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회계발 시장 개혁 시작됐다]①신(新)외감법 후폭풍...그룹 오너도 '비적정' 감사의견에 사임
회계 개혁 바람이 거세다. 올해부터 감사인의 권한과 책임을 대폭 강화한 '신(新)외부감사법'이 시행되면서, 기업의 숫자세계에서 '절충'이라는 이름의 '관행'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굴지의 대기업도 회계 이슈 하나에 뿌리채 흔들릴 수 있고, 내노라하는 회계법인도 회계 감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가는 존립이 위태로운 시대가 도래했다.
최근 아시아나항공 사례는 충격적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달 외부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과 충당금 설정을 놓고 대립하다 감사의견 '한정'을 받아 시장에 '쇼크'를 줬고, 결국 '오너'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물러났다.
부채가 많은 아시아나항공은 충당금을 추가로 반영하는 문제를 놓고 감사인과 대립했지만, '부적정' 감사의견 앞에 이틀만에 무릎을 꿇고 재무제표를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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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재감사를 통해 며칠만에 다시 감사의견 '적정'을 받았지만, 상처는 너무 컸다.
실적은 쇼크 수준으로 악화됐고, 주가는 폭락했다. 더 큰 문제는 금융시장의 신뢰를 잃었다는 점이다. 금융시장을 통해 자금을 계속 조달해야만 생존이 가능한 상황에서, '믿을 수 없는 기업'이라는 인식은 '오너' 회장이 자리를 내놔야 할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웅진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웅진에너지도 지난 27일 외부감사인인 한영회계법인으로부터 지난해 재무제표에 대해 '적절한 감사증거 미입수'를 이유로 감사의견 ‘의견거절’을 받았다. 2017년 말까지 삼정회계법인이 외부감사인을 맡았는데, 지난해 한영으로 바뀌면서 감사의견이 거절됐다. 이로 인해 총 750억원 규모의 채권 원리금 미지급이 발생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현재 웅진에너지는 상장 폐지 위기에 몰렸다.
이 밖에도 감사보고서를 제때 제출하지 못하거나 비정적 감사의견을 받은 기업들이 최근 속출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29일까지 감사보고서를 제출한 상장사 중 비적정 감사의견을 받은 기업은 총 34곳(코스피 6개, 코스닥 28개)에 달한다. 지난달 말까지 감사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기업이 7곳(코스피 1개, 코스닥 6개)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비적정 기업 수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이같은 '회계 쇼크'는 신외감법이 지난해 11월부터 시행되면서 회계감사가 매우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중대한 회계위반 및 감사부실의 책임을 대표이사에게 묻는 '외부감사 및 회계 등에 관한 시행규칙'이 이달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신외감법은 감사인의 독립성과 책임을 대폭 강화해 회계투명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금융당국은 지난 2015년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를 계기로,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회계 제도를 도입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한국의 회계투명성 순위는 2018년 기준 63개국 중 62위로 수년째 최하위권이다. 그만큼 기존 회계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는 방증이다. 감사인의 독립성 문제를 비롯해, 형식적인 부실 감사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등도 그동안 지적돼 온 문제들이다.
새 제도 도입으로 감사인에 대한 회계기준 위반이나 오류에 대한 징계가 세졌다. 기업의 회계부정을 눈감아 준 회계법인은 감사보수의 최대 5배를 과징금으로 내게 될 수 있고, 형사처벌 수위도 기존 징역 5~7년에서 10년으로 확대됐다.
잘못했다 가는 대표가 잘리고 회계사가 감옥에 갈 수 있는 상황에서 고객인 기업과의 '짬짜미'는 불가능하다. 감사 수주를 위한 영업에 신경 쓸 필요 없이 감사인이 소신껏 판단해 결정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표준감사기간 도입으로 감사 시간은 기존 대비 최대 2배 가까이 늘어났다. 더욱 꼼꼼하게 기업 장부를 들여다 볼 여력이 생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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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인 감사를 했던 시대도 갔다. 그동안 수십 년간 감사인이 한번도 바뀌지 않은 대기업도 상당수 있었지만, 내년부터는 감사인을 6년 동안 자유롭게 선임하고 그 뒤 3년 동안은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가 지정하는 감사인을 지정하는 '주기적 지정제'가 시행된다. 우선 220개 기업이 대상이다.
회계 개혁은 현재 '진행중'이다. 진통과 우려도 있다. 표준감사시간 도입으로 당장 회계 비용이 늘어나게 된 기업들은 부담을 하소연하고, 회계 업계는 '생명줄'이 된 감사품질을 놓고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금융당국도 새로운 제도 시행에 따른 부작용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표준감사시간 제도 도입으로 일부 회계법인들이 기업에 과도하게 인상된 청구서를 내밀 가능성도 있고, 과도한 감사로 인해 부당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과 감사인 간 소통은 더욱 중요해졌다. 금융감독원은 “비적정 감사의견의 주요 원인인 감사범위제한은 회사와 감사인의 충분한 사전 대비와 원활한 소통으로 예방 또는 해소가 가능할 수 있다"며 "양측이 서로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회계법인들의 대형화 바람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올해 11월부터는 등록 공인회계사 40명 이상 회계법인만 상장기업 외부감사를 맡도록 한 감사인 등록제가 시행된다.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은 “40인 미달 회계법인들이 합병하고 있으며 회계법인 대형화 바람이 불 것”이라며 “감사 실패에 대한 책임이 커짐에 따라 회계법인이 자신의 역량에 맞는 기업을 맡게 됨에 따라 시장 세분화가 이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회계 개혁은 우리가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라며 "새로운 제도 도입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고 균형을 잘 잡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동욱 기자 dwl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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