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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여행] 계곡물에 첨벙… 숲그늘에 休∼ 산바람에 夏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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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횡성으로 피서 떠나요

이런 날씨라면 에어컨이 틀어진 실내 외에 더위를 피할 곳이 떠오르질 않는다. 나가면 한증막이 따로 없다. 하필 더운 때가 한창 휴가 피크철이다. 집 밖은 위험하다지만, 그래도 떠나야하는 휴가다. 먼저 떠오르는 곳은 바다지만 더위를 피하는 데 있어선 바다보다는 계곡이 더 낫다. 깊은 산속을 흐르던 지하수가 만들어 낸 계곡은 아무리 덥더라도 시원함을 유지한다. 오히려 너무 차가워 오래 몸을 담글 수 없을 정도다. 계곡을 덮고 있는 숲은 열기마저 숨죽이게 한다. 계곡의 매력이 발할 때가 바로 이런 날씨다. 태양과 가까운 고지대의 기온이 의외로 낮다. 높은 산에 올라 맞는 바람은 아래서 맞는 바람과 달리 한여름에도 선선함을 품고 있다.

치악산은 강원 원주와 횡성에 걸쳐 있다. ‘치가 떨리고 악에 받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험한 산이지만, 그건 외치악인 원주쪽 얘기다. 내치악인 횡성에서 산을 오르면 한결 편하게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 그렇다고 이렇게 무지막지한 더위에 치악산을 굳이 정상까지 오를 이유는 없다.

세계일보

강원 횡성 병지방 계곡은 바닥에 있는 조약돌이 비칠 정도로 물이 맑고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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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에서 치악을 오는 길 중 이맘때는 부곡계곡이 최고의 피서지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숲길이어서 한적함은 기본이다. 치악산부곡탐방센터를 들머리로 한다. 일반적으로 곧은재까지 4.1㎞ 구간 정도 걷고 오면 3시간 정도 걸리는데, 딱히 목표를 잡을 필요는 없다. 쉬엄쉬엄 숲길을 따라가며 시원한 계곡에 발을 담근 뒤 이쯤 하면 됐다 싶을 때 내려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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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센터를 지나면 바로 나무들이 우거져 뜨거운 태양을 가린다. 공기의 온도도 달라진다. 호흡할 때마다 열기를 품은 공기를 들이마신 뒤 내뱉었지만, 숲에 들어서니 비로소 편하게 숨을 쉬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는 기분을 만끽하게 된다.

숲길은 아이들과 함께 와도 될 정도로 힘들거나 위험한 구간이 없다. 10여분 걸으면 부곡폭포를 만난다. 수직낙하하며 우렁찬 소리를 내는 폭포는 아니다. 비스듬히 바위를 타고 내리는 폭포다. 장마가 끝나 비가 없는 한여름에도 수량이 넉넉해 시원한 맛이 제법이다. 이곳에서도 30분 정도 걸으면 첫 번째 나무다리를 만난다. 나무다리를 만날 때까진 계곡이 옆에 흐르고 있지만, 들어가선 안된다. 멸종위기 야생생물인 열목어의 서식지여서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다. 시원한 계곡물에 다리를 담그는 것은 첫 번째 나무다리를 지나서부터다. 이곳에서 30분 정도 더 오르면 두 번째 나무다리를 만나고 거기서 곧은재로 길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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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에게 거짓말을 한 뒤 죄책감에 물에 빠져 죽은 노인 동상.


부곡계곡은 계곡 자체보다 조선 태종과 스승 그리고 한 노파 사연으로 유명하다. 이방원은 임금이 된 후 왕자 시절 스승이었던 원천석을 만나러 계곡이 있는 강림면에 행차를 했다. 스승은 제자가 도착하기 전 냇가에서 빨래하는 할머니에게 어떤 사람이 물으면 자신이 간 반대방향으로 길을 알려줄 것을 요청했고, 이 노인은 원천석이 시킨대로 거짓말을 했다. 이방원은 7일 동안 스승을 기다리다 결국 만나지 못한 채 한양으로 돌아갔다. 태종이 머물던 곳은 주필대로 불려오다가 후대에 태종대로 불린다. 이들때문에 화를 입은 건 노인이었다. 노인은 자신이 거짓말한 사람이 임금이라는 사실을 알고 죄책감에 물에 빠져 죽었다. 노인이 죽은 곳은 노구소라고 부른다. 강림마을 주민들은 노인을 기려 노구사당을 짓고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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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태산자연휴양림에선 인공림과 천연림이 잘 조화된 울창한 산림을 즐길 수 있다.


숲그늘을 더 즐기려면 청태산자연휴양림으로 향하면 된다. 계곡보다는 인공림과 천연림이 잘 조화된 울창한 산림을 즐기며 캠핑을 하거나, 숙소에 머물면 된다. 1200m 청태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가 6군데 있는데, 체력을 감안해 숲을 즐기며 안락한 여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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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지방 계곡에서 어린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시원하게 계곡 물놀이를 즐기려면 병지방계곡이 있다. 어답산을 끼고 6㎞에 걸쳐 굽이쳐 흐르는 계곡으로 여름에도 서늘하다. 계곡바닥에 있는 조약돌이 비칠 정도로 물이 맑고 차다. 협곡을 타고 부는 바람에 시원함은 기본이다. 특히 선녀탕 주변은 기암괴석이 서있고, 계곡이라기보다 하천으로 보일 정도로 넓은 개울이 있어 물놀이를 즐기기 제격이다. 병지방은 삼한시대 말기, 진한의 마지막왕 태기왕이 병사를 모아 방비한데서 유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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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력발전단지가 있는 태기산에선 바람이 더위를 날려보낸다.


우연일지 몰라도, 횡성에서 여름 더위가 피해가는 장소 중 한 곳이 태기왕 관련된 태기산(해발 1261m)이다. 병지방 계곡이 물로 더위를 누그러뜨린다면, 태기산은 바람으로 더위를 물리친다. 태기산의 옛 이름은 덕고산이었다. 태기왕이 신라에 대항한 후 태기산으로 불렸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풍력발전단지가 있는 태기산 줄기를 차로 오르며 어디서든 마음에 드는 곳에 내려 바람을 느끼면 된다. 아래는 섭씨 35도를 넘는 날씨지만, 산에 오르면 30도 아래도 기온이 떨어진다. 태기산 곳곳에는 양치식물길, 조릿대길 등 수풀이 우거진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 여름을 잠시 잊게 한다.

횡성=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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