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드론과 한국버스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이 일어난지 4년이 넘어간다. 개전 초기 그 누구도 이 전쟁이 이렇게 오래갈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도 종전의 신호는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 미국·이스라엘과 이란간 전쟁이 벌어지면서 세계는 두개의 큰 전쟁에 휘말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한평의 영토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을 회복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핵발전소가 있는 격전지, 자포리자 인근도 일부는 러시아에 점령됐다. 2024년 8월6일 우크라이나는 최정예부대를 앞세워 러시아 국경을 넘어 쿠르스크를 점령했다. 쿠르스크는 러시아 3대 핵발전소 중 하나인 쿠르스크 원전이 있다. 특히 쿠르스크의 수자(Sudzha)시는 유럽으로 향하는 러시아 천연가스 관문이 있는 곳으로 전략적 가치가 컸다.
우크라이나의 쿠르스크 진격 작전은 동부전선(돈바스)에 집중된 러시아군의 화력을 분산하는 효과가 있었다. 향후 종전 협상 때는 러시아에 점령당한 우크라이나 영토와 맞교환하기 위한 카드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 본토가 외국군에 의해 점령된 첫 사례라 러시아 내부적으로는 정치적 부담이 컸다. 만약 쿠르스크를 방어하려면 돈바스에서 싸우는 군을 보내야 하는데, 그 경우 병력이 분산돼 전력이 약화될 수 있었다. 러시아가 북한군 파병을 원했던 중요한 이유다.
전쟁의 한복판에 선 수미주
우크라이나에서 쿠르스크로 가는 길이자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지역에 수미(Sumi)주가 있다. 우크라이나어로 ‘숨스카’라고 불리는 곳이다. 수미로 가는 길은 어렵고 불편했다. 외신기자들 사이 수미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검문소는 악명이 높다. 짧게는 2시간 걸리지만, 길게는 6시간까지 걸린다. 아예 검문소에서 돌아온길로 돌아가라는 조치를 당하기도 한다. 취재를 위해 수미로 가기 위해서는 받아야할 허가가 아주 많다. 수미주 주정부, 정보국, 국방부 등 적어도 여섯군데 이상에서 취재허가를 받아야하고 그 증명서가 있어야 검문소를 통과할 수 있다. 검문소에서 신분증과 기자증, 각종 허가서를 보여주고도 두 시간이 넘게 대기했다.
수미주 주요도로에는 러시아 드론 공격에 대비해 그물망이 쳐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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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으로 쿠르스크가 가까운 수미주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매우 예민해 하는 지역이다. 언론도 자칫하면 스파이 혐의를 받을 수 있는, 긴장감이 최고조인 상태다. 2024년 여름, 예고없던 군대의 진격으로 수미는 전쟁의 한복판에 섰다. 수미시 인근 스테츠코브카 마을에는 온전한 집이 없다. 주민인 올레그(38)는 “대규모 전차와 트럭이 수미 시내를 가로질러 북쪽으로 갈때만 해도 무슨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몰랐다”며 “우리 군이 국경을 넘어가고 각종 포탄과 미사일이 북쪽 쿠르스크에서 수미로 넘어왔다”고 말했다. 수미 주민들은 어떤 일이 북쪽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자세히 몰랐지만, 이제 우크라이나에서 수미가 가장 위험한 도시가 됐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국경 너머 쿠르스크에서 날아오는 미사일과 포탄으로 마을이 쑥대밭이 됐다. 또다른 주민 나탈리아는 “여기서 쿠르스크는 정말 가깝다. 30분 정도만 차로 가면 된다”며 “매일 날아오는 미사일은 정말 끔찍하다”고 말했다. 그는 “어제 수미시에 있는 우리 아들이 사는 아파트도 폭격을 당했다”며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수미시 곳곳에는 콘크리트 임시 대피소가 설치돼 있다. 사각형 구조물에 불과하지만 폭격이 날아오면 당장 뛰어들어 몸을 피할수 있다. 그렇다고 모두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긴급할 땐 이나마도 아쉽다. 공습경보는 시도 때도 울린다. 건물 대부분은 유리창에 합판을 덧대어 놨다. 한 주민은 “공습경보가 하루에 백 번 울릴 때도 있다. 밤에도, 저녁에도, 낮에도 언제든 울린다”며 “보시다시피 우리는 수미 주에 있고, 국경에서 약 20~25km 정도다. 여긴 주변이 전부 파괴됐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동안에도 공습경보가 울렸다.
