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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자영업자들이 망하는 건 ‘운’ 때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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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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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운이 좋으시네요.”

‘자영업 약탈자들’ 기획 취재를 시작하면서 예비 창업자로 창업을 시도했을 때 창업컨설팅 업체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좋은 매장이 마침 딱 하나 나왔는데, 정보를 아시는 분만 행운을 잡는다”고 했습니다. 왜 저에게 행운은 창업을 시도한 순간마다 찾아온 것일까요. 저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인 걸까요.

자영업 하다 망한 사람들을 취재하면서 자주 들은 말도 ‘운’이었습니다. “전에는 여기가 장사가 잘됐다는데, 운이 없었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옆에 다른 카페가 들어와서, 유동인구가 줄어서, 임대료가 갑자기 올라서… 자영업은 잘되는 것도, 망하는 것도 결국 ‘운발’인 걸까요.

안녕하세요. 탐사팀 장나래입니다. 그 ‘운’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저에게 행운을 잡으라던 창업컨설팅 업체에 잠입해봤습니다. 취재 결과는 세차례 기사(①창업컨설팅의 실체 ②창업컨설팅-프랜차이즈 공생관계 ③새도시 상가분양 ‘설계’하는 손)로 썼습니다.

관련 자격과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저는 입사하자마자 ‘과장’ 직함을 달았습니다. 운 탓을 하는 사람들을 골라내 권리금 깎는 작업에 투입됐습니다. 한푼이라도 더 받고 싶어 하는 양도인과 한푼이라도 덜 내려는 양수인 사이에서 권리금 장난을 치는 만큼 컨설팅수수료라는 월급이 생겼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심지어 귀까지 얇은 저 같은 초보 창업자는 속이기 쉬워 ‘상태 좋은’ 구매자로 분류된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정보가 부족한 시장에서 자영업 대박 ‘운때’를 알려주는 전문가 행세를 하는 창업컨설턴트의 실체. 그들은 정확히 매년 자영업 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100만여명을 노립니다.

계약 당사자끼리 고액의 수수료가 붙은 권리금에 합의를 했다면 무슨 문제냐는 반론도 있습니다. 하지만 창업컨설팅의 농간이 십수년간 이어지며 초기 창업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습니다. 창업컨설팅 업체들은 수수료가 1500만원 이하로 나오는 점포는 취급조차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들이 계약 한건당 창업자들로부터 받아가는 돈은 기본 2천만원에서 1억원에 이릅니다. 이런 구조에서 한국 사회의 자영업은 이미 시작하면서 큰돈을 잃고 그 돈을 만회하기 위해 허우적거리는 ‘게임’이 되어버렸습니다.

더 큰 문제는 창업컨설팅 업태 자체가 사기 기반 위에 있다는 데 있습니다. 업체들은 거짓 손님을 내세워 권리금을 낮추고, 매출과 순익을 부풀려 매매를 중개합니다. 양도인과 양수인이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하는 일명 ‘깜깜이 계약’을 유도하기 때문에 중간에서 장난을 칠 수 있는 거죠. 무자격으로 점포 매매를 중개하는 것은 공인중개사법 위반입니다. 현금 거래가 주를 이루는 권리금 시장에서 제대로 소득신고를 하지 않아 탈세가 관행화된 구조입니다. 보도 뒤 잇따라 누리집을 폐쇄한 창업사이트 역시 ‘허위 매물’로 처벌이 가능합니다.

취재를 하면서 가장 씁쓸했던 것은 자영업자가 창업컨설팅 업체의 농간에 빠져 스스로 다른 자영업자의 가해자가 되는 구조였습니다. 자영업자들이 흔히 하는 자조 가운데 ‘자영업으로 돈을 버는 방법은 권리금 장사밖에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장사가 잘되지 않는 매장을 권리금에 고액 수수료까지 붙여 팔아야 하는 순간, 양도인도 가해자가 됩니다. 창업컨설팅 업체는 ‘공범’임을 주지시키며 양수인에게 철저한 입단속을 합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양수인이었던 자영업자는 곧 양도인이 됩니다. 폭탄 돌리기인 셈이죠.

100세 시대, 임금노동만으로 생을 끝까지 영위해나가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창업’이 권해집니다. 인생 2막 설계를 위해 노년층도 창업해야 한다고 하고, 취업이 어려운 청년층도 ‘창업’에서 길을 찾으라고 합니다. 창업컨설팅 업체는 이 틈을 정확히 파고들었습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장사를 해야 하는 사회에서 창업컨설팅 업체들은 얼마나 받아야 적정한지 기준이 없는 권리금 구조에 기반해 기생합니다. 그렇게 한국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건물주와 프랜차이즈 본사에 노동의 대가를 상납하는 ‘현대판 소작농’이 되는 동시에, 자영업 시장에 진입할 다음 사람을 대상으로 잠재적 사기를 준비하는 이중적 존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자영업이 망하는 건 ‘운’ 때문이 아닙니다.

한겨레

장나래 탐사팀 기자 w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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