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역서울284 공간 투어
일제 수탈과 독립운동 주요 거점
상하이 등 이어주던 관문
파발마 시계 등 근현대사 유물 그대로
문화역서울 284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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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우리나라 철도는 1899년에 처음 생겼다. 바로 경인선이다.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철로였다. 인천에는 제물포역이, 서울에는 서대문역이 마지막 역이었다. 이듬해 7월에는 한강철교가 개통했다. 이어 경인선 마지막 구간인 노량진~남대문역(현재 이화여고 자리)도 완공했다. 남대문역은 아래 논 한복판에 10평 남짓한 2층짜리 목조 건물이었다. 일제는 조선을 식민통치하기 시작한 1919년 8월, 남대문역의 이름을 경성역으로 바꿨다. 이후 경성역을 1922년 6월부터 1925년 9월까지 3개월여에 걸쳐 새로 지었다. 현재 ‘문화역서울 284’가 당시 지은 건물이다.100년 전, 일제의 식민지 수탈의 상징이자 독립운동의 주요 거점인 동시에 도쿄·상하이·블리디보스토크을 이어주던 국제 관문이었던 곳이 바로 여기였다.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동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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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역 외관에 숨은 3가지 보물
이번에 소개할 곳은 100년 전 서울역을 둘러보는 여정이다. 지금은 문화역서울284로 불리는, 100년 전의 경성역이다. 전문 가이드의 안내와 설명을 들으면서 당시의 경성역 내·외부를 둘러보는 코스다. 투어의 시작은 정문 밖에서부터다. 외관에서 주목할 곳은 크게 3곳이다. 먼저, 정문 앞 바닥에 새겨진 ‘철도 설립 100주년 기념 동판’이다. 이 동판은 우리나라 철도 역사를 담고 있다. 경인선이 그 시작이었다. 여기에는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가 있다. 경인선 철로 사업은 조선이 먼저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조선의 왕인 고종은 1896년 미국인 제임스 모스에게 경인선 철로 부설권을 허가했다. 하지만 자금난에 빠진 모스가 1897년 일본에 부설권을 넘긴 것이다.
귀빈 전용 출입구로 사용하던 ‘토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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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경성역에 걸려 있는 대형 벽시계인 ‘파발마’다. 철도와 시계는 뗄 수 없는 관계다. 오죽하면 시계가 철도역에 붙어 있고 없고에 따라 건축양식을 나눌 정도였다. 철도는 조선인의 시간관념을 바꿔놓았다. 이전에는 시간 개념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었다. 하지만 약속된 시간에 움직이는 철도가 들어오면서 시간개념이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이 파발마는 전국의 철길을 잇는 기준점이었다. 시계가 귀했던 당시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표준시계와 같았다. 이 파발마는 지금까지 딱 3개월만 멈췄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이 여러번 전쟁에 휘말리게 되자, 역무원 여러명이 나눠서 부산까지 피란 갔다가 돌아왔다.
마지막은 ‘토치’(Torch)다. 경성역은 외관으로 보면 건물 왼쪽이 오른쪽보다 더 돌출된 형태다. 이 부분이 바로 토치다. 토치는 귀빈 전용 출입구였다. 안전한 경호와 편의를 위해 귀빈실과 바로 입구로 이어져 있다. 경성역이 르네상스 건축 양식과 바로크 건축 양식의 절충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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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지다
문화역서울 284 중앙홀. 현재 이곳에는 커피사회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
이제는 내부를 둘러볼 차례다. 여기서 부터는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100년전 경성역. 당시 유행을 선도했던 모던보이나 모던걸이 경성역으로 들어선다. 정문으로 들어서자 매표소에는 기차표를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마침 열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온다. 각양각색의 승객들이 우르르 내린다. 중앙홀에서는 군인들이 승객들을 검문 중이다. 승객 중에는 조선총독부의 고위 간부도 있었고, 독립운동가도 있었다. 일본으로 떠나려는 유학생도, 물건을 팔기 위해 찾은 상인도 열차에서 내렸다. 물론 당시의 모습은 거의 남아있지는 않지만, 거대한 석재 기둥이며, 매표소 벽 위에는 옛날 열차 시간표가 붙어 있던 흔적 등은 여전히 남아 있다.
