.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특별법을 처리하겠다는 약속이 더는 늦어져서는 안 된다.
유민환 기자 yoogiz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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