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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아프리카돼지열병 국내 상륙

[르포] "백신 없어 일단 구제역 소독약이라도"…'돼지 열병 공포' 농가들, 北 멧돼지와 전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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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無·치사율 100% 돼지열병 북한 상륙
北 인접 양돈 농가 "구제역 아픔 남았는데..."
예방백신 없어 ‘구제역 소독약’으로 농장 곳곳 소독
‘완전무장’ 방역복으로 ‘방역 전쟁 中’
2m 방벽에 수렵꾼까지…’北 멧돼지와 전쟁’도

지난 4일 오전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불과 10㎞ 떨어진 경기 파주시 파평면의 양돈(養豚) 단지. 농장 담벼락을 따라 시큼한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방역복과 장화로 ‘완전무장’한 농장주 노하영(64)씨가 농장 입구에 분주히 소독약을 뿌려대고 있었다.

노씨가 갑자기 ‘방역 전쟁’에 나선 것은 치사율 100%로 알려진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하 돼지열병)이 작년 하반기 중국에 이어 최근엔 북한에서도 발병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노씨는 부랴부랴 농장 일대에 소독약을 뿌리고 길목마다 하얀 생석회를 깔았다. 하지만 노씨가 뿌린 건 구제역 등에 효과가 있는 ‘팜액트’라는 소독약이다. 정작 돼지열병은 예방백신이 없다. ‘돼지열병 공포’에 빠진 노씨가 절박한 심정에 궁여지책으로 구제역 소독약을 뿌린 것이다.

그는 "구제역에 쓰이는 소독약을 뿌리긴 하는데 효과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며 "그냥 일단 뿌려보는 것"이라고 했다.

돼지열병이 북한까지 확산하면서 접경지역 양돈단지에 방역 비상이 걸렸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돼지열병 감염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지만, 북한과 맞닿은 지역에 사는 농민들은 이미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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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경기 파주시 양돈 농가를 운영하는 노하영(64)씨가 돼지를 실은 트럭에 소독약을 뿌리고 있다. /김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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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걸린 양돈 농가 "이번엔 돼지열병? 구제역 악몽 떠올라"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치사율이 100%에 육박하지만 예방백신이 없다. 2010년 국내 양돈업계에 타격을 준 구제역은 가축연령에 따라 치사율이 5~50% 정도다. 주로 분비물(눈물·침·분변 등)로 전파되며 공기 전염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이곳에서 돼지를 키워온 ‘베테랑’ 김모(60)씨도 이번 돼지열병만큼은 "무섭다"고 했다. "돼지열병은 백신도 없다지요? 돼지열병이 퍼지면 우리나라 양돈 농가는 끝장나는 겁니다. 구제역 피해도 겨우 회복했는데 돼지열병이라니…지겹습니다. 지겨워요."

노하영씨는 지난밤 잠을 설쳤다고 했다. 9년 전 '구제역 파동’ 때 자식처럼 키우던 돼지 1만 2000마리를 몽땅 땅에 묻은 기억이 떠올라서다. 두 아들과 힘겹게 재기(再起)에 성공해 돼지 1만 마리를 키우고 있지만 다시 눈앞이 막막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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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돈 농장주들은 일단 서로 왕래부터 줄였다. 외부인의 출입도 엄격하게 막는다. 언론 인터뷰도 농장 밖에서 방역복을 입은 채 잠깐씩 하는 게 전부다. 이운상 대한양돈협회 파주지부장은 "돼지는 소와 달리 사육이 매우 까다로운데, 돼지열병 위기까지 닥쳤다"며 "같은 양돈업계 사람이라도 접촉을 극도로 최소화한 상태"라고 했다. 양돈 농가 간 대책 회의도 전화 통화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지부장은 "파주뿐 아니라 대한민국 양돈 농장주 모두가 구제역 당시 고통을 기억하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살얼음 걷는 기분일 것"이라며 "당국도 방역에 꼼꼼히 나서고 있는 만큼 이번엔 무사히 지나가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그 역시 수십년 동안 이곳에서 돼지 1000여 마리를 키워왔고, 수차례 구제역 난리를 겪었지만 전례 없는 돼지열병에 이번 만큼은 긴장한 모습이었다.

◇농가 "北에서 멧돼지 넘어올까 걱정"… 정부 "불법 축산물 반입 막아야"
우리 정부는 지난달 31일부터 경기, 강원도 접경지역 10개 시·군 등을 특별관리지역으로 정하고, 양돈 농가에 방역담당관을 급파해 긴급 방역에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3일까지 일대 돼지들에 대한 혈청검사를 실시한 결과, 현재까지 양성 판정이 나온 곳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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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파평면 양돈단지는 멧돼지 접근을 막기 위해 2m 높이의 벽을 세웠다. /김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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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주들의 경계대상 1호는 북쪽에서 내려오는 멧돼지다. 북한이나 비무장지대에 서식하는 야생멧돼지들이 강을 건너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 양돈 단지는 최근 수억 원을 투자해 2만 5000㎡(약 7500평) 농장 외곽에 2m 높이의 방벽을 쌓았다. 벽을 따라 매 시간마다 자동으로 소독약을 분사하는 설비도 갖췄다. 농민들은 "정부에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사람의 힘으로 통제하기 힘든 게 전염병"이라며 "이맘때가 되면 산에서 내려온 멧돼지들이 동네를 쏘다니기 때문에 이놈들부터 막아야 한다"고 했다.

파주시는 대대적인 '멧돼지 수렵'에 나설 계획이다. 지난 4월부터 두 달 동안 엽사 30여명을 동원해 멧돼지 50마리를 잡았다. 사살한 멧돼지 혈청은 농림부로 보내져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검사하고 있다.

국방부는 멧돼지가 철책을 넘어 내려올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밝히고 있다. 남북한 사이에 철책이 이중으로 돼 있고, 열상감지장비 등 과학화된 경계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멧돼지가 철책을 통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철책 아랫부분도 콘크리트로 메워져 있기 때문에 멧돼지가 굴을 파서 넘어오는 것도 어렵다고 한다. 다만 한강이나 임진강을 따라 멧돼지가 헤엄쳐 넘어올 수는 있어, 발견할 경우 신고를 받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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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시 농업기술센터에 설치된 소독소에서 차 한 대가 소독을 받고 있다. /김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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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수 경기도 동물방역위생과 팀장은 "현재로서는 야생멧돼지가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바이러스를 퍼뜨릴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돼지열병 발병 국가와의 인적, 물적 교류를 막는 게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도 지난달 30일부터 검역을 강화해 해외에서 육가공품을 들여오다 적발될 경우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파주=김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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