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6 (월)

    이슈 경찰과 행정안전부

    법왜곡죄 시행에 난감한 경찰...“별도의 판단 부서 만들어야 할 수도”[채민석의 경솔한이야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사법기관 법해석까지 따져야

    법왜곡의 법왜곡도 수사해야

    실질적 사건처리기간↑ 우려

    경찰이 법왜곡죄 고발 될수도

    “법왜곡 판단처 필요” 자조도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법왜곡죄를 마주한 경찰이 딜레마에 빠졌다. 사법기관인 검찰과 법원이 고도의 법 해석을 거쳐 판단한 사안을 경찰이 다시 그 판단 근거부터 따져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찰이 법왜곡죄로 고발된 사안을 송치하지 않기로 결정할 경우, 자신 역시 법왜곡죄로 고발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경찰 내부에서는 ‘법왜곡죄 판단처’를 따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웃지 못할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이달 12일 법왜곡죄를 골자로 한 형법 일부개정법률이 전자관보를 통해 공포돼 즉시 시행됐다. 지난달 26일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17일 만이다. 법왜곡죄는 형법 제123조의2에 규정돼 있다. 조문은 ‘형사사건의 재판에 관여하는 법관, 공소를 제기하거나 유지하는 검사, 또는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가 타인에게 위법 또는 부당하게 이익을 주거나 권익을 해할 목적으로 재판 또는 수사 중인 형사사건에 관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경우에는 10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문제는 ‘법을 왜곡했다’고 볼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법왜곡죄의 처벌 대상은 ‘법령의 적용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이를 적용하거나, 적용돼야 할 법령임을 알면서도 이를 적용하지 않아 의도적으로 재판 및 수사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경우’다. 하지만 실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고의로 법을 왜곡했다는 점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으로 경찰은 판사들을 상대로 쏟아질 수 있는 법왜곡죄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 안 그래도 경찰은 사건을 수사할 때 적용 법조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치밀한 법리 해석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법왜곡죄 사건은 특정 사건에 대한 법원과 검찰의 법 해석 근거까지 다시 따져야 해 부담이 더 크다는 것이다. 여기에 사건을 송치하지 않거나, 송치하더라도 기소로 이어지지 않거나, 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되거나, 처벌 수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등 사실상 모든 판단 단계에서 다시 법왜곡죄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작은 사건도 종결되지 못한 채 계속 이어지면서 실질적인 사건 처리 기간이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정치권 관련 사안의 경우, 유죄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판사·검사·경찰을 상대로 법왜곡죄 고소·고발을 반복하며 ‘시간 끌기’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찰 자신이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현재는 법왜곡죄 도입의 발단이 된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 재판과 관련해 조희대 대법원장 등 법조계 고위직을 상대로 한 고소·고발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건을 가장 먼저 접하는 경찰에게도 그 칼끝이 향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경찰 내부에서 새어 나오고 있다. 특정 사건을 송치하지 않았을 때는 물론, 법왜곡죄 수사 과정에서 내린 경찰 판단이 고발인이나 피고발인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경찰을 다시 법왜곡죄로 고소·고발하는 일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경찰은 결국 소극적으로 법을 집행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법왜곡죄와 관련한 선례나 판례가 아직 없는 데다, 섣불리 적극적으로 법리를 해석했다가 수년간 수사를 받으며 업무에 지장을 겪거나 승진 누락 등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부 정치적 사안에서는 경찰이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도록 사안별로 지나치게 몸을 사리거나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찰 내부에서는 ‘법왜곡, 법왜곡의 법왜곡, 그 법왜곡의 법왜곡까지 따져야 하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 뻔한데, 아예 법왜곡죄만 판단하는 조직을 따로 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온다. 한 고위급 경찰관은 “일각에서는 ‘법에 따라 공정하게 집행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어차피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오면 공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것 아니냐”며 “누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정 원하면 나를 고발하라’고 하겠느냐. 결국 소극적으로 법을 집행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일선 경찰서 경찰관도 “안 그래도 경찰·검찰·판사의 판단에 불만을 품는 경우가 많은데, 정치적 사건뿐 아니라 일반 사건에서도 법왜곡죄를 문제 삼는 일이 많아질 것”이라며 “한 사건 안에서도 법왜곡죄를 주장할 수 있는 지점이 너무 많아, 아예 법왜곡죄만 전담해 수사하는 조직이 생겨도 모자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채민석 기자 vegemin@sedaily.com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