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 보내는 것보다 100배 낫다는 말 듣게 열심히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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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첫 위헌제청, 2004년 첫 1심 무죄 판결, 2016년 첫 2심 무죄 판결, 지난 6월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는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종교 또는 신념을 이유로 한 병역거부자의 인권은 더뎌도 한 걸음씩 나아갔다. 그리고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총을 들지 않겠다는 이들의 결정이 병역법에서 정한 ‘입영을 하지 못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첫 무죄 판결 주인공인 오승헌(34)씨는 이날 선고 뒤 대법정을 나와 아내를 끌어안았다. 그는 기자들 앞에서 상기된 표정으로 “대법원의 용감한 판결에 감사하다. 국민의 찬성 의견에도 감사하다. 국민의 높은 관용을 실감했다”고 소감을 말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오씨는 “(앞서 처벌받은) 2만여명 선배·동료 병역거부자들이 있어 오늘이 있었다. 대체복무에 대한 오남용을 우려하는 여론도 잘 알고 있다. 그런 우려 해소시킬 수 있도록 성실히 복무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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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씨의 지난 14년은 여느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다르지 않았다. 할머니와 부모님을 따라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됐고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칼을 잡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할 것’이라는 성경 말씀대로 살고자 병역을 거부하기로 결심했다. 오씨의 아버지도 학창시철 군사훈련인 ‘교련’을 거부하다 고등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오씨의 첫 입영영장은 2003년에 나왔지만 이듬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결정을 보려고 미뤘다. 참여정부 때인 2007년 국방부가 대체복무제 도입을 발표하면서 또 기다렸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뒤인 2008년 대체복무제 도입은 무효가 됐지만, 한번 더 헌재 결정을 지켜보려고 입영을 연기했다. 2011년 헌재가 재차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 합헌 결정했지만, 바로 다음해 창원지법 마산지원 김관구 판사가 병역법 조항의 위헌제청을 결정했다. ‘무죄’를 믿는 오씨는 희망을 놓을 수 없었다. “처음 몇 해는 실망했죠.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변화는 아니더라도 긍정적인 신호가 계속 이어지니까 언젠가 해결될 거라 믿었습니다.”
결국 현역병 입영통지서를 받고도 입영하지 않은 오씨는 2013년 10월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이듬해 기존 헌재 결정과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2심은 2년 넘게 판단을 미루다가 2016년 6월 오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오씨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기존 판례대로 바로 오씨의 유죄를 확정하지는 않았다. 대신 지난 6월 대법관 13명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서 판단하기로 결정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인 동생은 이미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고 옥살이를 했다. 오씨 가족은 기소된 해 태어난 딸이 놀라지 않도록 ‘아빠가 감옥에 갈 수 있는 상황’을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올해 태어난 둘째는 아들이었다. 딸과 아들도 아버지의 대법원 선고를 함께 지켜봤다.
5년의 재판은 오씨에게 고통스럽지만은 않았다. “재판을 받으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바라보는 검사와 판사의 태도가 조금씩 변했다고 느꼈습니다. 일반 형사 범죄자보다 정중하게 대해줬고, 헌재 결정을 기다려주기도 했죠. 대법원 공개변론도 직접 봤는데 부정적인 의견이 주류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이제 오씨는 헌재 결정에 따라 2019년 12월31일 전까지 도입될 대체복무제를 기다린다. “대체복무제를 오남용하지 않을까, 현역병에 비해 편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논리적인 설득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것 같아요. 감옥에 보내는 것보다 100배 낫다는 말이 나올 수 있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만 저희의 양심을 지킬 수 있도록 군과 무관한 대체복무제가 도입되길 바랍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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