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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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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파문 신경숙, 4년만에 작품활동 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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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배에 실린것을 강은…’ 발표 / “혼란·고통 드린 것 저의 잘못” 사과 / “읽고 쓰며 누추해진 책상 지킬 것”

세계일보

소설가 신경숙(56·사진)씨가 작품 활동 재개에 나섰다. 2015년 단편 ‘전설’에서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래 불거진 표절 파문 이후 칩거에 들어간 지 4년 만이다. 신씨는 23일 발간된 계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200자 원고지 220장 분량 중편 ‘배에 실린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를 발표하고 소회도 따로 밝혔다.

신경숙은 발표 소감 글에서 “지난 4년은 30년 넘게 이어진 제 글쓰기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본 길고 쓰라린 시간이었다”면서 “젊은 날 한순간의 방심으로 제 글쓰기에 중대한 실수가 발생했고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한 채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지금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저의 작가로서의 알량한 자부심이 그걸 인정하는 것을 더디게 만들었다”고 돌아보았다. 신씨는 이어 “4년 동안 줄곧 걱정을 끼쳐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혼잣말을 해왔다”면서 “한 사람의 작가로서 좋은 글을 쓰게 하는 대상이 되지 못하고 비판의 글을 쓰게 하는 대상으로 혼란과 고통을 드린 것은 모두 저의 잘못이고 불찰”이라고 사과했다.

신경숙은 “이후의 시간이 저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저도 모르지만 저는 읽고 쓰는 인간으로 살며 제 누추해진 책상을 지킬 것”이라며 “제 자리에서 글을 쓰는 일로 다시 부서진 것들을 고치고, 떠내려가는 것들을 건져내고, 닫힌 문은 열고, 사라지는 것들을 애도하고, 메마른 것들에게 물을 주려고 한다”고 계획을 밝혔다. 그는 “제가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지면을 통해 만나게 될 독자들의 눈빛과 음성”이라며 “저는 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니 차근차근 글을 쓰고 또 써서 저에게 주어진 과분한 기대와 관심, 많은 실망과 염려에 대한 빚을 조금씩 갚아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번에 발표한 중편 ‘배에 실린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는 절친 허수경 시인이 지난해 작고하기 전 자신과 주고받은 이메일과 통화 내용을 섞어 고인을 애도하면서 칩거하는 동안 자신의 참담했던 심경도 함께 투사하는 작품이다.

작중 화자는 “그때 나는 내 정신이 아니었”고 “ 칼이 놓여 있는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같이 나는 진정되지 않고 팔딱거리고 있었”다고 술회한다. 또한 “딛고 있던 나의 모든 바탕이 비난 속에 균열이 지고 흔들리는 것을 목도하느라” 그리고 “달의 주기처럼 차오르는 꺼져버리고 싶은 욕망을 제어하느라” 고향 친구에게 험한 말을 퍼부었던 자신을 돌아보면서 “차마 언어로 포착하지 않고 숨긴 삶의 순간들에 대해 너에게 얘기할 시간이 우리에게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그 기회가 사라졌다고 애통해한다. 아마존의 어둠 속에서 만났던 반딧불이 빛 덩어리를 죽은 친구가 1초라도 마주치기를 바라면서 끝내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서늘하다. ‘신은 늘 굶주려 있는 것 같아, 잡아먹힌다 해도 앞으로 나아갈게.’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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