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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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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집은 예약 전쟁, 셰프는 인기 스타… 미쉐린 가이드 ‘식’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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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NOW]

    미쉐린 가이드 한국 발간 10주년… 서울·부산서 별 받은 식당 상당수

    와인 곁들인 양식화된 한식 위주… 국밥 등 일상 밥집으로 확산 기대

    동아일보

    5일 부산 해운대구 시그니엘 부산에서 열린 미쉐린 가이드 세리머니 서울&부산 2026 행사에서 별을 받은 셰프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부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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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미식의 바이블’로 통하는 레스토랑 안내서 ‘미쉐린 가이드’ 서울 편이 첫선을 보였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올해는 서울을 넘어 부산 지역 식당까지 평가 대상을 확장한 ‘2026 미쉐린 가이드’가 발간됐다.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발간 행사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는 역대 최다 신규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이 탄생했다. 눈에 띄는 변화는 ‘한식’ 그 자체보다 ‘컨템포러리(Contemporary)’ 카테고리 레스토랑이 더 많은 별을 받았다는 점이다. 컨템포러리는 장(醬)과 발효, 제철 식재료 같은 한식의 본질적 요소를 바탕으로 서양식 코스 구성과 조리 기술, 플레이팅 문법 안에서 재해석하는 장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을 보유하고 있는 도시 일본 도쿄는 전통 일식과 프렌치가, 홍콩은 정통 광둥식과 유러피언 레스토랑이 미식 지형을 만든다. 반면 서울과 부산은 컨템포러리, 이노베이티브로 분류된 레스토랑이 상대적으로 많은 별을 받았다.

    이는 한국이 이미 “전통 한식의 원형을 지키는 나라”를 넘어 “한식을 언어로 삼아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나라”로 진화했음을 보여 준다. 한국의 컨템포러리 레스토랑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계절마다 다른 한국의 제철 식재료, 발효를 통해 구현되는 깊은 감칠맛, 셰프들의 손끝에서 펼쳐지는 수준 높은 기술과 세계관, 와인과 한국 전통주를 바탕으로 서사를 엮어내는 소믈리에의 해석, 그리고 경험을 추구하는 미식 트렌드가 유기적으로 엮여 있어서다. 메뉴는 계절·지역·기억을 따라 구성되고, 셰프의 철학이 일관된 톤으로 반영된다. 고객은 그 이야기를 따라가며 맛뿐 아니라 주류 페어링, 호스피탈리티(환대), 공간 경험까지 포함된 복합적 감동을 받는다. 같은 조리법이라도 한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식재료, 조리법, 전통주 페어링과 특유의 친절한 서비스 등 레스토랑만의 세련된 세계관이 매력적인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본다.

    미쉐린이 공표한 다섯 가지 평가 기준인 △좋은 재료 △뛰어난 조리 기술 △맛의 조화 △일관성 △셰프의 개성이 드러나는 요리는 변함없다. 하지만 최근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건 마지막 항목. “이 셰프는 왜 이 맛과 형태를 선택했는가”, “왜 이러한 흐름으로 코스를 구성했고, 무엇을 보여 주고 싶은가” 등이 반영된 전체적인 흐름과 셰프의 세계관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동아일보

    미쉐린 가이드 한국편이 발간된 지 10주년이 되면서 한국의 식당과 다양한 음식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미쉐린 1스타를 받은 서울 강남구 기와강(위 사진)과 빕 구르망에 선정된 서울 종로구 황생가 칼국수. 미쉐린가이드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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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변화는 주류 페어링 문화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올해 미쉐린 소믈리에 어워드를 수상한 기와강의 이정인 소믈리에는 페어링을 준비할 때 “식재료와 와인의 요소를 세밀하게 분해해 어디서 서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찾고, 각 코스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흐름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이 음식엔 이 와인이 잘 어울린다”는 조합의 개념이었다면, 이제는 한 코스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서사와 흐름까지 중시한다. 식재료의 질감·온도·지방감, 향의 결, 소스의 구조까지 하나하나 나누어 보고 와인 역시 산도·보디감·타닌·아로마의 레이어를 세밀하게 분석해 에피소드를 완성하는 방식이다.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대 안에서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에 주어지는 빕 구르망(Bib Gourmand) 식당들에도 눈길이 간다. 한국에서는 돼지고기, 냉면, 국수집 등이 폭넓게 포함된다. “비싸지 않아도 미쉐린이 말하는 좋은 음식의 기준을 충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리스트이자, 한국 외식의 저변이 얼마나 튼튼한지를 증명하는 지표다. 프랑스 파리와 일본 도쿄는 세계에서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이 가장 많은 도시이지만, 그들의 미식 수준을 떠받치는 것은 스타 식당 몇십 곳이 아니라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비스트로, 이자카야, 라멘집들이었다.

    미쉐린 가이드가 한국에 들어온 후 10년 사이, 고급 식당에서 미식을 즐기는 문화는 보편화됐다. 셰프들의 상상력, 맛의 수준은 세계적 수준에 근접했다. 앞으로는 전국에 있는 대중식당, 골목과 시장, 우리 동네 밥집 같은 일상의 식탁에서도 미식 문화가 퍼져 나갈 차례다. 도쿄, 파리, 홍콩처럼 말이다.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을 만나도 ‘미식국가, 코리아’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순간이 머지않은 듯하다.

    김유경 푸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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