미사일보다 드론이 더 무섭다
수미의 지역 언론사인 코르돈 미디어 (Kordon Media)의 나디야 소로콜리트 대표는 “쿠르스크 작전 이후 수미 지역은 말 그대로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됐다”며 “불행하게도, 안보 상황은 극도로 악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중 대표적인 위협이 드론”이라고 말했다. 쿠르스크에 근접한 수미는 비싼 미사일보다는 값싸면서 날랜 드론이 타격하기에 효과적인 무기였다. 시도 때도 없이 뭔가가 날아오는데, 그 중 드론 비율이 상당히 높다. 한 시민은 “수미에는 새보다 드론이 더 많이 날아온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수미주 빌로필리아 인근에서 드론공격을 ㅂ다아 파괴된 버스가 방치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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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의 위력은 대단했다. 2025년 5월 17일 수미주 빌로필리아(Bilopillia) 인근에서 민간인 버스가 드론 공격을 받아 9명이 사망하고 7명이 다쳤다. 버스는 드론의 주요 표적이었다. 드론은 버스를 쫓아가며 충돌해 폭발한다. 작정하고 날아오는 드론을 시민들은 피할 겨를이 없다. 폭발력도 쎄 드론에 포위되면 살아남지 못한다. 수미주에 있는 거의 모든 버스가 공격을 받았다. 수미 시 외곽 주립 수미 시내버스회사인 엘렉트로아우토트란스(Electroavtotrans)의 차고지에는 부서진 버스들이 곳곳에 방치돼 있다. 대표인 이반 빅토로비치 코레니예프가 덮어놓은 비닐을 벗기며 “이 버스에 있는 모든 승객이 드론 파편과 폭발에 희생됐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발인 버스가 폭격의 목표물이 될 것이라고는 전쟁전에는 상상도 못했다. 드론이 수미주 시민들의 주거공간, 학교, 공원 등을 공격하자 시민들의 공포심은 극에 달하고 있다.
최근 북한군의 얼굴이 선명하게 촬영된 드론이 발견됐다. 우크라이나 정보국이 공개한 영상에는 북한군 추정 남성이 카메라가 설치된 기기를 만지는 장면이 담겼다.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는 지난해 10월 SNS를 통해 성명을 내고 “북한 무인기(UAV) 조종사들이 우크라이나군 기지를 향해 다연장로켓시스템 포격을 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쿠르스크 지역에서 북한 부대가 무인기를 사용한 정찰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며 “그들(북한군)은 우크라군 위치를 식별하고 수미 지역 기지 포격 조정을 돕는다”라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측은 북한 드론 운영자와 러시아 병사 간 통신을 도청했다고도 했다.
이와 같은 사실이 공개되자 수미 주민들은 북한군에 대해 큰 적대감을 보이고 있다. 수미주 외곽 한적한 마을인 츄파히우카 시장 입구에서 만난 한나씨는 “우리는 김정은을 ‘호박(Pumpkin)’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1만 명의 병사를 보냈다하는데, 왜 저 멍청이는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하는 지 모르겠다”며 “자기 국민들은 굶고 있는데, 자기 시민들의 목숨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며 분노했다. 또다른 주민인 길리야는 “러시아와 한편을 먹다니…그런 사람이 어떻게 통치자라고 자신을 부를 수 있겠느냐”며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아침 장을 보러 나온 스베틀라나씨는 ‘만약 북한 사람들에게 한마디 할 수 있다면 뭐라고 말하고 싶느냐’는 질문에 “여기 오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며 “자기 집이나 잘 챙기고, 우리 우크라이나 일에는 끼어들지 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크라이나 총참모부가 엑스에 공개한 영상에 나오는 북한군 드론 조종사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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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주로 가는 고속도로에는 구급차가 많이 보인다. 구급차에는 태극기가 붙어있다. 한국에서 원조해준 버스다. 농기계 원조도 많다고 했다. 올레그 올렉시요비치 수미주지사는 “주민의 발이었던 버스가 대부분 폭격을 당하고, 주민들은 이동의 자유를 잃어버렸지만, 고맙게도 한국 국민과 정부가 우리에게 버스를 보내줬다”고 말했다. 주 우크라이나 한국 대사관에 따르면 전쟁으로 파괴된 인프라를 복구하고, 민간인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인도적 지원의 일환으로 한국버스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수미주에 전달된 버스는 총 60대로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해 기증됐다.
수미주 공무원인 발레리아는 “전쟁으로 인해 기존 버스들이 파괴돼 수미주의 대중교통이 마비된 상황에서, 한국버스는 현지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생명선’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미주의 시민들은 한국이 기증한 버스를 ‘한국버스’라는 고유명사로 부른다. 올레그 주지사는 “우리는 직접 한국인들을 만나본 적은 없다”며 “전쟁이 끝나고 한국인들이 우리 수미주에 온다면 꼭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좋은 대접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에게 이말을 직접 전할 수 없어 안타깝다”며 “꼭 전해달라”고 몇번이고 말했다.
한국 비정부기구(NGO)가 제공한 버스가 구급차로 쓰이고 있다. 겉면에는 태극기가 붙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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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현재 수미주에는 무서운 북한군의 드론과 고마운 한국 버스가 같은 시간과 공간에 있다. 이는 수미주민들에게도 매우 특수한 상황이다. 한반도 분단의 아픔으로 생긴 비극이 저 먼 나라 우크라이나 땅, 수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시리즈 끝>
정리=박병률 기자
우크라이나(키이우) 김영미 국제분쟁전문PD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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