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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마바리꾼은 사라졌어도 푸얼차 향기는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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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14>차마고도 윈난 ‘동연화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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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연화촌의 골동품 가게 주인과 아랍 문자 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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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윈난성 남부의 푸얼차(보이차)는 수천㎞ 떨어진 티베트에 전달됐다. 차마고도(茶馬古道)는 멀고도 험했다. 약칭으로 윈난을 전(滇), 티베트를 장(藏)이라 한다. 두 지역을 잇는 교역로인 전장고도는 당시 거의 3개월이 걸렸지만 지금은 국도로 이틀이 걸리지 않는다. 이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길, 그 흔적은 찾기 어렵다. 길 위에 흘리던 피와 땀도, 말몰이꾼인 마방도 사라졌다. 마방이 살던 오래된 마을, 차마고진을 찾으면 옛날의 영화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쿤밍에서 서쪽으로 약 5시간 이동하면 웨이산(巍山)이다. 당 현종 시대인 738년에 바이족(백족)이 건국한 남조국의 발상지다. 차 집산지 푸얼과 가깝고 서쪽으로 가면 미얀마, 북쪽으로 가면 리장을 거쳐 티베트에 이른다. 웨이산은 사통팔달의 교통 요지다. 웨이산에 명나라 중기부터 후이족(回族)이 마을을 이루고 살기 시작했다. 동서양 무역로를 따라 들어온 아라비아와 페르시아 무슬림 상인의 후예다. 웨이산고성과 30㎞ 떨어진 동연화촌(東蓮花村)은 후이족 촌락이며 마(馬)씨 집성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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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이족 말몰이꾼과 마방이 있던 동연화촌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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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로 들어서자 골동품 가게가 나타난다. 다른 관광지와 달리 아랍문자로 보이는 병풍이 낯설다. 무슨 뜻인지 물어보니 ‘길상(吉祥)’과 관련된 말이라고 한다. 집집마다 가지고 나온 옛 물건이라 그런지 예상 가격(4~5만원)보다 10배는 비싸다. 모자를 쓰고 다니는 후이족 여인은 이목구비가 색다르다. 중국인으로 살기 위해 중국어도 잘하지만 자신만의 언어와 종교, 역사와 전통을 지키며 살아온 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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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연화촌의 마루지 저택으로 가는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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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지 저택 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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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담장 사이로 난 골목은 생각보다 깨끗하고 한가하다. 350필의 말을 보유하고 7개 마방에 마바리꾼이 북적이던 마을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2014년 중국 CCTV는 ‘차마고도 고진행’ 소개된 마방 대장 마루지의 저택을 찾아간다. 황토 빛깔의 여운이 남은 대문이 참 아름답다. 아치형 문 옆은 층층이 벽돌로 쌓았고 지붕의 세모꼴 조각에는 산과 강, 나무와 구름을 산수화처럼 조각했다. 기둥 위에는 사자를 닮은 산예(狻猊) 한 쌍이 나란히 앉았는데 주인에게 충성하고 외부 침입자를 주시하는 척후처럼 보인다.

아치로 인해 생긴 귀퉁이 공간이 눈길을 잡는다. 한 쌍의 학 조각이 볼수록 고품격이다. 날개를 펼치고 살포시 앉은 학의 자태에 숨을 멈추고 그저 감탄사다. 아래서 보면 비상하는 동작을 포착한 조각처럼 보이기도 한다. 보면 볼수록 장수를 상징하는 학을 예쁘게 포장한 예술적 감각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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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지 저택 대문에 살포시 앉은 학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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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지 저택 입구 ‘세수청진’ 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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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지 저택 조벽. 안이 바로 보이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가림막인데, 벽 전체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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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택을 상징하는 편액이라도 있을 법한데 글씨 없이 텅 비었다. 대신 안으로 들어서면 네모난 문틀 안에 ‘가문 대대로 청진을 지킨다’는 의미의 세수청진(世守清真)이 적혀 있다. 청진이란 이슬람교 그 자체이자 숭고한 종교적 삶을 뜻한다. 왼쪽 문을 통과해 마당에 들어서면 조벽과 함께 주거 공간인 삼방일조벽(三坊一照壁)이 드러난다. 다리 일대의 터줏대감인 바이족 전통 가옥 모습이다. 안을 직접 보지 못하도록 가림 역할을 하는 조벽은 담백한 바탕색에 원색의 칠과 벽돌 조각으로 꾸몄다. 이층은 사면이 서로 통하는 복도가 있고 네 귀퉁이에 각루도 있다. 아래층은 주거 공간이고 위층은 창고로 사용한다. 마당에는 우물도 여럿 있다. 도적을 방어하기 위해 외부 담장이 높다. 밖에서 보면 삭막해도 안은 나무 조각과 갖가지 문양으로 아름답게 수놓아서 안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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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과 문양이 아름다운 저택과 감시 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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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지 저택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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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지의 후원자 바이충시(왼쪽)와 룽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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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지 저택의 ‘대전기족’ 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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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완공한 마루지 저택은 비교적 당시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낙성식 당시 친척이 쓴 대전기족(大展驥足) 편액이 볼만하다. ‘천리마처럼 큰 발자국을 넓게 펼치라’는 말이니 차마고도를 오가는 상인에게는 적절한 덕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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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방문화박물관의 주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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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방문화박물관의 말 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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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옆 건물은 마방문화박물관이다. 