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25% 쏟아부은 안정호 대표의 결단
과학의 홍수 속 '본질'로 승부한 시몬스
그래픽=비즈워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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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광고]는 우리나라 식품유통업계의 광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광고들을 소개하고 그 뒷 이야기들을 펼쳐보는 콘텐츠입니다. 꼴찌 브랜드를 단숨에 1위로 만든 '최고의 광고'부터 잘 나가던 브랜드의 몰락을 불러온 '최악의 광고'까지, '광고의 정석'부터 '광고계의 이단아'까지. 우리의 인상에 남았던 여러 광고 이야기를 나눠 볼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추억의 광고는 뭔가요? 혹시 이 광고 아닌가요.[편집자]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이 묵직한 볼링공을 들고 나타난다.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볼링공이 일반 매트리스 위로 떨어진다. 옆에 세워둔 볼링핀들이 '와르르' 소리를 내며 맥없이 무너진다. 연구원은 자리를 옮겨 다시 볼링핀을 세운다. 이번에는 시몬스의 '포켓스프링' 위다. 다시 한번 투하된 볼링공. 하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10개의 볼링핀은 어떤 충격도 받지 않은 듯 단 하나도 흔들림 없이 제자리에 서 있다. "세계 특허 시몬스 포켓스프링의 자랑,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광고는 끝이 난다.
침대 매트리스를 비추며 끝나는 이 20초짜리 영상은 1995년 등장한 시몬스 침대 광고의 한 장면입니다. 매트리스 위로 떨어진 묵직한 볼링공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라는 카피는 지난 30년간 시몬스를 정의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제품의 스펙을 읊는 대신 '현상'을 보여준 광고 방식은 대한민국 광고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았습니다. 30년 전 침대 위로 떨어진 이 볼링공 한 알이 어떻게 대한민국 침대 광고의 패러다임을 바꿨을까요. 시몬스를 침대업계 1위로 올려놨던 광고의 서사를 따라가 봤습니다.
본질을 말하다
1990년대 중반. 대한민국은 아파트 보급이 급물살을 타며 침대 시장이 매년 25%씩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안방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기업들의 광고 전쟁은 흡사 대학 강의실을 방불케 했습니다.
에이스침대가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며 포문을 열자, 경쟁사는 "침대는 의학"이라며 척추 전문의까지 동원했습니다. 너도나도 어려운 기술 용어를 쏟아냈죠. 급기야 '사신 지 5년이 넘었다면 녹슨 스프링 위에서 잔 것'이라는 자극적인 비방 광고까지 판을 쳤습니다.
이 혼돈의 시기에 마케팅의 패러다임을 바꾼 인물은 안정호 시몬스 대표였습니다. 당시 미국에 머물던 안 대표는 평소 기발한 해외 광고가 나오면 비디오테이프에 일일이 녹화해 한국으로 보낼 만큼 마케팅 감각이 남달랐습니다. 그는 시몬스의 상징이 된 '볼링공 실험'을 직접 기획해 들여왔는데요. 그는 백 마디 말보다 눈으로 보여주는 한 번의 실험이 더 강력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시몬스 침대 지면 광고/사진=시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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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행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시몬스의 연 매출은 200억원 수준이었습니다. 안 대표는 선친을 설득해 매출의 25%에 달하는 50억원을 광고비로 책정했습니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승부수를 던진 셈이죠.
매트리스 위에 세워둔 볼링핀 옆으로 육중한 볼링공이 떨어지던 순간, 시청자들은 숨을 죽였습니다. 하지만 핀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죠. 개별 독립 지지력을 갖춘 '포켓스프링' 기술을 시각적으로 입증한 순간이었습니다. 뒤이어 흐르는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라는 카피는 '과학'이나 '의학'이라는 단어보다 훨씬 더 깊게 소비자들의 뇌리에 박혔습니다.
