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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는 단순한 연료가 아니다. 현대 경제를 움직이는 혈액에 가깝다. 자동차와 비행기, 트럭과 선박을 움직일 뿐 아니라 농업용 비료, 플라스틱, 의류섬유, 화학제품 등 수많은 산업의 원료이기 때문이다. 국제 유가 급등이 경제를 흔드는 장면은 여러 차례 반복돼 왔다. 1973년과 1979년 중동발 오일쇼크는 세계 경제를 강타하며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낯선 단어를 등장시켰다. 1990년 걸프전, 2008년 금융위기 직전의 유가 급등,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국제 유가 급등은 경기 침체와 소비 위축의 신호탄이 되곤 했다.
2026년 세계도 비슷한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중동 긴장과 공급 불안 속에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경기 전망이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절약의 시대’를 살아가는 소비자들의 대응 방식은 과거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에너지 효율 가전, 공유경제, 구독 서비스, 온라인 가격 비교처럼 새로운 생활 방식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사람들이 어떻게 ‘비싼 에너지의 시대’를 버텨왔는지 살펴보고 고유가 시대를 살아남기 위한 2026년형 생활경제 전략을 짚어본다.
전후 번영 긴 여름 끝낸 ‘오일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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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쇼크로 1974년 1월 미국 정부가 ‘휘발유 배급제(홀짝제)’ 정책을 시행하자 한 시민이 관련 소식이 실린 신문을 읽고 있다. 시민 뒤쪽에 있는 주유소 앞에 ’휘발유 없음‘이라고 적인 팻말이 놓여 있다. 위키피다아 |
1973년 중동 전쟁으로 산유국들이 석유 수출을 제한하면서 세계는 갑작스러운 에너지 충격을 맞았다. 국제 유가는 몇 달 사이 네 배 가까이 뛰었고, 전후 오랜 호황을 누리던 서방 경제도 크게 흔들렸다. 미 스탠퍼드 후버연구소의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이 시기를 두고 “전후 번영의 긴 여름이 끝난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당시 미국 전역 주유소 앞에는 차량 행렬이 길게 늘어섰고 몇 시간씩 기다려도 연료를 구하지 못 하는 일이 흔했다. 연방에너지청(FEA) 자료를 보면 1974년 초 전국 주유소의 약 20%가 휘발유 판매를 중단했다. 일부 주에서는 차량 번호판 끝자리에 따라 주유 날짜를 제한하는 ‘홀짝제’를 시행했다. 1974년 미국 의회는 고속도로 최고 속도를 시속 55마일(약 89㎞)로 제한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미국 주유소에 주유를 하기 위해 줄지어 서있는 차량들. 미 국회 도서관 |
이동방식도 달라졌다. 직장 동료나 이웃이 차를 함께 타는 ‘카풀’이 흔해졌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이 없던 시기 직장에서는 사내 게시판에 “같이 출퇴근할 사람을 찾는다”는 메모가 붙었고, 지역 신문에는 카풀 참가자를 구하는 작은 광고가 실리기도 했다. 미 교통부 연구에 따르면 1970년대 중반 미국 출·퇴근자의 약 20%가 카풀 형태로 이동했다.
대형차 대신 연비가 좋은 소형차를 찾는 소비자가 늘었다. 일본 업체들은 이 틈을 파고들었다. 미국 경제학자 발레리 레이미는 “오일쇼크가 미국 자동차 산업 안에서도 차급 간 ‘파괴적 변화를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연비 기준(CAFE)과 전략비축유가 처음 나온 것도 이때다. 1975년 미국 의회는 ‘에너지 정책 및 보존법’을 통해 두 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오일쇼크 직후인 1974년 창설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회원국들에게 최소 90일치 석유 수입량을 비축하도록 하는 공동 에너지 안보 체계를 마련했다.
