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4 (금)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아람코의 화끈한 글로벌 채권시장 데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국금융신문 장태민 기자]
한국금융신문

자료=아람코 홈페이지의 채권 발행 소식



사우디 국영회사 아람코가 뜨거운 글로벌 채권시장 데뷔 무대를 치렀다.

은둔의 제왕 이미지가 강했던 원유 생산 세계 1위 기업에 투자자들이 서로 돈을 빌려 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해외 언론은 9일 아람코 해외채 발행에 1000억 달러 이상 매수 주문이 들어왔다고 보도했다.

아람코는 당초 100억달러를 조달할 계획이었지만 초과 수요를 확보하면서 조달액을 더 늘렸다. 첫 해외채 발행에서 120억달러를 조달했다.

이번 발행 채권 만기는 3년~30년까지 5개 구간으로 구성됐다. 채권 금리는 비슷한 만기의 사우디 국채보다 낮게 정해졌다.

사우디 국채가 아람코의 금리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아람코의 인기가 사우디 국채 금리에 영향을 주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주 아람코 채권 발행 기대감에 사우디 30년만기 달러표시 국채금리가 급락하기도 했다.

국채보다 낮은 금리는 아람코이니까 가능한 것이지만, 그 만큼 이례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 아람코와 사우디

아람코는 그 이름(Saudi Arabian Oil Company)에서 알 수 있듯이 사우디의 원유를 상징하는 기업이다.

이번 채권 발행은 사우디 최대 화학기업인 SABIC의 지분 인수 대금 마련을 위한 것이다. 즉 M&A 대금을 지급하기 위해 아람코가 최초로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이벤트였다.

아람코는 원유 생산 세계 1위 업체로 이 회사의 원유 생산량 기준 세계시장 점유율은 무려 13%에 달할 정도다. 은둔의 원유 제국은 세계에서 가장 덩치 큰 기업이다.

아람코는 사우디 정부에 뗄레야 뗄 수 없다. 총 11명으로 구성된 이사회의 이사 중 4명이 에너지, 외교부, 재무부, 경제부 장관이며 2명은 사우디 국부펀드의 이사장과 아람코 CEO다.

사우디 정부는 재정의 60% 이상을 아람코에 의존하고 있다. 대신 아람코는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 아라비아의 원유를 독점적으로 채굴·개발·정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

김상훈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정부 세입 중 67%가 아람코가 납부하는 법인세, 로열티, 배당 등으로 충당된다"면서 "아람코가 창출하는 원유 관련 수익은 사우디의 수출, 정부 수입, GDP 등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아람코의 신용도는 정부 신용도와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다"고 밝혔다.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향후 아람코의 IPO를 통해 산업 구조를 다변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 아람코, 초우량 공룡

아람코가 글로벌 금융시장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유승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아람코가 이번 글로벌 채권시장 데뷔를 통해 은둔에서 해방됐다"면서 "그간 재무제표를 공시하지 않아 베일에 싸인 이미지가 강했으나 이번 채권 발행을 통해 감춰뒀던 재무실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아람코는 비상장 회사로 그 동안 실적 공개가 되지 않았으나, 금번 채권 발행으로 유가증권신고서를 통해 최근 3년간의 실적을 공개했다.

아람코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2천억 달러가 넘어 나머지 5대 오일메이저를 합친 것보다 더 컸다. 아람코는 또 1천억 달러를 웃도는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아람코의 수익성 역시 세계 정상급이다. 미국의 3A인 애플, 알파벳, 아마존을 합친 것보다 규모가 크고 이익도 더 많이 내는 것이다.

유 연구원은 "아람코는 경제성이 높은 대규모 유전을 보유해 채굴비용이 오일메이저 대비 20~30% 수준에 불과한 점이 우수한 수익성의 원천"이라고 지적했다.

아람코가 사우디 정부에 법인세, 로열티, 배당 형태로 이익을 환원하고 있음에도 재무상제표는 매우 우수하다고 풀이했다.

작년 말 기준 아람코의 부채비율은 30.9%이지만 차입금을 상회하는 현금성 자산을 보유해 실질적으로 무차입 상태나 마찬가지이기도 하다.

