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이라는 여인이 연인 사다함이 출정할 때 지어준 향가 ‘송출정가’(送出征歌)에 대한 박창화의 필사본을 둘러싼 진위는 아직도 학계에서 치열하게 논쟁 중이다.
한쪽에선 공개된 필사본이 일제 강점기 시점에서 창작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내세우는가 하면, 다른 쪽은 신라 향가와 다른 향찰 표기로 근대 창작물이라고 주장한다.
격렬한 진위 논쟁에서 저자는 새로운 향가 해독법인 ‘향가 팔법’을 통해 ‘필사본은 위서’라고 말한다.
우선 향가는 최대한 많은 이들이 부를 수 있도록 만든 노래라는 중구삭금법(衆口鑠金法)이 적용돼야 하는데, ‘송출정가’는 개인용이지 집단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향가는 또 청을 하되, 그것을 숨겨야 하는 ‘청언’(請言)이라는 두 번째 원칙에서도 어긋난다. 미실이 자신의 청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감추어야 하는’ 보편적 흐름과 맞지 않는다는 것. 저자는 “‘삼국유사’ 향가 14편 중 청을 이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낸 향가는 한 편도 없다”고 했다.
주의를 환기하는 소리를 표기하는 ‘보언’(報言), 청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위협하는 말을 담아두는 입언(立言) 등의 법칙에서도 ‘송출정가’는 예외적이다.
저자는 향가 속의 한자는 기본적으로 의미를 풀어야 한다는 향가 팔법의 핵심 법칙을 내세워 ‘송출정가’가 기본적인 향가 제작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오쿠라 신페이 이후 양주동 박사까지 이어진 근대 향가 해독법이 ‘뜻이 아닌 소리’에 의존하는 이론에 묶여있었던 탓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저자는 “중구삭금법 등 향가 제작 법칙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이 향가는 신라 당시 제작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화랑세기’ 필사본은 한편의 창작된 ‘시대 소설’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인 학자가 주도해 지금까지 정설로 굳어진 신라 향가 풀이를 부정하는 이 책은 신라인이 적어놓은 해독법을 기초로 새로운 해독법을 정립했다.
저자에 따르면 향가는 고대인들의 사고체계와 행동양식을 노래 형태로 종합하고 한자라는 문자를 통해 체계화한 것이다. 신라인들은 향가를 제작할 때 중구삭금법 등 4가지 구성요소를 유기적으로 결합했다는 사실을 향가 14편의 해독을 통해 발견했다.
저자는 여기에 자신이 찾은 4가지 방법을 더한 ‘향가 팔법’이라는 법칙에 따라 향가 14편이 모두 예외 없이 해독된다는 것도 확인했다.
향가 해독 100주년을 맞아 던져진 충격적 향가의 재해석이 학계에 어떤 파장을 낳을지 주목된다.
◇천년 향가의 비밀=김영회 지음. 북랩 펴냄. 313쪽/1만4800원.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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