100년전 3등실 대합실로 사용했던 공간. 지금은 ‘커피사회’ 전시회가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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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도 열차표에 등급이 있었다. 객실은 1·2·3등실로 나눴다. 중앙홀 오른쪽은 가장 낮은 등급인 3등칸 기차표를 끊은 이들이 대기하는 대합실이 있었다. 중앙홀 왼쪽은 지금의 특실 개념인 1·2등칸 기차표를 끊은 승객들이 대기하는 대합실이 있었다.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플랫폼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이때도 1·2등급 승객과 3등 승객이 이용하는 계단이 달랐다. 플랫폼으로 나가는 길 벽에는 총알에 구멍이 숭숭 뚫린 모습 등 한국전쟁 당시 교전의 흔적도 남아있다.
플랫폼 나가는 길 벽에는 한국전쟁 당시 총알에 구멍이 숭숭 뚫린 모습을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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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등 대합실 옆에는 별도의 여성 전용인 부인대합실이 있다. 당시만 해도 남녀가 한 방에 섞여 있을 수 없었다. 하물며 연인이나 부부가 와도 따로 떨어져 있어야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따로 남녀를 분리했다가 열차에 오르면 한 공간에 다 함께 섞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최남선의 ‘경부철도’ 노래 한 대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열차 안에서는 남녀노소, 내·외국인 상관없이 섞여 앉아 별세계를 이루고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귀빈실로 사용하던 공간에 지금은 ‘포토존’이 들어서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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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안쪽에는 ‘귀빈실’이 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벽난로와 거울이 있고, 고급 장식벽지가 있어 한눈에도 특별한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이곳에 관람객을 위한 ‘포토존’을 설치해 놓고 있어 벽난로와 거울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다만, 곳곳에 고종과 영친왕, 덕혜옹주의 사진이 있어 이들이 사용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들 외에도 조선총독부의 고위관료와 국빈도 이곳을 이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해방 후에는 대통령 등이 기차를 타기 전 잠시 머물렀던 공간이다. 이 귀빈실은 귀빈 전용 출입구인 ‘토치’와 바로 이어져 있다.
과거 남자 화장실과 이발소였던 공간을 지금은 전시실로 사용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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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보이가 즐겨찾던 최초의 양식당 ‘그릴’
귀빈실에서 나와 2층으로 향한다. 1층 동쪽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복원전시실이다. 원래 2층 역사 내 남자 화장실과 이발소였던 곳을 전시장으로 개조했다. 이곳에는 복원하기 전의 나무 골조와 장식, 사진 자료 등을 볼 수 있다. 또 중앙홀의 스테인드글라스 변천사를 보여주는 사진자료도 있다. 처음에는 자연 채광 창으로 지어졌다가, 광복 이후 태극 문양의 스테인드글라스, 현재의 강강술래를 형상화한 스테인드글라스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 경성역의 설계도가 있다. 경성역을 건설한 주체는 남만주철도주식회사였다. 시공사는 일본의 시즈미 건설. 경성역 설계를 진행했지만 실제 누가 설계했는지 알려진게 없었다. 다만 스카모토 야쓰시 동경대 건축학과 교수가 경성역의 설계입면도 2장을 남겼지만, 여전히 의문점이 있다. 그 이유는 경성역이 실제 스위스 루체른(1896년)역을 모방한 건물이어서다.
스카모토 야쓰시 동경대 건축학과 교수가 그린 경성역의 설계입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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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옆은 우리나라 최초의 양식당인 ‘그릴’이다. 이상은 그의 소설 ‘날개’에서 돈은 없어도 꼭 머물고 싶은 꿈의 공간으로 묘사했다. 당시 이곳은 모던보이와 모던걸의 집합소였다. 근무한 요리사만 무려 40명에 달할 정도였다. 이곳에는 국내 처음 도입한 시설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음식용 엘리베이터다. 이 엘리베이터는 지하 층의 서양요리장과 일식 요리장과 연결했다. 음식을 주문하면 이 엘리베이터를 통해 음식을 2층까지 전달했다. 이후 국영기업으로 운영하다 1988년 경영난 악화로 문을 닫았다. 그릴 바로 옆 통로 공간은 ‘소식당’이 있던 자리다. 중앙홀을 바라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차역에서 서양 음식을 맛볼 수 있었던 만큼 고급문화의 향유지였다. 서측 복도는 기차를 타는 승차장으로 쓰던 공간이다. 현재는 관람객들의 쉼터로 활용하고 있다.
최초의 서양식 레스토랑이었던 ‘그릴’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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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팁= ‘문화역서울284’의 공간 투어 프로그램은 무료로 상시 진행한다. 가이드 투어는 주중과 주말 오전 10시 30분, 오후 14시, 16시 등 3회 운영한다. 단, 월요일은 휴무다. 프로그램은 문화역서울284 홈페이지 등에서 사전예약 할 수 있고, 현장 접수도 가능하다.
현 서울역 전신인 남대문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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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서울 284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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