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의 상처가 남은 유산들이 여전히 우리 땅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아픈 역사를 되짚는 교육의 현장으로 보존되어야 할 텐데 이 유산들 오히려 흉물로 방치돼 있습니다.
깊이 있게 본다 강민우 기자가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기자>
일제강점기 근처 광산에서 캔 광물을 보관했던 전남 해남의 대형 콘크리트 구조물.
강제 징용 노동자들이 일하던 광물저장창고시설 내부입니다.
이곳에선 이 구멍을 통해 광물을 내린 뒤 바다에 도착한 수송선으로 옮기는 작업이 이뤄졌습니다.
이 광산 지역에만 1천 명 넘게 강제 동원됐습니다.
[김백운/강제징용 피해자 (징용 당시 16세) : 밥을 줬는데 밥을 못 먹었어. 배고프지만. 왜냐하면, 보리쌀 이런 건 하나도 없어. 수수에다가 껍질 덜 벗긴 걸 줘서… 그런 건 닭이나 돼지나 먹지.]
조선 5대 구리광으로 꼽히던 부산 기장군의 한 광산 근처 마을엔 일본식 건축물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이곳 광산을 관리하던 일본인들이 사무실로 사용했던 건물입니다.
이 건물 안쪽을 자세히 살펴보면 일본식 건축 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걸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혹독한 근무 환경과 열악한 시설 탓에 당시 강제 징용 노동자들은 대부분 폐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미쓰비시 중공업 공장 노동자 1천 명이 모여 살았던 이곳의 이름은 아직도 미쓰비시, 삼릉 마을입니다.
[송영신/강제징용 피해자 아들 : 죽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고 하시고… 팔, 다리 다치고 머리가 깨지고 이러면 붕대조차도 제대로 안 감아주고.]
국내 곳곳에 강제동원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지만 아픈 역사를 배우려는 모습은 찾기 힘듭니다.
해남 저장창고와 폭약 창고 등은 70년 세월 동안 방치돼 여기저기 훼손됐고 기장군 광산마을도 근처 고속도로 개발 여파로 마을 전체가 소음과 분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최원순/광산마을 이장 : 불법 건축물이니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다고… 옛날에도 억울하게 억압받고 산동네에….]
강제 징용의 아픈 역사를 알려주는 건 표지판 하나가 전부 이마저도 한 대학 연구팀 주도로 만들어진 겁니다.
인천 삼릉 마을도 재개발로 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산 교육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 학술 연구와 정부 차원의 조사,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지만 주무 기관인 문화재청이 국내 강제 징용 유적지를 대상으로 벌인 조사는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서경덕/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 :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특히 이제 다크투어리즘이라고 해서 어두운 역사를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그들의 삶의 터전과 어떻게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을지 그런 대화를 (이어나가야 합니다.)]
일본에 강제 징용 책임과 반성을 촉구하는 만큼 우리 스스로도 아픈 역사를 보존하고 제대로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영상취재 : 서진호, 영상편집 : 김중희, VJ : 김종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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