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학원에서 2018년 한 해 동안 3개월 이상 재수 정규반 강의를 들은 원생(전국 종합)의 2019학년도 대입 실적이다. 대성학원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다. 입시전문가들은 “재수학원에서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의·치·한의대를 많이 보내면 그건 재수학원의 성과이지, 출신학교의 성과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당연히 재수학원으로서는 소위 명문대에 진학한 재수생의 출신학교를 밝힐 이유가 없다. 종로학원에서 발표하는 재수 성공사례 역시 출신학교가 아닌 학원에서의 커리큘럼 및 각 학생별 취약점 보완전략 위주로 제시된다. 그러나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진실’이 있다. 원래 잘하던 학생이 재수를 통해 조금 더 ‘좋은’ 대학으로 진학한다는 사실이다. 현행 대입제도에서 재수생이 정시로 갈 경우 기존 내신등급이 반영되지 않는 점도 학생을 재수로 유인하는 요인이 된다. 내신등급은 낮은데 수능은 잘 보는 학생들이 누굴까. 자사고 혹은 특목고 출신 학생들이다.
“재수를 다짐하고 1년을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등급을 올려 가는 일반고 출신이 몇이나 될 것 같습니까. 재수한다고 다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이 원래 잘하던 애들이 단기간(1년)에 집중력을 발휘해 명문대를 가는 겁니다. 자사고나 특목고의 재수생 비율을 한 번 보세요. 어마어마합니다. 자사고 재학 3년간 적게는 1000여만원대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을 들여 공부시켜놨는데 또 수천만 원의 돈을 재수비용에 쓰는 애들이 바로 자사고 학생들입니다.”(20년 경력 입시전문가 ㄱ씨)
대성학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2019학년도 재수생 진학 현황을 바로 볼 수 있다. 홈페이지 화면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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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신 낮아도 수능 잘 보는 학생은 누구
지난 6월 26일 김승환 전북교육감이 국회 교육위원회에 출석해 “상산고에서는 재수생을 포함해 한 해 275명의 학생이 의대에 간다”는 발언을 해 논란을 빚었다. 상산고는 김승환 교육감의 발언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그런데 김 교육감이 밝힌 해당 수치는 상산고 홈페이지 게시판에 게재돼 있던 내용이었다. 이 수치는 통상 해당 학교 출신이 ‘SKY+의학계열’ 대학으로 진학한 숫자를 취합할 때 중복 합격자 수 포함 및 재수생(심지어 삼수생)까지 포함시키는 관행대로 산출한 것이다. ‘인 서울 명문대 및 의대’만 보내면 된다는 학교의 그릇된 인식이 만들어낸 과장된 숫자인 셈이다.
이는 비단 상산고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 이후 ‘자율형 사립고’가 무분별하게 만들어지고, 이전부터 철학을 갖고 교육을 해온 ‘자립형 사립고’마저도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하면서 변질된 결과다. 부작용은 현재 나타나는 그대로다. ‘좋은 학교’는 곧 ‘명문대를 많이 보내는 학교’라는 이미지에 모든 자사고가 매달리기 시작했다. 재수를 시켜서라도 학생을 좋은 대학에 많이 보내고, 이를 수치로 광고하는 것이 자사고의 노골적인 홍보전략이 된 것이다. 이는 각 자사고의 재수생 비율을 봐도 알 수 있다.
서울 중동고와 휘문고, 세화고, 현대고, 세화여고는 대표적인 강남 5대 자사고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학교 졸업자의 절반은 대학이 아닌 재수학원으로 간다. 한 입시전문가는 “자사고는 다양성 교육을 목표로 삼지만 정작 아이들의 적성이 무엇이고, 어떤 진로를 원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3년 내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자사고나 특목고 학생들이 일반고보다 명문대를 많이 가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명문대를 간 그 학생들이 어느 과를 갔는지에 대한 결과 발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명하다. 일단 SKY 간판만 따면 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 학생이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고, 그래서 어떤 과에 진학하는 게 학생을 위해 좋은 것인지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는 것이다. 그러니 SKY에 진학하지 못하면 그 학생은 입시에 실패한 게 된다. 그러면 어디로 가느냐. 대성이나 종로(학원)로 간다.”
