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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7 (화)

    [기자칼럼]티모테 샬라메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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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 SNS 타임라인이 발레와 오페라로 가득 찼다. 유명 발레단들의 할인 프로모션 공지, 무용수와 성악가들이 누군가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쉴 틈 없이 떠올랐다. 엄격하고 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었던 기초 예술계가 이토록 한꺼번에 들썩이는 장면은 좀처럼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소동은 배우 티모테 샬라메의 한마디에서 비롯됐다. 그는 얼마 전 미국 오스틴에서 열린 한 공개 대담에서 영화산업의 미래를 이야기하던 중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no one cares about) 발레나 오페라 같은 분야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고 말해 도마에 올랐다. 젊은 스타의 발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이에 전 세계 문화예술계가 반응을 쏟아냈다.

    시애틀 오페라단은 “할인코드 ‘TIMOTHEE’(티모테)를 입력하면 티켓을 할인해 주겠다”며 능청스럽게 응수했고, 영국 내셔널 오페라단은 해당 발언을 업로드하며 “마음을 바꿔 오페라를 보러 오면 공짜 티켓을 주겠다”고 맞받아쳤다. SNS에는 샬라메가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AI 영상까지 등장했다. 덕분에 나는 주말 내내 그 콘텐츠들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발레와 오페라가 이렇게까지 유연하고 위트 넘치는 업계였나 놀라기도 했다.

    이 소동을 지켜보며 문득 근원적인 질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최근 마음을 흔들었던 몇 가지 장면들이 떠올랐다. 영화 <햄넷>에서 자식을 잃은 슬픔에 잠겨 있던 아녜스가 남편 윌리엄이 쓴 연극 <햄릿>을 보며 응어리진 상처를 치유받던 장면,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에서 고통의 한복판에 선 안나를 위로하는 오페라 가수 패티의 아리아 ‘오 나의 사랑하는 이여’가 울려 퍼지던 순간. 지난주 뮤지컬 <홍련>을 보고 집에 돌아오던 길에는 지하철을 타는 순간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기도 했다.

    티모테 샬라메가 졸업한 라과디아 예술고등학교의 교장은 제자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 이렇게 적었다. “단 한 번의 공연, 단 하나의 선율, 단 한 번의 붓질, 단 한 번의 몸짓이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울릴 수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예술의 의미를 이보다 더 간결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누군가에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산업처럼 보일지 몰라도, 예술은 아주 오랫동안 인간 내면의 슬픔을 어루만지고 살아갈 힘을 불어넣는 구원이었다.

    샬라메의 발언이 진심이었는지 혹은 영화산업에 대한 열정을 강조하다 나온 실언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덕분에 전 세계 발레와 오페라계가 한목소리로 자신들의 예술을 이야기하고 나 역시 예술이 건네는 순간들을 떠올리게 됐으니 말이다. 예술은 효율이나 산업 논리로 환원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걸 아마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어딘가에서 당신의 마음을 울리기 위한 예술인들의 무대가 준비되고 있다. 그것은 연극 또는 뮤지컬일 수 있다. 발레나 클래식, 오페라일지도 모른다. 올봄 한 번쯤 그 세계의 문을 열어보는 건 어떨까. 낯선 경험 속에서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의 매듭이 풀릴지도 모른다. 혹시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샬라메 당신도 말이다.

    경향신문

    노정연 문화부 차장


    노정연 문화부 차장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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