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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세계타워] 국민 안중에 없는 ‘선거제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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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모두 ‘국민의 뜻’ 내세워 / 의원들 당리당략에 더 골몰 / 연동형 비례제 최선의 답 아냐 / 사리사욕 버리고 민의 수렴을

어김없이 민의(民意)가 등장했다.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민심 그대로의 민주주의”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과연 국민들이 의원 수를 늘리는 데 동의하겠느냐”고 반문한다. 양측 모두 지금의 정치불신을 전제로 국민의 뜻을 내세운다는 게 기이하다.

여의도를 향한 국민들 시선은 곱지 않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정치권의 수사를 곧이곧대로 믿는 유권자는 거의 없다. 국민들 눈에 정치인은 대의(大義) 대신 사리(私利)에 더 골몰하는 족속이다. 정당은 국민 살림살이나 나라의 앞날보다는 당리당략을 더 우선하는 패거리 같다. 국회는 대의(代議)를 앞세워 제 밥그릇을 챙기는, 대표적인 철면피 집단으로 통한다. 지난 3주간 첨예화한 선거제 개편보다 ‘금배지’ 연봉 인상 폭이 더 회자되는 이유다.

세계일보

송민섭 정치부 차장


이 같은 정치 불신·혐오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겪은 만큼 절실한 법이다. 20대 국회에 입성한 300명 당선자들 가운데 국민의 고통을 절감하고 이를 대변할 만한 이력의 정치인은 찾기 힘들다. 평균 재산은 41억4000만원, 서울·고려·성균관·연세대 출신은 49%, 남성은 83%에 달한다. 이 같은 고스펙 기득권층이 목숨을 위협하는 민생고와 입시·구직 걱정, 한밤중 택시 타기가 두려운 마음을 알 턱이 없다. 그럼에도 민생을 위한다며 차별금지법을 만들고 청년일자리 예산을 내세우며 미투 법안을 내놓는다.

이런 와중에 선거제 개편 담론은 다소 생뚱맞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하는 쪽은 현행 소선거구 다수대표제보다 ‘대표성’과 ‘비례성’을 강화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각 정당의 의석수를 좌우하는 것은 의원들 경쟁력이 아니다. 정당이 얻은 표에 따라 의석수가 배분된다. 사표(死票)를 최소화해 국민의 뜻을 받들고 각 분야 전문가를 공천해 사회·경제적 약자를 대변할 수 있다는 논거다.

그런데 정당에 대한 지지가 곧 민심을 대표하는지는 의문이다. 각 정당의 이념적 지향점이나 배려하는 계층, 제시하는 비전이 뚜렷하게 차별화되지 않아서다. 심지어 민주당과 한국당의 경계도 흐릿하다. ‘포용적 성장’과 ‘따뜻한 보수’라는 이념적 구호가 여야 또는 영호남 이상의 소구력을 갖는지는 자문해볼 일이다. 의원이 지역민을 대변해야 하는지, 정당 또는 계층, 직능을 대표해야 할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비례대표도 마찬가지다. 비례대표 의원이 늘어난다고 해서 국회가 정쟁이 아닌 정책경쟁을 벌일까.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가 2:1 정도가 되면 한국정치는 저절로 발전하는 것일까. 착각일 수 있다. 비례대표는 오히려 당론을 관철시키기 위한 대여·대야 투쟁의 선봉대를 자임할 때가 많았다. 특정 계층이나 사회·경제적 약자를 대변한다고 볼 수도 없다. 20대 국회 초선의원(132명)의 이전 직업은 공직자(46명), 정당인(18명), 법조인(15명), 기업인(11명), 교수(10명) 등이었다. 이들도 기득권층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아이리스 매리언 영은 사회적 정의를 구조적 억압과 지배의 문제로 바라본다. 영은 저서 ‘차이의 정치와 정의’에서 기득권층은 형식적으로는 대의나 민주적 절차를 내세우지만 종국엔 자신들 관점과 이해만 강요할 뿐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집단 대표제는 억압을 받거나 불이익을 받은 집단이 목소리를 보장하고 정당한 결과가 나오도록 촉진하는 최선의 수단”이라고 강조한다.

여야 5당이 내년 1월까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법을 개정하기로 지난 15일 합의했다. 언제 휴지조각이 될지 모르는 합의문이지만 “국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면서”, “모든 국민이 행복하고 잘사는 민주적 제도” 등 자찬은 넘친다. 조그마한 성공의 경험이 쌓여 큰 발전을 이루는 법이다. 선거법 개정 여부와 상관없이 여야가 차기 총선에선 20∼30대 후보자를 유권자 비율에 맞게 33% 공천했으면 한다. 30대 이하 국회의원이 단 2명이라는 건 너무 하지 않은가.

송민섭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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