티베트는 물론 베트남, 미얀마, 인도에 이르기까지 장사를 한 노선도가 있다. 차를 끓여 마시던 주전자와 말 안장도 전시돼 있다. 말은 무거운 짐을 지고 오래 걸어도 잘 견디는 동물이다. 말은 푸얼차를 둥근 모양으로 굳힌 병차(餠茶)를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까? 병차 하나의 무게는 357g이다. 칠자병차, 즉 7개 하나 묶음은 약 2.5㎏이다. 12세트를 각각 말의 오른쪽과 왼쪽에 매단다. 한쪽이 30㎏이니 대략 60㎏를 견디며 걷고 또 걷는다. 평지만 아니라 산도 넘고 강도 건너는 긴 노정을 돌파하는 최적화된 무게다. 357g은 마방과 말의 교감과 지혜로 정해진 표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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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연화촌의 청진사로 가는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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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사 선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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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명촌 편액이 걸린 선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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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모자를 쓴 후이족, 선예루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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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사 조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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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한 토담 거리를 지나 마을 광장으로 향한다. 누각과 대전으로 이뤄진 이슬람사원 청진사다. 마음씨 착한 후이족 남성의 안내로 계단을 따라 올랐다. 2층은 교실로 사용하고 있다. 두세 명 앉는 책상과 의자가 20개 정도 놓였다. 바깥을 내다보니 청진사 대전이 보이고 반대쪽은 마을 전경이 나타난다. 대전 양쪽 건물은 학교로 사용하고 있다. 이슬람식 예배당인 조진대전(朝真大殿)은 조금 낯설다. 이슬람 사원 안에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하루에 다섯 번 예배할 때마다 문이 열리면 자연스레 들여다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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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사 선예루에서 내려다본 동연화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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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사에서 농구하는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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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연화촌 출구에서 본 ‘중국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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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산고성의 공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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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 홍운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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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 홍운헌에서 시음한 푸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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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산고성은 지역의 행정 중심지다. 초기에는 토성이었지만 명나라 중기에 이르러 벽돌로 쌓은 고성이 건축됐다. 동서남북에 대문이 있고, 400m 정도 거리를 두고 남북으로 두 개의 웅장한 누각이 마주 보고 있다. 고성 안은 가로 세로로 크고 작은 골목이 연결돼 있다. 두 누각 사이 길에는 찻집이 많은데 대부분 푸얼차를 판매한다. 차를 마셔보고 가격을 흥정하면 된다. 홍운헌(鴻雲軒) 간판의 찻집에 들어서니 생산지와 발효 정도에 따라 서로 다른 병차가 진열돼 있다. 차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으면 맛을 보고 적당한 가격에 구매하면 실패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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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산고성의 ‘고성객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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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에 어둠이 내린다. 600여년 역사를 담은 고성에는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다. 수많은 중국 고성의 특징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느낌이 가장 잘 드러나는 관광지가 고성이다. 최근에는 전통가옥을 개조한 객잔이 많다. 웨이산고성에서 묵은 객잔은 낭만적 분위기를 잃지 않으면서 푹신하고 깔끔한 침실, 5성급 호텔 못지않은 화장실을 갖췄다. 이름도 그저 ‘고성객잔’이다. 개인적으로 중국에서 인상에 남을 숙소를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에 드는 객잔이다. 마음에 쏙 드는 하룻밤을 보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떠나야 한다는 현실로 돌아오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pine@youy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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