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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중독은 질병” WHO 선언에 국내 업계 위기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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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 인식 더 커질텐데… 인재들 외면 매출 타격”

동아일보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등재하면서 국내에서도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경기 성남시 판교 일대에 자유한국당 윤종필 의원이 ‘게임 중독은 질병!’이라는 펼침막을 내건 가운데(위쪽 사진) 같은 날 한국게임학회 및 협회 등 89곳이 참여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사회적 합의 없이 WHO의 결정을 국내에 도입하는 것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게임커뮤니티 캡처 및 뉴스1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아이의 장래를)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게 아닌지 혼란스럽네요.”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A 씨(40·여)는 최근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의 엔씨소프트 본사를 방문해 게임 제작 과정을 체험하는 견학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이 회사 직원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A 씨는 “게임 개발자를 꿈꾸는 아들을 적극 지원하고 싶은데 게임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커지는 것 같아 망설여진다”고 말했다.

국내 정보기술(IT) 분야의 메카인 판교는 게임산업의 성지로도 손꼽힌다. 엔씨소프트를 비롯해 넥슨 등 다수의 대형 게임사가 이곳을 터전으로 삼고 있다. 지난달 28일 WHO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가 포함된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 11차 개정안(ICD-11)을 의결한 이후 판교는 동요하고 있다.

○ 질병 등재 놓고 엇갈리는 해석

지난달 29일 자유한국당 윤종필 의원은 판교 일대에 ‘게임 중독은 질병이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윤 의원실 측은 “전날 WHO의 결정에 환영 의사를 밝힌 것”이라며 “게임 중독은 엄연히 존재하는 질병이지만 국내 게임업계가 (질병코드 도입을) 반대해 현수막으로 소신을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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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인근에 지역구를 둔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김 의원은 페이스북에 “게임에 과몰입하는 수많은 원인과 환경을 무시하고 문제의 원인을 단순히 게임으로 치부하는 것이 과연 건강한 사회인가라는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영화를 많이 본다고 ‘영화 중독’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게임도 질병이 아닌 놀이문화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판단하는 진단 기준을 놓고서도 논란이다. “추가 연구를 통해 세부 기준을 마련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라는 정신건강의학계 평가와 “저마다 다른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모호한 문구”라는 게임업계의 비판이 맞서는 것이다.

WHO는 게임이용장애의 진단 기준을 △게임 시간과 빈도 등을 통제하지 못하고 △게임을 일상생활보다 우선하고 △게임 과몰입으로 부정적인 결과가 나와도 게임을 멈추지 못하는 상태가 12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라고 제시했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핵심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올 정도로 게임에 과도하게 몰입해 있는지와 게임을 안 했을 때 불안하거나 초조해하는 금단증상이 발생하는지 여부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WHO가 이번에 진단기준을 마련하면서 이에 맞춰 국내 게임이용장애 현황을 조사하고 한국의 현실에 맞는 구체적인 표준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게임업계는 아직 의학계 내부에서도 게임 과몰입에 대한 의견이 엇갈려 사회 전반이 공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결국 의사마다 아전인수식으로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진단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2017년 영국 옥스퍼드대를 비롯해 해외 의료계의 교수 30여 명은 WHO에 서한을 보내 “게임중독을 질병이라 규정한 보고서는 근거가 부족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최승우 한국게임산업협회 정책국장은 “이런 식이면 낚시에 빠지거나 유튜브에 열중하는 개인에게도 똑같이 중독이라는 타이틀을 줄 수 있다”며 “프로게이머는 게임이 직업이라 질환자가 아니라고 진단한 의사가 프로게이머 지망생은 어떻게 판단할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위기감 감도는 국내 게임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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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의 이번 결정 직후 국내 게임업계는 “질병이라는 낙인을 안고 가야 한다”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지면서 인재 영입이 어려워지고 게임 세금을 비롯한 추가 규제 움직임도 가시화될 것이란 우려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이미 해외에는 없는 ‘강제 셧다운제’를 도입하는 등 게임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8년 게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게임산업의 규모(매출액 기준)는 전년도보다 6.5% 상승한 13조9904억 원이다. 올해와 내년의 국내 게임산업 매출 증가율은 각각 3.9%, 2.4%로 추정되지만 성장세는 이미 주춤해지고 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은 “중국이 국내 게임업체를 대상으로 자국의 게임 판호(유통 허가권) 발급을 몇 년째 막으면서 한국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 게임이용장애의 질병 등재까지 겹치면서 한국 게임산업은 난관에 부닥쳤다”고 진단했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이덕주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지난해 말 보고서를 내고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 등재 이후 2023년부터 3년간 국내 게임산업의 경제적 손실이 11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이덕주 교수는 “2011년 셧다운제 도입 이후 매출이 줄어든 사례를 기반으로 질병코드화로 인한 게임시장 위축 규모를 산출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매출 감소가 예상되면서도 대부분의 게임업체는 별다른 대처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어 국내 게임산업 위축은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 국내 도입까지 남은 절차는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은 권고안에 불과하지만 한국질병분류코드(KCD)는 ICD를 기초로 만들어진다. KCD는 진료 기록이나 사망원인을 분류하기 위해 질병 등을 성질에 따라 유형화한 것으로 통계청이 5년마다 개정한다.

현재 의료 현장과 학계에선 7차 개정본을 사용한다. 8차 개정본은 2020년 7월경 고시될 예정. 보건복지부는 당초 게임이용장애를 KCD 8차 개정본에 넣는 방안도 고려했지만, 통계청이 “한국 사정에 맞게 기준을 바꾸는 등 3년가량이 필요하다”며 난색을 표해 2025년 고시될 9차 개정본에 포함시키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했다.

WHO가 제시한 진단기준을 KCD에 어떻게 반영할지는 논의 대상이다. 복지부는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진단기준 등에 합의점을 도출하겠다고 나섰지만 게임산업의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보건당국 주도의 민관협의체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거부하고 있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게임이용장애가 KCD에 정식으로 등재되면) 혼자만의 힘으로 과몰입에서 벗어나기 힘든 개인을 약물치료로 돕고 의학적으로 대처 방법을 연구할 기반이 생길 것이다”고 말했다.

김재형 monami@donga.com·조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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