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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기고] 혐오와 차별의 언어가 난무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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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춘천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지도 벌써 20년을 향해 간다. 춘천의 명물 음식에 관해서도 나름 공부를 한지라 이젠 막국수도 비빔장 양념 맛보다는 면발의 끊어짐이 적절한 곳을 찾아가고 따뜻한 면수에 간장 한 방울 떨어뜨려 막국수 먹은 입가심을 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국수와 닭갈비가 지배하는 춘천의 요식업에는 여전히 불만이 있다. 면 요리를 좋아하는 내게 춘천은 선택의 폭이 너무 좁기 때문이다.

다양성에 대한 욕구는 일상의 삶에서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음식, 쇼핑, 여행과 같은 소비생활에서 다양성은 선호되는 취향일 뿐만 아니라 해당 분야의 사업체에서는 기업의 경쟁력이다.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새롭고 다양한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옳은 것, 익숙한 것, 편한 것에 대한 집착과 고집도 여전하다.

일상에서 우리가 겪는 모순이 한국사회의 문화다양성 담론과 정책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다양성을 증진하고 보호하자는 일반적 목표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다양성의 구체적 사례로 들어가면 사례별로 다양성의 관점이 아니라 진리, 정의, 선과 악, 옳고 그름의 문제로 치환된다. 일부에서는 해당 사례들이 다양성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문화다양성 개념이 포괄하고 있는 내용과 의미는 무엇인가? 유네스코는 문화다양성 선언(2001)과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증진과 보호를 위한 협약(2005)에서 문화다양성 개념을 폭넓게 정의한다. 먼저 유네스코는 문화를 '사회와 사회구성원들의 독특한 정신적, 물질적, 지적, 감성적 특성의 총체'이며 '예술 및 문학뿐만 아니라 생활양식, 함께 사는 방식, 가치체계, 전통과 신념을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런 맥락에서 유네스코가 정의하는 문화다양성은 예술과 문학뿐만 아니라 생활양식과 가치체계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영역에서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유네스코는 이러한 선언과 협약을 통해 문화다양성이야말로 인류사회를 풍요롭게 만들고 평화를 유지하는 필수적 요소임을 상기시킨다. 문화다양성은 인권의 관점에서 존중되어야 하고, 창의성의 원천이며 국제사회가 연대해서 증진해 나가야 할 과제라고 선언한 것이다.

문제는 한국사회가 문화다양성 개념을 좁은 의미의 문학과 예술영역에서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치체계나 신념과 같은 정신적 영역은 문화다양성의 범위에 들어가지 못한다. 따라서 문학과 예술, 나아가 소비와 향유의 영역에서는 문화다양성을 존중하지만, 가치의 체계나 신념의 영역에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극단적으로는 혐오와 편견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문화다양성 논의에서 또 다른 문제는 문화다양성이 여전히 국가나 민족 단위의 다양성으로만 이해된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와 문화 내부의 다양성은 문화다양성의 관점에 들어오지 못한다. 한국 문화는 늘 동질적이어야 하고 고정된 것으로만 이해하려 한다. 이런 구조에서 한국사회 구성원들은 소수자의 문화를 관용하는 것만 문화다양성의 가치를 실천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정작 본인 스스로가 문화다양성의 가치로 지지받고 보호받을 수 있는 주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늘 타자에 대한 연민과 온정주의적 시각을 갖는 것에서 머물거나 아니면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혐오와 차별의 언어가 난무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문화다양성은 한국사회와 문화 내부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내부의 다양성을 존중해 본 적이 없는 사회는 외부의 다양성 혹은 타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세대, 지역, 젠더, 계층 간에 벌어진 간극이 차별과 혐오로 확대되기보다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통해 극복되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문화다양성 논의는 이제 문학과 예술을 벗어나 삶의 양식과 정체성, 가치의 세계로도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한건수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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