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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26 (목)

    [그 영화 어때] 판타지 로맨스라더니 공포 스릴러였네, 장국영의 영화 ‘연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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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194번째 레터25일 개봉하는 영화 ‘연지구 디 오리지널’입니다. 장국영과 매염방이 연인으로 나오는데요, 거의 40년 만에 국내 최초 개봉입니다. 예전에 비디오테이프로 유통될 때 청불 등급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번엔 15세관람가입니다. 야해서 그랬나요, 물으신다면, 아니요, 전혀. 그럼 왜 청불 등급까지 받았나요, 물으신다면, 문제의 장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장면에는 제가 이 영화를 로맨스가 아니라 스릴러로 본 이유가 들어있습니다. 무엇이 사랑인가에 대한 각자의 답에 따라 장르가 바뀔 수 있는 영화 ‘연지구’, 여러분의 판단은 어떠실지, 이어서 만나보시죠.

    조선일보

    이번 레터는 썸네일 사진을 1초의 고민도 없이 고를 수 있었네요. 꽃다운 장국영을 만나볼 수 있는 영화 '연지구 디 오리지널'에서 장국영은 부잣집 도련님(게다가 유일한 상속자)이고, 매염방은 기생입니다. 장국영은 그녀의 마음을 얻고 싶어 귤도 까주고 시도 지어줍니다. 그러다가 그녀가 모종의 결심을 하면서 무서운(의견에 따라서는 슬픈) 일이 벌어집니다./와이드릴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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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은 장국영의 달입니다. 올해도 ‘패왕별희’가 어김없이 재개봉하네요. ‘패왕별희’와 그보다 6년쯤 앞서 만들어진 ‘연지구’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홍콩 소설가 이벽화의 작품이고, 장국영이 극중에서 경극을 합니다. ‘연지구’에선 잠깐만 나오긴 하지만요. 이벽화가 경극을 포함해서 예술 장르 전반에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장국영과도 두 작품 이전에 이미 친분이 깊었고요. 원래 ‘연지구’에서 장국영 역할은 대사가 열 몇 줄뿐인 작은 역할이었는데 장국영이 맡으면서 비중이 크게 늘었습니다. 그만큼 그가 소화를 잘했으니 가능했겠지요.

    ‘연지구’의 장국영은 20대 청년 진진방입니다. 부잣집 도련님이고, 유일한 상속자에요. 영화는 1934년 홍콩의 유곽에서 시작하는데 남장을 한 기생이 노래를 부르며 등장합니다. 그녀가 바로 매염방, 여화라는 이름의 기생입니다. 놀러왔던 장국영은 여화의 노래를 듣고 한눈에 반하고, 이튿날부터 문지방이 닳도록 찾아옵니다. 필살기는 애교와 미소. 여화에게 귤도 예쁘게 까서 건네고, 시를 지어서 바치고, 폭죽도 터뜨리고, 커다란 침대도 선물합니다. 여화는 싫은 척 하지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동료 기생들은 “이 바닥에서 20년 넘게 있었지만, 이런 지극 정성은 처음 봐”라며 부러워하고 여화의 얼굴에도 미소가 절로 번집니다.

    어느새 진도련님에게 푹 빠진 여화. 그런데 두 사람의 애정이 한껏 고조되는 모습을 보여주던 화면은 곧바로 도심의 어느 사무실을 비춥니다. 저기가 어디야, 잠시 어리둥절하실 수 있는데 신문사 편집국입니다. 야근하던 기자에게 여화가 다가가 말을 겁니다. “사람 찾는 광고를 내고 싶어요. ‘도련님, 3811, 예전 그곳에서 기다릴게요’라고 내주세요.” 그러면서 “오늘이 며칠이냐”고 묻습니다. “1987년 3월6일이요.” 기자가 답합니다. 아니,여화는 하나도 늙지 않고 그대로인데 어찌된 일인가. 영화 시작하고 19분쯤에 나오는 극히 초반부 설정이라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화는 귀신입니다. 어떻게 귀신이 된 것이고, 아리송한 광고는 무엇인가. 3811은 무슨 뜻인가. 도련님을 기다리겠다니, 그러면 진도련님은 어떻게 된 것인가. 이런 수수께끼의 답이 하나둘 밝혀지면서 영화가 전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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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연지구 디 오리지널'/와이드릴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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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화가 광고를 의뢰한 기자는 같은 신문사에서 일하는 여성 기자와 연인입니다. 두 기자는 진도련님 찾기에 나선 여화가 불쌍하다며 도와줍니다. 귀신이라는 사실은 일찌감치 알고요. 1987년과 1934년을 오가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중에 여화와 진도련님의 사랑이 진도련님 부모의 반대에 부딪혔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부모님은 여화에게 “우리는 화류계 여자를 바라지 않아요. 이제 그만 진방을 놓아줘요. 아가씨가 붙잡아도 돌아오게 돼있어요”라고 합니다. 여화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제 처지는 압니다. 많은 걸 바라지 않아요.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라고 맞섭니다. 그러면서 모종의 결심을 합니다. 자, 오늘 레터는 제가 결말까지 말씀드릴 거예요. 그래야 ‘무엇이 사랑인가에 대한 각자의 답에 따라 장르가 바뀔 수 있는 영화’라는 제 생각을 설명할 수 있어서요. 이 뒤부터는 결말이 나오니, 모르고 영화를 보고 싶으신 분은 이하 내용은 영화를 보신 후에 읽어주세요.

