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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낙태는 죄가 아니다”…헌법불합치 결정에 시민사회단체 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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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소원 대리인단 “여성 목소리 존중하라는 결정”

시민사회단체 “치욕의 역사 종지부 찍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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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2시45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선 수십여명의 함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헌재 앞에 모여든 시민들은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적힌 피켓을 흔들고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를 향해 “고생했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몇몇은 눈시울을 훔치기도 했다.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한 형법이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헌재의 결정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이날 오전 9시부터 여성, 보건의료, 청년 단체 회원들과 시민들은 헌재 앞에 모여들어 “낙태는 죄가 아니다. 낙태는 불법이 아니다”라는 구호를 외쳐왔다. 헌재의 결정이 나오면서 이들의 구호는 현실이 됐다.

이날 오후 헌재는 ‘임신중절한 여성에게 징역 1년 이하, 또는 벌금 200만원 이하를 선고’하도록 한 269조 1항(자기낙태죄)과 ‘임신중절을 도운 의사 등에게 징역 2년 이하를 선고’하도록 한 270조 1항(동의낙태죄)이 헌법에 불합치한다고 선고했다. 헌법재판관 9명 중 4명이 헌법불합치, 3명이 단순 위헌, 2명이 합헌 판단을 내렸다. 헌재가 이같은 결정을 내림에 따라, 낙태죄는 2020년 12월31일까지 유예기간을 갖고 법 제정 6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날 낙태죄 위헌 소원을 대리한 대리인단은 “여성의 목소리를 존중하라는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대리인단 단장을 맡은 김수정 변호사는 “헌재는 태아의 생명보호 의무도 중요한 명제지만,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되지 않는 한 생명권도 실질적인 보장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위헌 쪽으로 손을 들어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 여성을 의심하고 규제하고 처벌함으로써 출산을 강제하지 말라는 내용이 명백하게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임신과 출산, 양육의 1차적인 주체는 여성이니 여성의 목소리를 존중하라는 게 헌재의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낙태죄 폐지를 촉구해온 시민사회단체들도 헌재의 결정에 환영한다는 뜻을 표했다. 문설희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공동운영위원장은 “2019년 4월11일은 역사적인 승리의 날이고 치욕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날”이라며 “집에서, 학교와 직장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용기있게 (낙태죄 폐지를) 요구해온 우리의 행동이 없었다면 오늘의 결정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결코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며 더 이상 어떠한 처벌도 우리는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이 공동운영위원장은 “이제 임신 중지는 죄가 아니라고, 안전한 임신중지는 기본권이라고, 국가는 그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우리는 더 크게 외칠 것이다. 낙태죄 폐지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했다.

여성계도 헌재 결정으로, 여성이 하나의 시민으로 출발할 수 있는 시작점에 섰다고 말했다.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는 “이번 헌재의 헌법 불합치 결정은 우리 모두 투쟁해온 결과”라며 “헌재의 결정을 적극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낙태죄 폐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금부터 정부와 국회는 여성의 건강권과 재생산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모자보건법 전면 개정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희대학교 페미니즘 동아리 여행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대학생 정이랑씨도 “그간 낙태죄가 폐지돼야 한다고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던 날이 떠오른다”며 “오늘의 결정은 우리가 외친 덕이니, 앞으로도 낙태죄 이후의 세계를 끝까지 이야기하겠다”고 말했다.

의료계도 “임신중절을 선택해 찾아온 여성들에게 의료인으로서 의무를 다할 수 있게 됐다”며 헌재의 결정을 반겼다. 윤정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장은 “헌재 결정 뒤 이곳에서 환호를 하면서도, 제가 도와드릴 수 없었던 여성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성폭력 피해자임에도 임신중절을 해주는 병원이 없어서 전국에서 찾아오는 여성들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앞으로는 당신이 어떤 결정을 하든지, 의료인이 당신을 도와주겟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WHO는 이미 임신중지가 인권임을 명확히 한 바 있는데, 오늘 헌재의 결정으로 이 국제기준을 이제야 따라가게 됐다”고 말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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