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성 없었다는 식 서술···가해 역사 희석
“주요 쟁점 획일적 서술, 사실상 ‘국정 역사’”
일본 문부과학성이 24일 개최한 교과서 검정 조사심의회 총회에서 2027년도부터 일본 고등학교에서 사용될 교과서들이 심사를 통과했다. 사진은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를 기술한 역사 관련 고교 교과서.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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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공개된 일본의 새 고교 검정 교과서에서 일제강점기 징용과 위안부 동원 등의 강제성과 관련된 내용이 사라지고 있다.
한혜인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연구위원과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일본의 새 고교 검정 교과서를 현행 교과서와 비교·분석한 결과, 제국서원 ‘세계사탐구’ 교과서에서 기존 ‘노동자가 강제로 연행됐다’는 표현이 ‘징용·동원됐다’로 변경됐다고 25일 밝혔다. 또 짓쿄출판의 새 세계사탐구 교과서에서는 조선인과 중국인 강제노동과 관련해 “힘든 노동에 종사하게 됐다”는 서술을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였다”로 바꿨다. 일본의 징용에 강제성이 없었다는 쪽으로 표현을 변경하면서 가해 역사를 희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역사 왜곡은 일본 정부가 2021년 4월 조선인 ‘연행’, ‘강제연행’ 등의 표현을 쓰는 것이 적절하지 않으며 ‘징용’이라는 용어가 적당하다는 국회 답변서를 결정했던 것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이후 일본의 교과서에서는 ‘연행’이나 ‘강제연행’ 등 표현이 차츰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아울러 이번 검정 과정에서는 새 지리·역사, 정치·경제 등의 교과서에 대해 ‘정부의 통일적 견해’에서 벗어난다는 지적이 한 건도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즉, 독도나 근대사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자국에 불리한 기술이 없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출판사 측에서 수정 지시가 나오기 전에 선제적으로 일본 정부 견해를 따랐을 가능성도 크다.
한 위원과 이 연구원은 교과서 작성의 지침이 되는 학습지도요령이 바뀌지 않아 교과서 내용에 큰 변화가 없다면서도 교과서에 정부 견해를 반영하는 움직임이 고착화했다고 짚었다. 한 위원과 이 연구원은 “다양한 교과서가 존재함에도 주요 역사 쟁점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는 획일적 서술이 이뤄지고 있다”며 “이는 사실상 ‘국정 역사’와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동북아역사재단 관계자는 “출판사가 자기 규제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 견해를 따르면 불필요하게 수정 작업을 거칠 필요도 없고 일선 학교가 자신들의 교과서를 채택할 확률도 높아진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24일 개최한 교과서 검정 조사심의회 총회에서 2027년도부터 일본 고등학교에서 사용될 교과서들이 심사를 통과했다. 사진은 현행 역사, 지리 관련 고교 교과서.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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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전문가들은 우익 사관을 담은 레이와서적 교과서 4종이 모두 검정을 통과하지 못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레이와서적은 일제 식민지 확대와 태평양전쟁 등 가해 역사를 축소하고 한반도 식민 지배가 근대화로 이어졌다고 주장한 중학교 역사 교과서를 펴내 2024년 검정에 합격한 바 있다. 다만 이 책은 학교 현장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고 있다.
이번에 문부과학성은 레이와서적의 역사, 지리 고교 교과서가 중학교 교과서와 내용이 거의 같다는 점을 문제 삼아 불합격 판정을 했다. 산케이신문은 레이와서적 교과서에 대해 문부과학성이 학교교육법에 비추어 ‘중대한 결함이 보여 적절성이 결여돼 있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동북아역사재단 관계자는 “레이와서적 교과서는 우익적 시각을 어느 정도 교과서에 반영해도 되는지 알 수 있는 바로미터”라며 출판사가 교과서를 발행하는 배경에 정치적 의도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익 성향 산케이신문은 국어 관련 교과서 중에 일본군의 가해 역사를 일방적으로 기술한 내용을 담은 책들이 검정을 통과했다고 24일 보도했다. 지쿠마쇼보의 문학·국어 교과서는 요시다 미쓰루가 쓴 ‘전함 야마토의 최후’를 소개했는데, 이 글에는 야마토가 침몰할 때 구조정에 손을 대는 생존자의 손목을 지휘관이 칼로 베어버렸다는 묘사 등 일본군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포함돼 있다. 지쿠마쇼보의 논리국어 교과서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오키나와에서 벌어진 전투의 경험자가 ‘일본은 전쟁 가해자이다’라고 호소하는 내용도 들어있다. 또 메이지서원의 문학·국어 교과서에도 일본 병사가 필리핀에서 주민을 살해하는 내용이 있는 소설 ‘야화’가 수록됐다.
산케이는 지리·역사 교과서의 경우 다면적·다각적 시점 요구, 특정한 사건에 대한 지나친 강조 자제 등의 검정 기준이 있지만, 국어 교과서에는 이러한 기준이 적용되지 않아 일본의 가해 사실을 묘사한 글들이 게재됐다고 분석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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