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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소리 없이 우리를 지배하는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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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관료'에 대한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정치란 함부로 바꿔서는 안 돼? <노자>에 대한 그릇된 해석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요리를 하는 것과 같다(治大國(치대국), 若烹小鮮(약팽소선))."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이 구절은 대개 생선을 요리할 때 자꾸 뒤집으면 모양이 엉망으로 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요리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되어왔다. 특히 법가(法家)의 대표적 주창자이자 노자의 탁월한 제자이기도 했던 한비자(韓非子)가 이 구절을 "국가를 다스릴 때 정책의 안정성을 유지해야 하며, 자주 바꿔서는 안 된다"라고 풀이한 이래 이러한 해석은 주류적인 해석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아왔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은 안정을 최우선시하면서 개혁과 변화에 대한 요구를 반대하는 대표적인 보수적 논리로 활용되어왔다.

하지만 '선(鮮)'이라는 한자는 사실 '어(魚)'와 '양(羊)'이 합쳐져 만들어진 한자어로서 그 본래 의미는 물고기와 양고기 등의 총칭이다. 실제로 중국의 북방 지역에서는 양고기를 즐겨 먹었고, 남방 지역에서는 물고기를 식용으로 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팽소선(烹小鮮)'은 '간단한 요리'로 해석되는 것이 정확하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간단한 요리를 하는 것과 같다"로 해석해야 하며, 즉 정치란 자주 바꿔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원칙만 준수한다면) 거꾸로 아주 간단한 것이라는 의미다.

창해일속(滄海一粟), 넓은 관료의 바다에 한 톨 좁쌀

모처럼 관료제도 개혁에 대해 핵심을 찌르는 글을 볼 수 있었다. 바로 프레시안에 실린 정태석 교수의 <촛불 개혁, 한국당보다 더 큰 걸림돌이 있다 : 관료제 혁신이 절실하다> 기고문이었다.

필자는 그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관료 개혁을 주장해왔지만 어디에서도 메아리가 없었다. 특히 진보진영에서 더욱 무관심했다. 항상 정치권력 피아간의 문제에 집중할 뿐 관료 문제에는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관료집단은 마치 빙산의 일각처럼 전면에 보이지 않지만, 국민과 국민이 선출한 대표의 하부와 배후에서 그리고 모두의 무관심 속에서 실제 우리 사회를 진정으로 지배해온 세력이었다.

예를 들어, 국회사무처만 해도 사무총장이 '규정상' 자기 사람으로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은 비서실장 한 명뿐이다. 정부의 장관도 대동소이하고 지자체 단체장 역시 오십보백보다. 창해일속(滄海一粟), 그야말로 넓은 바다에 한 톨 좁쌀이다. 그러니 개혁이란 것을 해보려고 해도 이미 처음부터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최근 국회사무처에서 '매우 작은 개혁'의 움직임이 나타나자 사무처 직원들이 크게 반발한 일이 있었다. 정 교수의 지적처럼 관료들은 대체로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조직 자체를 유지하는 데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그러나 우리 국회가 모델로 삼고 있는 미국 의회의 경우, 의회를 지원하는 입법지원기구는 일반 행정가(Generalist)보다 각 분야의 전문가(Specialist)를 더 필요로 하게 된다. 예를 들어, 미 하원 법제실은 35명의 법제관과 15명의 법제보조직원으로 구성되는데, 법제관은 모두 변호사나 법학박사 등으로 이뤄진다.

또 미국 의회도서관에 소속되어 있는 의회조사처의 인력구성은 700명 중 연구요원(Analyst)이 400명 정도로 대부분 석,박사이다. 한편 의회조사처의 직원 채용은 필요한 직위를 적시에 선발하며 다양한 방식에 의해 이뤄진다. 2007년의 경우, 모두 82개 직위에 대한 채용이 이뤄졌고, 이 중 72개는 전문직과 행정직이었다.

'87 이후 우리 사회는 관료지배의 사회

이제 우리의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다원화된 현대 사회의 변화와 새롭게 펼쳐진 국민 주권의 민주주의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전문적 역량을 지닌 공무원을 선발할 수 있도록 공무원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동시에 선출된 정권이 그 정책을 실행하는 데 부합하는 고위 공무원을 자유롭게 임명할 수 있도록 공무원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정무직(政務職)'의 임명 범주가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훨씬 넓다. 즉, 대통령과 정부가 바뀌면 정부 국장급까지 정무직(political appointees)으로서 모두 대통령이 임명하게 된다.

프랑스 역시 중앙부처의 국장, 임명직 도지사, 교육감, 대사 등 500여 개의 직위가 정치적 임명직(자유재량 임명직)으로서 국무회의 심의 심사를 거쳐 특별 채용하는 등 대통령은 총 7만 여 개의 직위를 임명할 수 있다. 프랑스 헌법 제13조,「국가공무원지위에 관한 법률」제25조 및 동법 시행령은 "중앙 행정부 국장은 국무회의에서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대통령이 실제로 국장급 이상의 직위를 모두 직접 임명한다는 의미이다.

87년 이후 우리 사회는 "형식적인 법과 제도에 의한 지배"가 관철되어 왔다. 하지만 이 과정은 '정치'가 제 몫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가운데 관료집단의 권한이 '전일적으로' 강화, 심화되어온 과정이었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는 관료에 의한 지배가 '제도화'되었고, 그것은 강고한 틀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정 교수가 분석한 바처럼,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치권력보다 관료들이 정책 결정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커다란 위협이다. 그것은 '무늬만의 권력교체'이고 '무늬만의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물론 현 관료 제도를 개혁하는 것은 지금 드러나는 갖가지 채용비리에서도 알 수 있듯 최소한 단기적으로 여러 문제점이 수반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외부로부터의 진입이 일체 봉쇄된 현재의 독점적 관료제도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우리 사회는 그 어떠한 개혁도 전진시키기 어려우며 결국 이 땅의 민주주의를 한 치도 진보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다.

관료제도는 바꿔서는 안 되는 금단의 영역이 결코 아니다. 거꾸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으로서 공복(公僕)인 관료 시스템을 개혁할 때만 비로소 진정한 국민 주권의 민주주의가 이뤄질 수 있다.

기자 : 소준섭 국제관계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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