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전 고등학생 때 반 친구들을 데리고 만화방을 드나들던 문제아 반장이었구요. 학력고사 일주일 전에는 학교 앞 만화방에 있다가 학생주임 선생님에게 걸려서 ‘빳다’(야구배트의 은어) 맞고 엉덩이가 아파 제대로 시험도 못봐서 재수를 할 정도로 문제아였어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라는 타이틀과 모범생같은 외모 때문에 가졌던 선입견은 그 한마디로 깨졌다.
“의과대학 졸업 성적은 뒤에서 한자릿수였구요. 학생운동과 록밴드도 열심히 했어요” 이 교수가 대학을 다닐때만 해도 학생운동이 한창일 때였다. 스스로를 문제아(?)로 규정했던 이 교수는 물만난 고기처럼 학내 각종 활동을 섭렵했다. 사회현실에 관심이 많은 의대생들이 주축이 된 ‘청년의사’라는 동아리 활동을 통해 국민과 직접 소통하고 사회에 참여하자는 의사대중운동도 활발히 했다.
“의대시절 서울대 의료관리학 교수님들에게 공중보건정책을 많이 배웠구요. 문재인 케어의 설계자로 알려진 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인 김용익 전 의원이 멋있어 보여서 반핵운동도 좀 했습니다”
전공은 고민하다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분야인 정신건강의학과를 택했다. 군대에 가서는 공중보건의사로 배치를 받았다. 이때도 가만 있지 못했다. 이 교수는 당시 대한공중보건의사협회 대표일을 맡았고 국내 처음으로 농촌지역고혈압 유병율조사사업을 진행했다.
‘태아알코올증후군’이라는 특이한 질환을 처음으로 역학조사를 해서 논문으로 내기도했다. “미국국립보건원에 연수를 다녀왔는 데 연수 후 한달 뒤 국립알코올연구소 부소장 등 6명을 초대해서 질병관리본부와 함께 국내에서 처음으로 연구를 시작했어요”
“태아알코올증후군을 세계 최초로 보고한 샌디에고주립대 소아청소년과 켄존 교수와 우리나라 지적장애시설 10곳을 누비며 80명을 조사해 13명의 태아알코올증후군 아이들을 찾아 학계에 보고했어요. 보고이후 사회적인 반향도 상당했어요. 사실 최근 10년새 가장 알코올중독유병율이 높은 층이 우리나라의 20~30대 여성층이거든요. 특히 임신 중 음주는 아이 출산 시 지적장애 등 심각한 결과를 낳습니다”
이 교수는 조현병 등 정신질환이나 중독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진료실 안에서만 하는 것은 체질에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직접 지역으로 들어가고 싶어 2006년부터 3년 간 서울 도봉구 지역정신건강보건센터에 일주일에 한번씩 상담하러 나갔어요. 미국 연수기간 2년 후 돌아와서는 병원과 가까운 포천지역 정신건강센터에서 계속하고 있죠. 2006년부터 했으니까 벌써 14년째네요”
이 교수에게는 뿌듯하고 감동적인 기억이 있다. 병원장을 설득해 약 600만원 정도를 기부받아 포천정신건강센터에서 중증 정신질환 환자 30여명을 모아 제주도를 다녀온 것이다.
“형편이 어려운 이 분들이 언제 제주도를 여행해봤겠어요. 한라산을 다녀왔는데 중간쯤에 대부분 낙오가 됐어요. 하지만 남성 중증정신질환자 8명이 끝까지 정상에 올라갔고 이를 기념으로 그 중 4명이 록밴드를 결성한거예요. 바로 전국유일의 중증정신질환자 밴드인 ‘투데이밴드’입니다. 조그만 경연대회에 나가서 상도 받았습니다. 물론 제가 밴드도 했던 경험도 있고해서 코치 겸 주무죠(하하)”
중독이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에 대해 다양한 활동을 하다가 이 교수는 전환점을 맞는다. 2012년에 정신과 전문의 등 70여명을 모아서 ‘중독없는 세상을 위한 다학제적 연구 네트워크’를 창설한 것이다. 지금의 ‘중독포럼’이다. 현재 유관기관을 포함해 회원만 200여명이다. 지금까지 포럼만 40여회, 연인원 3000여명이 참가할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김태열 기자/k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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