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8 (월)

이슈 홍콩 대규모 시위

"주동자 색출" "캐리 람, 즉각 퇴진"…홍콩시위 강대강 대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범죄인 인도 법안`(일명 송환법) 완전 철폐 등을 요구하며 홍콩 입법회 건물을 점거한 시위대와 이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투입된 진압 경찰이 2일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EPA =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홍콩 시민들의 시위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일 홍콩 주권 반환 22주년에 벌어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는 경찰의 강제 해산에 의해 2일 새벽 일단 마무리됐다. 하지만 홍콩 정부가 시위 주동자를 색출해 처벌한다는 강경 입장을 밝히자 시위대가 반발하고 있다. 이에 더해 시위대는 캐리 람 행정장관 퇴진을 요구하고 있어 홍콩 정부와 시위대 간 마찰이 격화될 전망이다. 중국은 홍콩 폭력 시위에 대한 강력 처벌을 주문하고 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위대를 두둔하고 나서 홍콩 시위가 미·중 패권경쟁의 대리전이 되는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2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이날 새벽 시위 진압 장비로 무장한 경찰들이 입법회 건물로 접근하자 의사당에 모여 있던 시위대는 모두 밖으로 빠져나와 도로를 점거한 다른 시위대에 합류했다. 홍콩 경찰은 시위대를 해산시키려고 최루탄을 발사했고, 시위대는 한때 벽돌과 우산 등을 던지며 맞섰지만 오전 2시 30분께 모두 해산했다. 이에 앞서 시위대는 전날 밤 입법회 건물을 둘러싼 유리벽과 유리문을 깨고 진입해 점거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가 공공기관에 진입해 점거 시위를 벌인 것은 홍콩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람 장관은 2일 새벽 4시 홍콩 경찰청장과 함께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중국이 범죄혐의자 인도를 요청하면 홍콩이 이에 응한다는, 이른바 '송환법' 처리 문제로 지난달부터 퇴진 요구에 직면했지만 람 장관은 이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시위대가 보여준 모습은 폭력이었고, 시민들에게 비난받을 만했다"며 법질서를 회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법을 위반한 자들을 끝까지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매일경제

2일 새벽 4시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홍콩 경찰청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시위대의 의사당 점거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AFP = 연합뉴스]


지금까지의 수세적 입장을 바꿔 시위 주동자에 대한 반격을 가하겠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시위대는 송환법의 완전한 폐기, 람 장관 사퇴, 경찰 강경 진압에 대한 진상 규명 등을 요구하고 있다. 양측 모두 강대강으로 대치하고 있어 향후 경찰이 시위 주동자에 대한 체포에 나선다면 그동안 송환법 폐기에 초점이 맞춰졌던 시위는 캐리 람 정부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로 성격이 급변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 홍콩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조슈아 웡은 "람 장관은 더는 지도자가 될 수 없다"며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 웡은 2014년 홍콩의 대규모 민주화 시위인 '우산혁명'을 주도했다가 홍콩 교정당국에 수감된 후 지난달 17일 출소했다. 그는 "홍콩 인구의 25%인 200만명 이상이 집회에 참여했지만 모든 요구가 무시됐다"면서 "어떤 출구가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정부를 비판했다.

홍콩 정부가 강경 모드로 돌변한 데는 중국 측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홍콩업무 소관부처인 홍콩특별행정구 판공실은 이날 '책임자' 명의로 발표한 담화에서 "1일 입법회 건물에서 발생한 폭력 사건에 경악하고 분노한다"며 "이를 규탄하는 한편 홍콩특별행정구가 심각한 위법 행위를 끝까지 추적해 처벌하는 것을 굳게 지지한다"고 밝혔다.

중국 내 주요 관영 매체도 홍콩 시위를 불법 폭력 시위로 규정하며 강력히 비난했다. 중국 공산당 산하 환구시보는 2일 사설에서 "시위대의 폭력 행위는 홍콩 법률의 상징성을 훼손하고, 홍콩의 법치를 멸시한 것과 같다"며 "이들은 전체 홍콩 사회의 이익과 마지노선을 유린했다"고 비난했다. 환구시보는 이어 "홍콩은 고도의 자치를 인정받고 있고 치안 문제도 스스로 결정할 일이지만 (중국은) 보편적인 정의감에 따라 이러한 폭력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홍콩 법치를 위협하는 자들을 강력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일경제

미국은 시위대를 옹호하며 홍콩 사태에 낮은 수위로 개입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홍콩 내 반정부 시위에 대해 "그들은 민주주의를 바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는 그들의 대부분은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불행히도 일부 정부는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는다"며 람 장관 배후에 있는 중국 정부를 겨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찰 강제 해산으로 이어진 소요 사태에 대해선 "안타깝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미국의 태도는 향후 홍콩 사태가 시위 주동자 체포와 반정부 시위 격화로 이어지면 '민주주의와 인권'을 들어 중국을 압박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람 장관을 지원하는 중국 중앙정부의 고민도 깊어졌다. 홍콩 시위대가 당국의 송환법 처리 연기 발표에도 친중 성향인 람 장관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데 중국이 이를 수용하면 홍콩에 대한 중국의 통제력은 물론 중국 내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의 리더십도 도전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위대 요구를 무시하고 람 정부가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면 홍콩의 민주주의 가치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수호를 주장하는 홍콩 야권과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영국 가디언은 중국 톈안먼 사태를 상기시키면서 "홍콩의 위기가 심화한다면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중국 지도자들이 30년 전 톈안먼 광장에서 발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폭력에 의존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러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은 2일 BBC와 인터뷰하면서 "중국이 일국양제를 규정한 '영국-중국 공동선언'(홍콩반환협정)을 지키지 않을 경우 심각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만원 기자 / 류영욱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