한국의 ‘불 꺼진 밤’
1973년 11월 24일 경향신문에는 서울역~말죽거리 구간을 운행하는 78번 버스가 기름을 넣지 못해 한남동 남한주유소에 줄지어 정차한 사진이 실렸다. 승객들도 버스정류장에 같이 발이 묶였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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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 석유에 의존하고 있던 한국은 물가 전반에 타격을 입었다. 1974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4%로, 한국전쟁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할 정도였다. 일상도 멈췄다. 1973년 11월 24일 경향신문에는 서울역~말죽거리 구간을 운행하는 78번 버스가 기름을 넣지 못해 한남동 남한주유소에 줄지어 정차한 사진이 실렸다. 승객들도 버스정류장에 같이 발이 묶였다. 겨울이 되자 연탄과 석유 수요가 폭증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판매가 제한됐다. 연탄을 사기 위해 서민들은 몇 시간씩 줄을 섰다.
정부는 강력한 에너지 절약 정책을 도입했다. 서울 등 주요 도시에서는 밤 10시 이후 네온사인의 불이 꺼졌다. 가로등도 한 개 건너 켜는 ‘격등’ 방식으로 운영됐다. 1973년 11월 29일 경향신문은 전날 밤 불 꺼진 명동 풍경을 전하며 “서울의 밤거리는 어둡고 적막했다”고 묘사했다. 도심 상권이 너무 어두워 손님이 줄었다는 불만이 나오기도 했고, 시민들은 손전등을 켜고 귀가했다.
정부와 언론은 ‘위기 극복을 위한 국민운동’을 강조했다. 당시 신문에는 “전등 하나라도 끄자”, “연탄 한 장이라도 아끼자” 같은 구호가 연일 등장했고 새마을운동 조직을 중심으로 절약 캠페인이 확산했다. 겨울철 난방을 줄이면서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외투를 입은 채 수업을 들었다. 목욕탕 영업일까지 제한됐다. 뜨거운 물을 데우는 데 많은 연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1973년 11월 29일 경향신문은 전날 밤 불꺼진 명동 풍경을 전하며 “서울의 밤거리는 어둡고 적막했다”고 묘사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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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절약법
2026년 다시 고유가 시대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하지만 대응 방식은 과거와 조금 다르다. 지금의 절약은 생활 방식을 다시 설계하는 전략에 가깝다. 이미 기후위기와 경기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MZ세대를 중심으로 공유경제, 중고 거래, 구독 서비스 등 소유보다 이용을 중시하는 소비가 확산했다. 자동차를 직접 구매하기보다 차량 공유 서비스나 카셰어링을 이용하는 게 익숙하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실시간 주유소 가격과 교통 정보를 비교하고, 가장 저렴한 주유소나 연료 효율이 높은 경로를 찾는 소비도 일상화됐다. 미국 주유소 가격 비교 서비스인 가스버디는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가격 비교 기능을 활용하는 운전자들이 연간 평균 100~200달러 연료비를 절약하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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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게이션 서비스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최신 지도 서비스는 운전 중 주변 주유소 가격을 자동으로 표시하고 인공지능(AI)이 교통 상황을 분석해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제시한다. 글로벌 지도 플랫폼 기업 톰톰은 실시간 교통 정보를 활용한 경로 최적화 기능은 불필요한 우회 이동을 최대 30%까지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물류와 소비 방식에서도 기술 기반 절약이 대세다. 물류 기업들은 AI로 배송 데이터를 분석해 이동 거리를 줄이면서 연료 사용을 절감하고 있다. 글로벌 물류 기업 DHL은 AI 기반 경로 분석을 도입한 이후 연료 사용이 15% 줄었다고 밝혔다. 소비자 또한 당일 배송 대신, 배송 시간을 조금 더 기다리는 선택을 하면 배송 차량 이동을 줄여 에너지 소비를 감소시킬 수 있다.
권혁민 한국경제인협회 성장전략실 실장은 “현재까지 원유 수급 자체에 큰 문제가 있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과도한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면서도 “한국처럼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는 평소에도 에너지 효율 중심의 소비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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