방송 3사의 프라임타임에 집중 배치된 볼링공 광고는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10%대였던 시몬스의 시장 점유율은 수직 상승했죠. 소모적인 기술 논쟁에 휘말렸던 브랜드 이미지는 단숨에 '기술력을 가진 프리미엄 브랜드'로 격상됐습니다. 90년대 중반 이후 시몬스는 고가 라인업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며 혼수 침대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1990년대 시몬스 침대 지면 광고/사진=시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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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매출만 오른 것이 아닙니다. 시몬스는 이 광고를 통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정립했는데요. 경쟁사가 새로운 기능으로 공격해 올 때도 시몬스는 흔들리지 않고 '편안함'이라는 본질에만 집중했습니다. 이는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 등 유통 채널에서도 시몬스가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또한 이 광고는 한국 광고계에 '비주얼 팩트'의 중요성을 각인시켰습니다. 과장된 수식어보다 직관적인 실험 하나가 소비자의 구매 결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증명한 교과서적인 사례로 남았습니다. 1995년 당시 200억원이었던 시몬스의 매출은 2023년 3000억원 시대를 열며 약 15배에 달하는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그날의 50억원이라는 과감한 투자는 오늘날 시몬스를 전혀 다른 체급의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계기가 된 셈이죠.
침대 없는 침대 광고
시몬스는 2018년을 기점으로 완전히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까지 시몬스 광고는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독립 스프링, 안정감 같은 기능적 메시지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2018년 이후, 시몬스는 '기능' 대신 '감각'을 선택했습니다. 제품에 대한 설명은 싹 지우고 브랜드만 남는 광고를 선보였는데요. 말 그대로 '침대 없는 침대 광고'의 시대가 시작된 셈이죠.
2019년 시몬스 광고에서 '편안함'이라는 감정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수영장이나 숲을 배경으로 편안하게 누워있는 모델들과 감각적인 배경음악, 툭 던져지는 브랜드명. 시몬스는 제품의 스프링 구조를 보여주는 대신, 회사가 지향하는 '휴식의 결'을 영상미로 풀어냈습니다.
이는 제품의 스펙보다 브랜드가 주는 이미지와 감정을 중시하는 '감각 소비 시대'의 흐름과 정확히 맞물렸습니다. 시몬스의 침대 없는 광고 3편은 2020년 '제17회 서울영상광고제'에서 은상을 거머쥐게 됩니다.
이후 시몬스는 단순한 가구 회사를 넘어 하나의 '문화 플랫폼'으로 진화했습니다. 2020년에는 '매너가 편안함을 만든다'는 공익적 메시지로 MZ세대와 소통했고, 2022년에는 '멍 때리기'를 주제로 한 '오들리 새티스파잉 비디오(OSV)' 시리즈를 선보였습니다.
오들리 새티스파잉 비디오(OSV)/사진=시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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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질감, 반복, 여백을 통해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 이 영상은 코로나 시대 지친 대중을 위로했습니다. 침대를 팔기보다 '편안한 상태'를 선물한다는 그들의 전략은 적중했습니다. 이 영상의 유튜브 조회수는 무려 2300만회를 기록하며 강력한 팬덤을 형성했죠. 해당 영상은 2022년 '대한민국 광고대상'에서 TV영상 부문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시몬스 광고는 다시 '정공법'으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2023년 공개된 'Made by SIMMONS' 캠페인은 오랜만에 제품을 주인공으로 세웠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성능 자랑이 아닙니다. 난연 매트리스, 청결 생산 공정, 극한의 R&D 테스트 등 '건강과 안전'이라는 시대적 가치를 강조합니다. 4톤에 달하는 실제 테스트 장비를 촬영장에 동원하는 집요함은 30년 전 볼링공을 던지던 그 시절의 열정과 닮아있습니다.
비디오테이프를 녹화하던 안 대표의 안목에서 시작된 이 여정은 단순한 외형 성장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시몬스는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라는 약속을 유지하기 위해 경기 이천에 1115억원을 투입한 자체 생산 시스템 '시몬스 팩토리움'과 수면연구 R&D센터를 구축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지금도 매트리스의 내구성을 확인하기 위해 10만번의 롤링 테스트와 광고 속 장면을 재현한 낙하 충격 테스트가 매일같이 반복됩니다. 과거의 광고가 '기발한 아이디어'였다면, 지금의 시몬스는 국가 공인 기준보다 더 까다로운 1936가지 품질 관리 항목을 고집하며 그 약속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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