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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 (일)

이슈 최저임금 인상과 갈등

[오늘과 내일/허진석]약한 곳으로 몰리는 최저임금 압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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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허진석 산업2부장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19일 저녁 어둠을 뚫고 청와대에서 멀지 않은 한 한정식 집으로 향했다. 그가 밥을 사겠다고 제안해 만든 저녁 자리에는 중소기업중앙회 신임 회장단들이 초대됐다. 한우 불고기와 전복에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대접한 노 비서실장과 정태호 대통령일자리수석비서관이 부탁한 말은 중소기업이 일자리를 늘려 달라는 것이었다. 노 비서실장은 2월 생산과 소비 심리가 개선되고 있는데 해외 경기가 좋지 않아 티가 잘 나지 않는다는 취지의 말을 곁들였고, 정 수석비서관은 중소기업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지원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야 하는 참모들이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애쓰는 행보 중 하나다. 대통령과 그 참모들의 경기 통계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에 대해 ‘어느 나라 통계를 보고 있는 거냐’는 야당 원내대표의 비판이 있다. 대통령의 ‘국가 경제가 견실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는 인식이 맞는다면 일자리 확대는 저녁밥을 사가며 부탁할 일도,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할 일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그날 저녁 자리가 있기 8시간 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2층 제1대회의실에서는 ‘최저임금, 이대로는 안 된다’ 토론회가 있었다. 여기에 청중으로 참석한 한 재활용선별사업업체 경리담당 부장에게서 우연히 듣게 된 절박한 상황은 왜 일자리가 부탁이나 선의만으로는 확대할 수 없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25명이 일한다. 손으로 페트병과 캔 등을 분류하는 일이라 힘들다. 직원 중 젊은층은 모두 외국인으로 9명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60대를 넘긴 내국인이다. 2년 전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기 전에도 사업이 흑자를 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2년 전 월 1000만 원대이던 적자는 올해 들어서는 3000만 원대로 늘었다. 월 1억5000만 원의 매출을 올리지만 비용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가 월 4500만 원에서 5800만 원으로 1300만 원이나 늘어난 게 크다. 은행 빚 4억 원으로도 모자라 사채까지 얻으며 버티다 보니 사채가 3억 원으로 늘었다. 잔재물(폐기물)의 처리 비용도 각종 환경 규제 등으로 비싸지면서 원가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문제는 납품가가 더 내려가고 있는 거다. 우리 같은 1차 재활용선별사업자는 2차 사업자에 비해 약자이다 보니 2차 사업자가 최저임금 부담 등과 같은 요인으로 납품가를 낮추면서 그 피해가 우리한테 몰리는 거다. 밥값마저 아껴야 하는 상황이다. 4500원짜리 백반을 25명이 일하는데도 22인분만 시켜 관리직은 나중에 먹는다.”

최저임금 인상 뉴스는 수그러드는 추세지만 2년 동안 급격히 오른 최저임금은 이렇게 경제의 약한 지반에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하고 있다. 압력이 쌓이면 대지진으로 분출되는 게 세상의 이치다. 이 업체가 겪는 상황이 특수 사례가 아니기에 지난해 4분기 소득불균형은 2003년 소득분배지표 집계 이후 가장 악화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약자에게 피해가 몰리는 것은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부담 전가를 법과 제도로 다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비즈니스를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거나 자기는 신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과대망상증 환자일 뿐이다. 그 경리부장은 “선별작업을 하는 우리 직원들을 보면 정말 돈을 더 많이 받아야 할 명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쓰레기를 태우거나 매립하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는 데다 작업장의 환경도 열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돈을 더 드리고 싶어도 그럴 방법이 없다”고 했다.

약자를 보살피려는 대통령의 선의를 진심으로 믿는다. 대통령이 국정을 잘 운영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런데 세상의 이치를 벗어나서는 선의를 실현할 방법이 없다. ‘최저임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토론회가 계속 열리는 여론을 좀 더 잘 읽어주기 바란다.

허진석 산업2부장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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