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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 (화)

이슈 무병장수 꿈꾸는 백세시대 건강 관리법

[맥킨지의 빅픽처]한국 의료시장은 ‘전자건강기록’의 보물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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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반부터 모은 데이터로 의료 질 높일 수 있어

클라우드 정보 활용한 신규 비즈니스 속속 등장

질병 진단 2시간 단축…의료비 절감, 맞춤형 치료

2020년 시장 2조원대 전망…한국의 신성장동력

인공지능(AI)이 모든 트렌드를 압도해 기업 가치까지 좌우하는 시대가 가까워지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개발한 개발업체들은 이를 무료로 개방한다. 예컨대, 구글은 자사의 인공지능 기술을 텐서플로(TensorFlow)라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용 도구로 만들어 개방했다. 쉽게 말해 데이터만 있으면 인공지능을 구현할 수 있는 뼈대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구글뿐만 아니라 오픈소스(소스코드 무료공개)로 진행되는 인공지능 프로젝트들은 무궁무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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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럴까? 이는 결국 데이터가 승부처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데이터 확보량과 비례해 발전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기업은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다. 한국의 헬스케어 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데이터를 쌓아놓고 있는 특별한 곳이다. 바로 전자건강기록(Electronic Health Record, EHR)이다. 하지만 이런 데이터의 보고를 아무도 쓰고 있지 않다.

한국은 1990년대 중반 처방전달시스템(OCS) 도입을 시작으로 2000년대 중반 본격적인 EHR 구축기를 거치면서, 현재 EHR 보급률이 전체 시장의 70% 이상을 웃돌고 있다. 상급 종합병원은 보급률이 90%를 웃돈다. 20여년간 EHR을 사용하면서 국내 초대형 병원의 경우 수백만 명의 진료 데이터를 모아온 것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엄청난 규모의 정보다. 국내 EHR 시장은 앞으로도 연 10%씩 성장해, 2020년이면 2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지금의 EHR은 반쪽짜리다. 의료기관 간 EHR을 상호 공유하고 전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각 병원이 구축한 EHR시스템의 정보 간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이 없다. 그래서 환자들은 이미 찍은 엑스레이를 다른 병원에 가서 다시 찍어야 하는 비효율성을 감내하고 한다. 의료 기록이 환자가 아닌 병원 것이라는 인식이 강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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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데이터를 제대로만 쓴다면 당장 의료의 질을 높일 수 있다. 과거 수백만 명의 의료 기록을 바탕으로 최적의 치료 지침을 만들고, 환자 개인 맞는 맞춤형 치료도 가능해진다. 예컨대, 구글의 인공지능 담당 조직인 ‘딥마인드’는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와 파트너십을 맺고, 급성 신부전증의 조기 신호들을 즉시 알아내는 알고리즘을 공동 개발했다. 이는 160만명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실제 병원 진단 시간을 2시간가량이나 단축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정도면 생사를 가를 수 있는 시간이다.

의료의 질 향상뿐 아니라 의료 자원 효율성을 높여 비용을 절감하는데도 큰 효과가 있다. 불필요한 의료 사용 비용이 2400억 달러에 육박한 미국의 경우, 의료보험 업체들은 EHR 데이터를 활용한 비용 절감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고 있다.

이제 한국의 EHR도 현재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바로 가상 저장 공간을 빌려 진료 기록 데이터를 구축하는 클라우드(가상 저장 공간) 기반 소프트웨어형(SaaS) EHR이 그것이다. 이 SaaS EHR은 다른 산업에는 이미 도입돼 장점이 알려졌지만, 헬스케어 산업은 그간 환자정보를 보호해야 한다는 규제로 도입이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 전자 의무기록을 외부 장소에서도 관리 가능하도록 관련 규제가 풀리면서 정부 주도의 클라우드 EHR 시범 사업들이 진행 중이다.

표준화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국의 모든 EHR이 클라우드화될 경우 그 잠재력은 엄청나다. 전 세계 모든 헬스케어 데이터 과학자들과 인공지능 플랫폼들이 군침을 흘리며 덤벼들 것이다. 자연스레 다양한 서비스와 스타트업들이 부상할 수 있는 생태계도 조성될 것이다. 이미 미국에선 비슷한 서비스가 시작됐다.

미국의 의료 클라우드 서비스 특화 업체인 아테나헬스(athenaHealth)는 의료기관에 EHR시스템, 진료비 청구 시스템, 의약품 주문 등의 업무를 통합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기존의 고정 비용 모델이 아니라, ‘성과 지불 제도(Pay for performance)’ 모델을 적용했다. 의료기관은 아테나헬스를 통해 처리한 업무에 대해 수익의 일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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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업체인 프랙티스퓨전(Practice Fusion)은 클라우드 기반의 EHR시스템을 의료기관에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제약사ㆍ연구실ㆍ영상센터에 마케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수료를 받는다. 클라우드 서버에 축적된 5000만명 이상의 진료 데이터를 의료정보보호법의 규정에 부합하게 가공한 뒤 리서치 용도로 판매해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다.

중국에서도 신규 비즈니스 모델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중국 핑안 헬스케어 매니지먼트는 최근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4억 달러를 투자받았다. 핑안 헬스케어 매니지먼트는 2018년까지 220여개 도시 5000여개 병원에 사회건강보험(SHI)서비스 및 의료 기록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 회사는 의료를 포함한 보험ㆍ뱅킹ㆍ식품ㆍ게임 등 다양한 분야에 클라우드 플랫폼을 지원하고 있다. 앞서 소프트뱅크는 2014년 설립된 O2O(온라인ㆍ오프라인 연계) 의료 서비스 플랫폼인 핑안 굿닥터(Ping An Good Doctor)에도 투자한 바 있다.

물론 환자 개인 정보에 대한 철저한 안전장치는 절대적인 필요조건이다. 병원 자체 서버에 환자 정보를 저장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상위권 병원을 제외하곤 데이터 안전성이 취약한 게 현실이다. 하지만, 해결 불가능한 장애물은 아니다.

클라우드 기반의 EHR 도입은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한국 의료시스템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최근 의료계에서 가장 큰 화두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일명 ‘문재인 케어’)은 환자의 의료비 본인 부담을 낮추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자칫 건강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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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건강보험료 인상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으로, 의료기관 간 진료정보 교류가 없는 비효율적인 의료 전달 체계 개선부터 개선해야 한다. 간단한 만성질환 환자들이 초대형 병원을 방문해 치료를 받는 것은 엄청난 사회적 비용 낭비다. 모든 병원과 의원이 같은 환자를 잡기 위해 과도하게 경쟁하는 상황은 분명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다.

정보기술(IT) 강국의 강점을 살려 세계적인 EHR 변화의 흐름에 올라탄다면 의료의 질, 비용 절감뿐 아니라 성장 동력까지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서제희 맥킨지 한국사무소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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