    여화가 어떤 결심을 하느냐면, 같이 죽어버리자는 것입니다. “영원히 함께하고 싶었으니까요”라면서. 둘이 1934년 3월8일 오후 11시에 음독자살을 했고, 숫자 3811은 ‘3월8일 오후 11시’를 뜻합니다. 제목 ‘연지구’는 동반자살하기 전에 진도련님이 여화에게 선물한 연지함(rouge·루즈)을 말하는 거고요. 여화는 두 기자의 도움으로 여러 신문에 ‘3811, 예전 그곳에서 기다릴게요’라는 광고 게재에 성공하고, 그날 그곳에서 기다립니다. 그가 고양이나 개로 환생했으면 어쩌지, 걱정하면서요. 그가 나타났을까요. 아니요. 왜인지 궁금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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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연지구 디 오리지널'/와이드릴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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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왜 나타나지 않았느냐. 안 죽었거든요. 이 사실은 두 기자가 옛날 신문에서 기사를 찾아내 밝혀집니다. 살아난 도련님은 결혼도 하고 아들도 낳았습니다. 그리고 70대 노인이 되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기자가 노인을 찾아내는데 성공합니다.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면.

    그전에, 동반자살에 숨겨진 진실을 아셔야 해요. 사실, 남자는 그렇게 꼭 죽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그리고 본인이 뭘 먹는지도 정확히 몰랐습니다. 반드시 같이 죽고 싶었던 여자가 남자에게 약물을 잔뜩 먹이고 남자가 모르는 사이에 수면제까지 술에 타 먹인 거였죠. “나만 죽게 될까봐, 그이만 살아남아 나를 버릴까봐 두려웠어요. 도련님을 다른 여자에게 보낼 수 없었으니까요.” 당시 행동에 대한 여화의 설명입니다. “수면제 탄 걸 왜 말 안 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그가 죽음을 겁냈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아니, 이거 살인미수 아닌가요? 여자는 남자에게 약물을 주면서 “다음 생에 우리 모습이 달라지더라도 3811을 기억해요. 내가 당신을 찾을게요. 당신도 날 찾아와요”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신문에 광고 내고 거기서 그날 기다린 거죠. 아마도 원작자는 여화의 행동을 지독한 사랑으로 보여주려한 것 같습니다. 아니요, 전혀 그래보이지 않았어요. 나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죽여야 한다면 그게 정말 사랑일까요. 게다가 상대가 죽음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번연히 알면서요. 같이 죽자는 입장에선 판타지 멜로라고 하겠지만 자살당하는 입장에선 공포 스릴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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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연지구 디 오리지널'/와이드릴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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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면제까지 강제 투여됐던 남자는 그래도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잘 살진 못한 걸로 나와요. 재산을 탕진하고 아들에게도 버림받다시피하고 노숙자 비슷한 처지로 살고 있습니다. 귀신 여화는 노인을 만나고 곧바로 알아봅니다. 둘이 유곽에서 처음 만났을 때 불렀던 노래를 부르고, 노인도 여화를 알아보고요.

    여화는 노인에게 선물받았던 연지구를 돌려주면서 말해요. “이걸 53년간 품고 있었어요. 이제 돌려드릴게요. 더는 기다리지 않겠어요.” 그러면서 저승으로 떠납니다. 남자를 죽여서라도 소유하려 했던, 딴 여자가 갖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죽여버리려 했던 그녀는 그렇게 자유로워졌습니다. 아니, 그런데 혼자만 자유로워지면 되는 건가요. 초라한 노인이 된 진도련님은 떠나는 그녀에게 외칩니다. “여화! 날 용서해줘! 날 두고 가지마!” 아니, 뭘 용서해요? ‘널 사랑하지만 죽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너가 준 약을 다 받아먹었지만 죽지 못한 게’ 왜 용서받아야할 일인지. 그건 아니지 않나요.

    1980년대 홍콩 영화 전성기에 당대 인기 스타였던 30대 장국영과 20대 매염방이 출연한 ‘연지구’는 홍콩금상장영화제 작품상·감독상·여우주연상(매염방) 등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흥행도 성공했다고 하고요. 저는 이 영화의 여주인공을 응원하기 어려웠지만 영화는 보시는 분의 것이니까요. 멜로면 어떻고 스릴러면 어떻겠어요. 장국영과 매염방의 미모 대결 중심으로 보셔도 되겠습니다(장국영 완승). 그럼, 저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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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세상의 창이고 호수이며 거울. 여러분을 그 곁으로 데려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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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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