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건네는 따듯한 선물이다.
며느리와 사부인이 여행을 떠났다.
같은 장소라도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여행의 빛깔이 달라진다.
꽃밭의 여인이 되어 놀멍쉬멍 바다를 바라보고, 분위기 있는 카페에 앉아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마시고 싶단다.
시집간 딸이 친정어머니와 사흘 밤 나흘을 함께 보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아기가 엄마만 찾기 전,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하기 전, 서둘러 다녀오라며 며느리의 등을 떠밀었다.
사부인께 전하는 작은 감사의 마음, 그것이 내가 보낸 두 여인의 여행이다.
서로의 시간을 내어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충전을 위한 떠남은 모녀여행의 멋진 추억이 될 것이리라.
백일을 갓 넘긴 공주님을 돌보는 일은 자연스레 할머니 몫이 됐다.
아들은 출근하고 며느리는 여행 중이니, 손주와 보내는 며칠은 온전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다.
집안은 막 문을 연 모델하우스처럼 깨끗했고, 바쁜 중에도 식탁 위에 카네이션을 올려놓고 간 며느리의 마음 씀이 기특했다.
살림 솜씨 또한 구석구석 손 갈 데 없이 야무지다.
사실 시어머니에게 집을 온전히 맡긴다는 일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게다.
삶의 민낯을 보여준다는 것은 작은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며느리는 기꺼이 집을 내어주고 여행을 떠났다.
아기용품을 찾기 쉽게 서랍마다 붙여놓은 메모들이 말없이 그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믿음이란 그렇게 조용히 건네는 마음의 열쇠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공주와 함께 보내는 할머니의 시간은 고맙고도 눈부시다.
아기 천사는 눈이 마주치면 웃고 옹알이로 답한다.
웃을 때마다 쏘옥 들어가는 작은 보조개까지 더해지면 그 매력에 흠뻑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약간의 고단함쯤이야 방긋 웃는 미소 한 모금이면 금세 사라진다.
아기를 돌보는 일은 힘들지만 동시에 생기를 길어 올리는 샘물이다.
아기는 시간을 먹고 자라고, 가족은 그 시간을 나누며 살아간다.
남편이 큰 수술을 하고 난 뒤 어느 날, 아들과 여행을 가고 싶다 한다.
장가간 아들과 단둘이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직장에 휴가도 내야 하고 임신한 며느리의 마음도 살펴야 한다.
그럼에도 아들은 망설임 없이 아빠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아들이 아버지의 보호자가 되어 길 떠나는 두 남자의 뒷모습이 든든했다.
신혼에 며칠 동안 기꺼이 남편을 내어 준 며느리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남편은 아들과 만리장성을 쌓고도 남을 만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며 뿌듯해한다.
세월이 흐르면 부모와 자식의 자리도 조금씩 바뀐다.
어느 순간 자식은 부모의 버팀목이 되고 부모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인생의 해거름을 맞이한다.
딸들도 질세라 아빠와의 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셋째 딸은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아빠와 바다를 다녀왔다.
큰딸과 둘째 딸도 이미 예약을 마쳤다.
가족이란 서로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가장 따뜻한 약속이다.
출산한 며느리가 산후조리원에서 전문가의 돌봄을 받은 후, 아기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는 정부의 산후도우미 지원이 이어진다.
출산과 육아가 개인의 몫이 아닌, 사회 전체가 함께 아이를 키우는 공동의 책임으로 자리 잡고있는 사회가 됐다.
내가 셋째 아이를 낳을 때만 해도 의료보험 혜택조차 받지 못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온전히 가족의 몫이었다.
힘든 줄 모르고 그저 살아냈던 시간이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인디언 속담처럼 마을 전체가, 아이를 키우는 사회로 바뀌고 있는 사실을 새삼 느끼는 오늘이다.
아들이 육아를 이렇게 잘하는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집안일도 알아서 척척 해낸다.
혹여 청소기라도 들면, 이런 건 자기가 할테니 엄마는 아기만 봐주시면 된단다.
책임감이란 보이지 않는 힘으로 사람을 단단하게 만드는가 보다.
아빠가 된다는 것은 사람을 조금 더 깊어지게 한다.
아이는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란다.
아빠의 모습이 아이의 인생이 되고 엄마의 가르침이 아이의 미래가 된다.
며느리와 사부인의 여행도 아주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여행의 뒤편에는 손주와 함께한 나의 며칠이 조용히 놓여 있다.
아들과 아버지, 며느리와 친정어머니, 그리고 시어머니는 서로의 시간을 조금씩 내어주며 가족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있다.
흘러가는 줄만 알았던 시간이, 사랑의 온기가 되어 행복이라는 선물을 나눌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경영 수필가 사랑,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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