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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7 (화)

    '육삼정'에 모인 아나키스트들 [그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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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3년 3월 17일 육삼정 의거

    [이데일리 장영락 기자] 1933년 3월 17일 주 중화민국 일본 공사가 친일 인사와 일제 육군 등 100여명을 상하이 훙커우에 있는 일본인 경영 식당 ‘로쿠산테이(육삼정)에 초대한다는 정보를 조선 출신의 아나키스트 그룹이 입수했다. 이들은 당일 현장을 습격할 준비까지 마치고 대기했으나 결국 일제 경찰에 발각돼 거사를 실현하지 못하고 체포됐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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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패로 끝나며 오늘날 대중들에게도 덜 알려진 육삼정 의거를 일으킨 이들은 일제 치하 독립 운동 정파의 주요한 계열 중 하나였던 무정부주의 인사들이었다.

    의거를 주도했던 백정기는 부안 출신으로 20대 초반 이미 3.1 운동에 가담해 고향에서 만세시위를 이끌고 일본군 군사 시설 파괴 공작을 계획하는 등 독립운동의 길을 걸은 인물이었다.

    파괴 공작이 발각돼 중국으로 망명한 뒤 백정기는 재중국무정부주의자연맹을 결성하는 데 관여하는 등 본격적인 아나키스트 활동을 이어간다. 1930년대 들어 ’흑색공포단‘을 조직해 일제에 대한 여러 파괴 공작을 추진하였는데, 1932년 윤봉길의 훙커우 공원 의거 당시에는 그 역시 폭탄 투척 계획을 세웠으나 공원 진입에 실패해 무위로 그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기도 했다.

    이듬해 육삼정 습격 역시 일제 경찰의 사전 체포로 무산되고 만다. 당시 백정기는 정현섭, 원심창, 이강훈 등과 함께 폭탄과 권총까지 준비해 현장에 갔으나 사전에 계획을 인지한 듯한 일제 경찰의 대응으로 체포되면서 일본으로 압송된다.

    백정기는 일제 법원에서 원심창과 함께 ’살인예비 및 치안유지법 위반, 폭발물 취체벌칙 위반‘ 등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나가사키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그는 지병이던 폐결핵이 재발하며 ’내가 죽어도 사상은 죽지 않을 것‘이라는 유언을 남긴채 1년만에 옥중에서 순국한다.

    10년도 더 지난 1946년이 되어서야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3의사의 유골이 일본에서 회수돼 국민장이 치러졌다. 1963년에는 그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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