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소모형
“마음은 입체라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어”(‘신비의 문’). 신원경의 첫 시집 ‘축소모형’(문학과지성사)은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히 놓치고 지나간 마음의 세계를 향해 다정한 스위치를 켜는 시적 장치다. 시인은 눈에 잘 띄지 않는 희미한 세계의 숨결을 채집하여 우리 앞에 담백하고 무궁한 모형의 세계를 펼쳐놓는다.
이곳은 박제된 풍경이 아니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어느 날에는 식민지였으며/어느 날에는 잘 다듬어진 공원”(‘축소모형’)으로 변모하며 시간의 겹을 재구성하는 가변적인 지형도다. 시인은 이 작은 세계를 통제하는 건축가가 되기를 거부한다. 오히려 “무언가를 만들다 보면 함께 태어나는 죽은 자들이 있고 그와 동시에 몸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영혼이 있다”(‘넘어간 공’)는 사실을 응시하며, 일상 아래 숨겨진 유령 같은 존재들에게 자리를 마련해준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구현하려 “실을 쌓고 무너뜨리고/다시 쌓는”(‘동족포식’) 시선에는, 잊히기 쉬운 것들의 역사에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애정이 담겨 있다.
이 시집에서 가장 빛나는 지점은 ‘익명성’이 ‘다정한 연대’로 치환되는 순간이다. 시인은 아는 이들의 친밀함보다 “정말 좋은 그림자들이었어/잘 모르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후숙’) 풍경을 더욱 신뢰한다. 이렇게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름을 구상하”거나 “모르는 언어/모르는 손짓”(‘전도와 대류’)을 구사하는 타자를 발견하는 과정은, ‘모름’의 틈새에서 새로운 ‘우리’의 형식을 발명하려는 시인만의 다정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이처럼 ‘축소모형’은 타자의 흔적을 껴안는 불투명한 온기의 기록이다. 새의 자국이 몸에 닿아 “불투명해지는 과정이//따뜻하다”(‘굴절률’)고 노래하는 시인은 명징한 이해보다 뭉개진 흔적에서 더 큰 위안을 발견한다. “빙하가 녹아내리는 중에도/공평히 내리쬐는 햇볕의 온도를 나누기 위해 손바닥을 섞는”(‘소등’) 이들의 모습은 절망의 시대에도 우리가 왜 여전히 서로를 상상하고 손을 잡아야 하는지 일깨운다. 시인이 제공하는 다정한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우리는 영영 초면일 줄 알았던 타인의 얼굴을 발견하는 가장 따뜻한 “첫 번째 발견자”(‘재앙과 복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강동호 문학평론가 |
[강동호, 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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