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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잡스는 왜 ‘조용한 살림꾼’ 쿡을 선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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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사망후 ‘애플은 끝’ 예상 깨고 / 1200조원의 초거대기업으로 비상 / 카리스마 대신 기업윤리 실천 강조 / 로봇 자동차·의학·보건·피트니스 등 / 컴퓨팅이 정복 못한 미래 시장 공략 / 애플의 ‘위대한 3막’ 향해 무한 질주

세계일보

린더 카니 지음/안진환 옮김/다산북스/2만5000원


팀 쿡 Tim Cook- 애플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조용한 천재/린더 카니 지음/안진환 옮김/다산북스/2만5000원

스티브 잡스는 사망하면서 애플에서 가져 간 것은 3가지였다. 카리스마적 리더십과 초대형 리스크를 감수할 용기, 그리고 상상하고 설계하는 능력이 그것이다. 당시 언론매체들은 잡스의 사망 이후 “애플은 끝났다”고 예측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 애플은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도약했다.

잡스 시절보다 4배나 회사 덩치가 커진 배경에는 애플의 조용한 일꾼 팀 쿡(Timothy D. Cook)의 능력이 있었다. ‘따분한 살림꾼’이라는 별명의 쿡은 어떻게 애플을 1200조원의 초거대기업으로 키워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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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쿡은 애플 CEO에 취임한 지 몇 년 후, “내 안의 모든 것,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회사에 쏟아붓고자 노력하겠지만 결코 잡스와 같아지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겠다”고 말했다.


2011년 8월 11일 일요일 한 통의 전화가 쿡에게 걸려왔다. 쿡은 잡스로부터 “지금 당장 오라”는 말에 달려갔다. 잡스는 “췌장암 치료로 애플의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다”면서 애플을 이끌 것을 제안했다. 쿡은 잡스에게 이전처럼 다시 애플로 돌아올 것이라며 용기를 주었지만, 두 달여 후 잡스는 떠났다. 쿡은 잡스와는 정반대의 성격으로 알려졌다. 말이 없고, 철저한 분석과 안정적인 조직 운영이 특징이다. 쿡이 애플로 자리를 옮긴 건 1998년으로 컴팩 부사장으로 있을 때였다.

당시 애플은 파산 위기에 처했고, 컴팩은 당시 세계 1위 컴퓨터 제조사였다. 쿡 입장에서는 옮길 아무런 이유가 없었고,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잡스와의 만남을 계기로 이직했다.

그만큼 디지털 정보기술(IT) 산업의 미래를 내다본 쿡의 결정이었다. 지금 벌어지는 미·중 간 무역전쟁도 내막을 보면, 미국은 막고 중국은 따라잡으려는 IT 전쟁이다.

쿡이 잘하는 것은 공급망 관리. 아이팟을 생산할 때였다. 메모리 업체에 구매 대금을 선지급하고 대량의 메모리를 구매했다. 대량의 메모리를 선급으로 구매하니 개당 단가는 엄청나게 낮춰 공급받았고, 보다 큰 이윤을 낼 수 있었다. 이 방식은 지금도 애플이 사용하고 있다.

애플은 지난해 말 현재 회사 가치 1조달러가 넘은 유일한 기업으로 도약했다. 미국 정부보다도 더 많은 현금을 쌓아놓은 애플은 새로운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쿡이 만들어낸 애플워치, 아이폰 X, 에어팟 이어폰과 하이엔드 시장을 완전히 평정한 컴퓨터까지 애플의 성공은 현재진행형이다.

책에서 저자는 애플이 설계한 10년 후 IT산업의 주력상품을 소개한다. 경쟁사와 무한 경쟁을 벌이지 않아도 성장을 계속할 수 있는 쿡만의 경영 기법도 전한다. 쿡은 지금 로봇 자동차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GM이나 포드를 ‘과거의 노키아’로 추락시킬 만한 메가톤급 위력을 몰고 올 것이다.

잡스의 조력자였던 쿡은 애플의 수장이 되면서 완전히 다른 회사로 만들었다. 잡스가 관심 주지 않았던 기업 윤리를 실천하고 있다. 쿡은 특히 가치관을 강조한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2012년 쿡은 골드만삭스가 주관한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노동자 학대 혐의’를 직설적으로 언급했다. “모든 근로자가 차별 없이 경쟁력 있는 급여를 받으며 안전한 노동 환경을 보장받는 그날까지 애플은 결코 안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근로자를 돌보지 않는 공급업체는 어떤 곳이든 애플과 계약 해지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쿡은 CEO로 재임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공급업체의 책임의식을 강조한 바 있다. 당시 폭스콘(대만의 애플아이폰 협력업체) 등에서 노동자 학대 문제가 불거졌다. 그는 2012년 초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 이렇게 썼다.

“오늘날 우리 업계에서 애플처럼 근로자를 위해 환경 개선에 열중하는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그린피스와의 협력, 노동자들의 착취를 개선한 노력 , 성차별을 없애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통해 그는 잡스와 완전히 다른 CEO가 되어가고 있다.

책에서는 실제 선을 이행하는 쿡의 이야기가 훈훈하게 전해진다. 쿡의 말이다.

“앞으로 애플은 선을 행하는 기업의 수장 팀 쿡으로 기억될 것 같다. 나는 기업이 상업적인 것만을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기업은 사람들의 집합일 뿐이다. 사람이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면 기업 역시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쿡은 애플의 위대한 3막으로 자동차, 의학, 보건, 피트니스, 스마트홈 등 아직 컴퓨팅이 정복하지 못한 무대를 펼쳐갈 것이다. 저자는 IT 전문 매체 ‘와이어드닷컴’(Wired.com) 편집장을 거쳐 현재 애플 관련 블로그 ‘컬트 오브 맥(Cult of Mac)’의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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