유 연구원은 "크레딧 관점에서 채무상환능력의 대용지표로 사용하는 총차입금/EBITDA도 0.1배에 불과하다"면서 "유가 급락이라는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무난히 대응한 점을 감안하면 우수한 현금창출력 기반으로 안정적인 차입금 상환능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아람코, 신용등급 그 이상의 파워

아람코는 유가 변동에 따라 이익 변동성이 높을 수 있지만 사업경쟁력, 수익성, 재무구조, 스트레스 상황의 대응력 측면 등이 모두 우수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무디스는 자사 평가기준에 따라 아람코를 평가할 경우 가장 높은 Aaa등급이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채무 상환 능력을 보유한 기업 중 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무디스가 부여한 등급은 A1으로 모델 평가 때보다 4노치 낮다. 이는 개별 기업이 국가 등급을 상회할 수 없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이 때문에 아람코의 등급은 Aa~Aaa 수준인 오일메이저들에 비해 최종신용등급이 낮다.

하지만 사우디 정부 역시 재정수입의 핵심인 아람코를 섣불리 활용하지 않는다. 2017년 재정적자가 부담일 때 사우디 정부는 아람코로부터 더 많은 현금유입이 필요했지만 법인세율을 85%에서 50%로 오히려 내렸으며, 생산원가보다 낮게 팔던 휘발유 등 정유제품 가격도 시장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변경해 회사 실적 개선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번 발행에서 나타난 아람코에 대한 투자 열기는 기존 크레딧 스프레드 산출 공식을 무너뜨렸다.

중동 국가의 달러화 표시 소버린 국채와 핵심 국영기업 회사채 스프레드가 20bp 수준이지만, 이런 관행을 적용할 수 없었다.

유동성 문제나 정부의 지원 가능성 등을 근거로 국채 금리에 프리미엄을 요구하는 게 당연하지만, 아람코에겐 이런 공식이 적용되지 않은 것이다.

■ 아람코 채권 발행 흥행 후..IPO 말리는 목소리도

아람코의 채권 발행 대성공은 글로벌하게 큰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채권 발행에서 엄청난 관심을 끌자 굳이 IPO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사우디는 모하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원유 의존에서 벗어난 경제구조 다변화' 전략에 따라 3년 전 아람코의 기업공개를 공언했다. 살만 왕세자를 사우디를 기술과 엔터테인먼트의 허브로 만들고 싶어했다.

또 모하마드 왕자와 사우디 공무원들에게 2021년 아람코 IPO가 여전히 우선적인 과제인 것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번 채권 발행은 사우디라는 석유 왕국이 언제든 필요할 때 자본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음을 알려줬기 때문에 굳이 외국인에게 주식을 나눠줄 필요가 있느냐는 의구심도 피어났다.

본드 오퍼링보다 훨씬 귀찮고 많은 내용을 공개해야 하는 주식 오퍼링에 나설 필요가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것이다.

IHS마킷의 로저 디완 부회장은 미국 방송 CNBC에서 "주식을 통한 자금 모집은 채권을 통한 것과 완전히 다른 게임"이라며 필요할 때 채권으로 싸게 조달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 거대한 공룡이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면서 원할 때 자본시장을 활용하면 되지, IPO의 위험까지 감수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또 아람코 채권 금리가 미국채 금리보다 약간 높은 수준인 상황에서 굳이 주식 분산을 통해 외국인에게 5% 내외의 배당수익률을 안겨줄 필요 없다는 조언이 나오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람코가 향후 외국인을 대주주로 맞게 되면 기후 변화 문제나 글로벌 스탠다드, 각종 정치적 질문 등에 휘둘릴 위험성이 있다는 점 등도 거론된다. 말도 많고 요구 사항도 많은 주주보다는 점잖은 채권자와 관계를 형성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아무튼 아람코의 IPO와 관련해 이런 저런 말들이 많이 나오지만, 이번 채권 발행의 흥행은 (예정 대로 진행된다면) 주식 IPO의 앞날도 순탄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


데일리 금융경제뉴스 FNTIMES - 저작권법에 의거 상업적 목적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 금지
Copyright ⓒ 한국금융신문 & FNTIMES.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