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군 판교면에는 ‘시간이 멈춘 마을’이 있다.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을 거쳐 산업화 시기를 버텨낸 오랜 건물들에는 마을 사람들의 곡진한 사연과 삶의 애환이 곳곳에 서려 있다. 도시화와 함께 젊은이들이 빠져나가 쇠락한 마을은 이제 그 빛바랜 모습이 매력으로 떠오르며 다시 젊은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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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천군 판교면에는 ‘시간이 멈춘 마을’이 있다. 과거의 어느 한순간에 멈춘 듯 모습이 그대로라는 얘기다. 그럴 듯한 수사지만, 달리 말하면 그저 낡고 바랜 풍경이기도 하다. 오래 외면받던 그곳에 요즘 젊은 관광객들이 카메라를 들고 몰려든다. 폐허에 깃든 사연을 정성들여 가꾸고 알린 덕분이다. 최근 ‘레트로’(복고풍) 여행의 성지로 떠오른 서천 판교마을에 다녀왔다.
■두 시간 보러 종일 걸었던 극장의 추억
여행의 시작점은 판교역이다. 판교는 1930년 장항선(당시는 충남선)이 개통하면서 상업의 중심지로 컸다. 나무판자로 다리를 놓았다 해서 널다리(판교)라 부르던 작은 마을에 논산·광천과 함께 충남 3대 우(牛)시장으로 꼽힐 만큼 큰 시장이 들어섰다. 모시를 생산하는 충청도 8개 읍을 뜻하는 ‘저산팔읍’(서천·한산·비인·홍산·임천·부여·남포·정산) 보부상들의 큰 장도 판교에 섰다.
번성하던 도시는 1980년대 우시장이 사라지며 쇠락했다. 장항선 직선화로 판교역은 2000년대 들어 폐역이 됐다. 역사 건물은 이제 판교특화음식촌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판교역 앞에는 두 개의 슈퍼마켓이 있다. 역전슈퍼와 공영슈퍼는 각각 30년, 50년 세월 한자리를 지킨 가게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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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앞에는 1930년대 심었다는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과거엔 기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나무 그늘 아래 가득 모였고, 그 주변으로 먹거리 좌판부터 광대, 약장수까지 몰려 시끌벅적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엔 수탈과 징용에 사용되고 해방 후 산업화 시기엔 도시로 떠나는 탈출구 역할을 했던 기차역을 나무는 묵묵히 지켜봐왔을 것이다.
공관으로 불렸던 판교극장은 텔레비전이 귀하던 시절 마을 사람들은 물론 인근 지역에도 유명한 문화공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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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역을 끼고 왼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아직도 ‘반공 방첩’ 표어가 희미하게 벽에 남아있는 옛 농협 창고 건물을 지나 주민들이 ‘공관’으로 불렀던 판교극장 건물이 나온다. 공관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홍보하고 반공교육을 하던 장소였다. 문화생활을 위한 극장으로도 활용됐는데 멀리 보령이나 부여에서도 몇 시간씩 걸어와 영화나 가수들의 공연을 보고 갈 정도로 인기 있던 장소였다.
<맨발의 청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미워도 다시 한 번> <별들의 고향> 등 1960~70년대 대표적인 흥행영화 포스터들이 판교극장 입구에 붙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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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보급과 함께 쇠퇴의 길을 걷던 극장은 1990년대 들어 태권도 붐을 타고 무도장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호신술·차력·쌍절봉… 출입구 창문에 아직 남아있는 글씨는 더없이 진지한 궁서체다.
극장은 한때 태권도 붐을 타고 무도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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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건물 벽엔 흥했던 과거를 애써 증명하듯 <맨발의 청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미워도 다시 한 번> 등 1960년대 흥행작 포스터가 붙어 있고 매표소도 그럴듯하게 꾸며놨다. 설레는 마음으로 건물에 발을 들였을 청춘남녀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바보같이 순박했던 그때
마을 중심으로 더 들어가면 옛 우시장이 있던 공터가 나온다. 농한기인 7·8월이면 오일장이 서고 인근 홍성, 광천, 공주, 부여 등지에서 소가 1000여마리씩 모이던 장소지만 지금은 흔적뿐이다. 판교면 주민자치위원장을 지낸 마을 토박이 구양완씨(53)가 구석구석 동행하며 설명해준 덕에 옛 모습을 상상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판교철공소 앞 우물은 한때 모든 마을 사람들이 길어 먹던 소중한 수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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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운반할 교통수단이 없던 시절 하룻밤을 꼬박 새며 몇십리 길을 걸어 소를 우시장까지 끌어다주는 ‘소몰이’ 일을 하던 어린 머슴들 이야기에 마음이 짠해졌다. 서천 출신에 남장 여자 국회의원으로 유명했던 3선의 김옥선 전 의원이 고향에 선거 유세를 하러 오면 그가 정말 소문대로 ‘서서 오줌을 싸는지’ 구경하려고 동네 꼬마들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는 얘기는 요즘 말로 웃펐다.
시장 주변엔 주막을 겸한 국밥집 수십곳이 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곰탕 그릇 여러 개를 들고 나르던 또래의 소녀가 뜨거운 뚝배기를 차마 땅에 내려놓지도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리며 종종걸음 치던 모습을 떠올리며 구씨는 “그땐 참 다들 바보같이 순박했다”고 추억했다.
적산가옥은 해방 이후 여각을 거쳐 쌀가게와 사진관으로 활용됐다. 텅 빈 건물은 이제 관광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사진 촬영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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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마을 한가운데 선 2층짜리 적산가옥은 마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이면서 가슴 아픈 역사를 담은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불과 11명의 일본인이 판교에 살면서 5500여명의 마을 사람들을 쥐락펴락하며 농토와 상권을 장악했는데, 이 집에 살던 일본인 지주는 조선인 소작농들이 일본말로 “천황 폐하 만세” “쌀 좀 주세요”라고 해야 새경을 내줬다고 한다.