이는 과장된 사례가 아니다. 현재 재수학원 종합반에 등록해 2020학년도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상위권 학생들의 상당수가 자사고 출신이다. 강남의 한 재수학원 입시상담가는 “(재수학원 등록) 원서를 쓸 때 출신학교를 기재하니까 우리는 누가 강남 출신인지, 자사고 출신인지, 일반고 출신인지 당연히 다 안다”면서 “아무래도 자사고 출신들이 상위권 반에 들어가고, (학원이 조금만 잡아주면) 그 친구들이 결국 좋은 결과를 내놓는다는 것은 불문율이다”라고 말했다.
‘학교알리미’ 사이트를 통해 공개된 중동고의 2019년도 졸업생 진로현황을 살펴보면 이 학교 졸업자 412명 가운데 대학에 진학한 학생은 152명(36.9%)에 불과하다. 전문대에 간 5명(1%)을 포함해도 38%가 되지 않는다. 반면 ‘기타’에 해당하는 학생은 255명(62%)에 달한다. ‘기타’는 진학 또는 취업에 속하지 않는 경우를 모두 포함한다. 사실상 ‘기타=재수생’이라는 말이다. 중동고는 2019년 졸업자 10명 중 6명이 재수를 택했거나 적어도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서울 자율형사립고학교장 연합회 김철경 회장을 비롯한 22개 자사고 교장들이 3월 25일 기자회견을 열어 교육청의 자사고 재지정 기준인 ‘운영성과평가’에 대한 거부방침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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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전체 학교 대학 진학률 40% 미달
지난해 이사장·교장 등이 55억여원의 교비를 횡령하는 등 ‘사학비리’로 논란을 빚었던 휘문고(해당 이사장은 지난 6월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전체 졸업생 465명 가운데 단 36%(168명·전문대 1명 및 국외 진학 3명 포함)만이 대학에 들어갔다. 나머지 64%(297명)는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
세화고는 전체 졸업생 392명 가운데 193명(49%)이 대학 또는 전문대, 국외 진학을 했고, 나머지 199명(51%)은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 현대고 역시 졸업생 447명 가운데 222명(50%)이 대학 진학 또는 취업(1명)을 했고, 나머지 225명(51%)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강남 5대 자사고 중 유일한 여고인 세화여고는 그나마 전체 졸업생 387명 가운데 56%에 해당하는 217명이 대입에 성공했다(국외 진학 1명 포함). 그러나 170명(44%)은 재수를 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결국 강남 5대 자사고로 꼽히는 학교들마저도 졸업생의 절반 이상이 졸업 후 재수를 택한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놀라운 것은 강남구 전체 학교의 대학 진학률이 39.9%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는 전국 평균 대학 진학률 55%보다 15.1%포인트나 낮은 수치다. 이를 두고 강남지역 학생들이 공부를 못해서 재수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강남지역 학생일수록 재수를 해서라도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하려는 비율이 높다는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지난 7월 2일 인터뷰를 한 유성룡 에스티유니타스 교육연구소 소장은 이 같은 현상을 놓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전에 SNS에도 언급했지만 항간에는 그런 말들이 들린다. 강남지역 학생들은 재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성학원 재수종합반 한 달 비용이 200만~300만원 언저리인데 1년 하면 30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그런데 강남 학부모들은 그 돈을 지불할 능력이 된다. 그러니 재수를 시켜서라도 좋은 대학을 가려는 것이다.”
이쯤되면 ‘명문 자사고’에 대한 기준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졸업생의 절반 이상이 재수학원으로 옮겨가 대입 준비를 하는 자사고가 과연 대한민국 교육에 필요한 걸까. 과연 다양성 교육 및 수월성 교육에 성공한 학교라고 볼 수 있을까.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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