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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카카오 대리기사·타다 운전자, ‘자영업자’일까 ‘노동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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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카카오모빌리티가 이달 중순 선보일 호출 거부 없는 대리운전 서비스 ‘카카오 T 대리’ 애플리케이션(앱). 카카오모빌리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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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앱 등 온라인 기반 플랫폼에서 고객 호출(콜)을 받아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은 플랫폼 업체의 노동자일까, 아니면 자영업자일까. 카카오모빌리티의 대리운전과 플랫폼 택시, 렌터카 호출 서비스 ‘타다’ 등 모빌리티 업계를 중심으로 이에 대한 논의가 불붙고 있다. 기존 산업에서 형성됐던 노동자의 개념이 4차 산업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따라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모빌리티는 이달 중순 기사에게 고정시급을 주는 대리운전 서비스를 내놓는다. 카카오 대리운전 앱을 이용하는 기사들은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 시간당 1만4000원을 받는다. 시급은 분 단위로 계산돼 4시간 일하면 5만6000원을, 30분 일하면 7000원을 받는다.

대신 해당 앱을 쓰는 동안 기사들은 화장실 가기 등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호출을 거부할 수 없다. 카카오는 모든 호출에 응하도록 했으며 기사에게 목적지를 보여주지 않기로 했다. 해당 앱을 쓰는 동안에는 다른 호출 앱을 쓸 수도 없다. 그렇다고 기사가 카카오에 소속된 건 아니다. 기사는 카카오와 인력수급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소속이다.

기사협회 “월급 받는 형태” 주장

카카오 “시간 각자 정해 고용 아냐”

타다 측 “법적으로 직접고용 못해”


논란은 기사들이 ‘사실상 카카오의 전속 노동자가 되는 것 아니냐’에 있다. 카카오는 언제 몇 시간 일할지를 기사가 정하기 때문에 고용관계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카카오 관계자는 “기사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하루 4시간 일할 수도, 아예 카카오 앱을 끄고 다른 호출 앱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는 300여명의 직원을 둔 카카오모빌리티가 수천명의 기사를 직접 고용하는 것도 현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전국대리기사협회는 “하루 4시간씩 한 달 동안 카카오 앱을 쓰는 경우, 사실상 카카오로부터 월급을 받는 형태가 된다”며 반박했다. 협회 측은 “카카오는 별점(고객의 운전자 평가) 등으로 기사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며 “카카오 앱의 시장 영향력이 높은 점을 감춘 채, 기사들의 ‘선택권’을 강조하는 것도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이와 유사한 논란은 ‘타다’에서도 나타난다. 이곳 기사들은 타다와 인력수급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의 직원이 되거나 개인사업자로 계약을 맺는다. 하지만 타다 측은 운전기사가 어디서 일하는지 혹은 쉬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체크한다. 타다 기사들은 호출이 오면 바로 해당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 장기간 별점이 낮으면 재교육 등 불이익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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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들이 렌터카 호출 서비스 ‘타다’를 이용하는 모습. 타다는 소비자가 ‘타다’ 앱을 통해 카니발 차량과 운전기사를 호출하는 서비스다. VCN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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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를 운영하는 VCNC는 “우리는 운송사업자가 아닌 렌터카 사업자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직접고용을 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직접고용이 가능하더라도, 타다가 이를 선택할 가능성은 낮다. 4대 보험료 납부 등 관리 비용이 늘기 때문이다.

대법 ‘플랫폼 노동’ 자영업자 판단

미국에선 업체·기사 간 이견 팽팽

국토부 “기술과 노동권 조화 노력”


현행법은 이들 기사 같은 플랫폼 노동자를 자영업자로 본다. 지난해 4월 대법원은 배달대행업체와 계약을 맺은 배달 기사를 ‘개인 사업자’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판단의 근거로 콜을 받을지 말지를 배달 기사가 결정하고, 콜을 받지 않아도 특별한 제재가 없다는 점을 들었다. 또 배달 기사가 다른 업체의 콜을 받을 수 있고, 유류비도 배달 기사가 지불했다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해당 판단은 ‘플랫폼 노동’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1994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하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논의를 시작한 미국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2015년 6월 캘리포니아 지방법원은 우버(Uber) 운전자에 대한 판결에서 “우버가 앱 사용빈도가 낮은 운전자를 차단할 권한이 있다는 점, 고객의 운전자 평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 등을 볼 때 노동자로 추정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해당 판단 직후 당사자 합의로 소송이 끝나 법적 보호는 받지 못했다. 미국에서 우버 운전기사의 57%는 일주일 15시간 이하로 영업한다. 2015년 12월 워싱턴주 시애틀 시의회는 우버 운전자들이 노동조합을 꾸릴 수 있는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역시 이 논란을 종결짓지 못했다. 우버 등 플랫폼 업체들은 앱을 언제 얼마나 사용할지를 기사가 정하며, 기사가 자신의 차량으로 영업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반면 기사들은 고객 평점을 유지하지 못하면 해고될 수도 있고, 수수료도 플랫폼 업체가 정한다며 반박하고 있다. 논란이 한창인 와중에 이들에게 노동권 일부는 보장하면서도, 일부는 보장하지 않는 방식도 논의되고 있다.

소송 끝에 플랫폼 업체가 물러선 경우도 있다. 지난 2월 영국 대형 택배업체 ‘헤르메스’는 최저임금과 휴일근무 수당을 받을 수 있는 정식 직원이 되는 것과 기존처럼 자영업자로 일하는 것 중 하나를 택배기사가 선택하도록 했다. 이는 지난해 영국 법원이 일부 택배기사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은 것에 따른 후속 조치다.

국내에선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권 문제가 ‘규제혁신형 플랫폼 택시’ 논의에서 더욱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택시 4단체와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 3월 사회적 대타협에 따라 플랫폼 택시 안을 협의하고 있다. 택시회사에서 기사를 고용하지 못해 영업을 하지 않는 면허(유휴면허)와 초고령 개인택시기사의 면허를 카카오가 활용하는 형태다. 택시노조는 “카카오가 면허를 ‘양도·양수’하지 않고 임차할 경우, 법인기사들은 특수고용노동자로 전락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택시회사와 카카오는 각각 임대수익과 관리 편의성을 이유로 면허를 빌리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플랫폼 택시 도입 과정에서 택시기사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한다거나 4대 보험 중 일부를 적용하는 등의 논의가 진행될 수 있다”며 “여러가지 안을 두고 플랫폼 기술과 노동권 보호가 조화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모빌리티 업체 관계자는 “플랫폼 업체에만 모든 책임을 지우는 건 과도하다”며 “운전자 처우 개선에 사회적 기준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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