해방 이후 건물은 우시장과 세모시장이 번성하며 상인들이 한 데 모여 잠을 청하는 여각으로 쓰였다. 훗날 사진관과 쌀집으로 영업을 한 흔적이 지금도 창문에 남아있다. 파란색으로 칠한 나무문에 적힌 장미사진관 상호를 배경으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기념사진을 찍는 곳이기도 하다.
한때 판교마을에서 가장 부잣집으로 꼽혔던 동일주조장. 상호 아래 적힌 숫자 45는 교환수가 연결해주던 고유 전화번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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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산가옥 근처의 콘크리트 건물 동일주조장은 판교면 전체에 막걸리를 만들어 보급하던 곳이다. 한때 판교마을에서 제일 가는 부잣집이었다. 1970년대에 개업해 3대에 걸쳐 운영하다 20여년 전 손자 박호성씨 대에서 문을 닫았다. 깨진 유리창 사이로 보이는 달력은 2000년 12월에 멈춰 있다.
입구 간판엔 판교면의 옛 이름인 동면을 뜻하는 東자와 함께 ‘TEL 45’라고 적혀 있다. 45는 지역번호도 국번도 아니고 각 집에 할당된 고유번호다. 직통전화란 게 없고 중간에서 교환수가 전화를 연결해주던 시절의 흔적이다. 마을에서 50여년 약방을 운영한 지희양씨의 지한약방 간판에도 같은 의미로 ‘전화 29번’이라 적어놓은 걸 찾아볼 수 있다.
마을 한켠에 버려진 채 방치된 백세건강원 건물 출입문에 ‘백숙’ ‘통닭’ 메뉴가 각각 다른 글씨체로 적혀 있다. 시트지를 잘라 붙인 닭은 날씬하고 늠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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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늦도록 모시를 짜다가…
우시장 터를 지나 판교중학교로 들어가는 골목길엔 벽화를 그려넣은 포토존이 있어 구경하기도 사진 찍기도 좋다. 고향 풍경을 정겹게 묘사한 중학생 임예지양의 시 ‘시간이 멈춘 마을’이 벽 한쪽에 새겨져 있다.
판교중학교로 들어가는 골목길 벽에 적힌 시 ‘시간이 멈춘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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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조그만 시골 마을/ 옛 풍경이 보이네// 복작복작거리던 시장/ 졸졸졸졸 흐르던 하천/ 왁자지껄 낚시하던 남정네들/ 시끌벅적 모시 짜던 아낙네들// 조그만 시골 마을의 정겨운 풍경이 보인다”
한글반에서 뒤늦게 글을 배운 여든 넘은 이정윤 할머니의 시 ‘시집살이’도 시선을 오래 붙든다.
판교중학교는 1956년 개교해 1971년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다른 지역에서도 1학년 신입생이 찾아오며 올해 재학생 수가 지난해보다 배로 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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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중학교 복도에 학생들을 응원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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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군은 지난해부터 판교마을 ‘스탬프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판교면 행정복지센터(면사무소)나 판교역에서 지도를 받은 뒤 판교극장, 우시장, 적산가옥 등 6곳에 비치된 도장을 찍어 가면 마을 옛 건물들이 그려진 기념품 엽서를 선물로 준다. 근사한 파스텔톤의 엽서 그림은 미대를 나온 이남수씨(29)가 고향을 위해 재능기부로 만든 작품이다. 판교면 이종림 부면장의 아들인 이씨는 우시장 터의 벽화도 손수 그렸다.
낙후한 시골 마을에도 귀담아들을 만한 이야기가 있단 걸 잘 보여준 덕분일까. 판교면은 관광객이 꾸준히 증가 추세고 올 들어 3월까지 서천군에서 유일하게 인구도 늘었다. 판교중 재학생도 지난해보다 2배로 늘어 30명이 됐다.
판교면 주민자치위원장을 지낸 구양완씨는 동네 노인들에게 옛날이야기를 수집하고 건물에 깃든 사연을 정리해 ‘시간이 멈춘 마을’이라는 관광지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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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부터 동네 어르신들을 만나며 옛날이야기를 수집하고 건물에 깃든 사연을 정리해 판교를 ‘시간이 멈춘 마을’이라는 관광상품으로 만들어낸 구양완씨는 “가지 없는 나무가 어디 있냐”는 말로 취지를 설명했다. 오랜 세월 마을을 지켜온 이들의 삶을 널리 알리고 기억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대로 가면 농촌이 다 없어질까 걱정스럽다. 옛날이야기를 잘 만들어 입히면 외지인들이 관심 갖고 찾아오면서 마을이 활기를 찾을까 기대했다”고도 했다.
전 국토를 휩쓴 ‘개발’의 대열에서 소외됐지만, 바로 그 덕분에 판교가 전국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관광지가 될 수 있다는 걸 ‘관광 문외한’인 구씨는 정확히 아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멈춘 마을’ 스탬프투어의 기념품으로 제공되는 엽서 그림은 판교면 이종림 부면장의 아들 남수씨(29) 작품이다. 미대를 나온 남수씨는 마을 곳곳의 벽화도 손수 그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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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면 행정복지센터나 판교역에서 지도를 받은 뒤 판교극장, 우시장, 적산가옥 등 6곳에 비치된 도장을 찍어 가면 마을 옛 건물들이 그려진 기념품 엽서를 선물로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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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글·사진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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