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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해러웨이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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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생물학자·과학사가

‘사이보그 선언’ ‘반려종 선언’

다른 종들과 관계 짜깁기 매력적



한겨레

해러웨이 선언문
도나 해러웨이 지음, 황희선 옮김/책세상·1만9000원

어쩌다보니 나는 해러웨이의 책들을 뜨문뜨문 여러 번 에스에프(SF)처럼 읽었다. 처음 ‘사이보그 선언’(1985)을 읽었을 땐, 좌절했다. 생물학자, 과학자, 페미니스트의 학술서에서 이처럼 난해한 시적 은유와 마주칠 줄이야. 글을 이렇게도 쓸 수 있나?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거의 모든 분야를 실뜨기처럼 엮어 짜놓은 선언문은 입심 좋은 ‘사기꾼’의 거창한 스토리텔링처럼 다가왔다. 두 번째 읽었을 땐, 21세기를 예견한 해러웨이의 상상력에 놀랐다. 이번 번역(<해러웨이 선언문>)으로 또 다시 읽었을 땐, 재밌었다. 해러웨이의 아이러니와 유머와 여유가 새삼 새로웠다.

해러웨이는 사이버네틱 시대 인간과 과학기술의 상호침투가 가져온 공진화 과정을 거부가 아니라 경이로 받아들였다. ‘사이보그 선언’은 한편으로는 군산복합체 다국적 자본주의의 위력에 대한 응전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페미니즘 진영에서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활로 모색 프로젝트였다. 간단히 말해 명령-통제-통신-첩보의 시대, 사이보그 되기만이 살길이라는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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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사이보그는 서구 이분법의 경계 허물기에 관한 은유다. 사이보그는 인간/기계/온코마우스/코요테/사기꾼/뱀파이어/몬스터/여신처럼 온갖 이종들의 결합이자 잡종들의 짜깁기다. 차이의 그물망이다. 그런 잡종 사이보그는 순혈주의에 바탕한 ‘순종’ 백인 인종주의를 농담으로 만든다. 해러웨이의 시선 아래 (남성)과학은 보편적 진리라기보다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해석된 담론이자 허구가 된다. 종교를 대신하여 진리를 독점한 근대과학은 동질적으로 고착된 신화에 불과하다. 그에 반해 남성과학의 패륜아로서 잡종 사이보그는 트랜스, 퀴어들과 친족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이보그 정치는 동질성에 바탕한 정체성의 정치가 아니라 차이에 바탕한 친밀성의 정치다. 사이보그 선언이 ‘퀴어가 시대정신이 되었다’고 하는 오늘날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사이보그 선언’과 ‘반려종 선언’(2003) 사이에는 약 20년의 시차가 있다. 그런 만큼 두 선언 사이에 이론적 편차도 있다. 전자가 인간/동물, 유기체/기계, 물질/비물질 사이의 경계 허물기에 집중했다면, 후자는 육신과 대지에 관한 생명정치윤리로 선회한 것처럼 보인다. ‘반려종 선언’과 처음 마주한 순간 나는 실망했다. 웬 반려종? 지상의 궁핍한 자들의 고통은 외면한 채 ‘개 스포츠’나 즐기고 있다니!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채식, 타로, 영성, 명상, 선불교 등으로 나가는 것은 아닐까? 백인 중산층 지식인 좌파 페미니스트의 ‘전향’을 우려했던 것 또한 성급한 기우였다. 해러웨이의 반려종을 반려동물쯤으로 오해한 데서 비롯된 염려였다.

다른 종들 사이의 공진화 관계에서 형성되는 반려종은 해러웨이가 발명한 범주다. 이제 사이보그는 퀴어한 반려종 가족 속에서 자매로 자리한다. 인간/동물/곤충/바이러스/AI(인공지능)/AI(조류독감)/벌레/퇴비에 이르기까지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반려종은 지구 생존 가이드이자, 망가진 지구상에서 타자들과 더불어 되기(becoming with)다.

‘반려종 선언’은 반려견 암컷 카옌 페퍼와 여자인간 해러웨이가 거침없이 타액을 교환하면서 키스하는 ‘소프트 포르노’로 시작한다. ‘사이보그 선언’에서 해러웨이가 남성들의 ‘위대한 이야기인’ 과학을 패러디했다면, ‘반려종…’에서 해러웨이는 반려견을 폭풍 애정한다. 종을 넘어선 사랑으로 인해 그는 카옌과 기꺼이 타액, 바이러스, 호르몬, 심지어 디엔에이(DNA)까지 나눈다. 해러웨이에 관한 다큐멘터리 <도나 해러웨이: 지구 생존 가이드>(2016)에 이르면 카옌은 치매노인이 되어서 해러웨이의 보살핌을 받는다. 두 반려종은 삶을 나누듯 죽음도 나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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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러웨이에게 모든 것은 관계다. 젠더, 민족, 인종, 심지어 질병도 관계다. 그렇다면 한겨레, 한민족, 순종은 터무니없는 우화다. 질병의 은유는 생산성, 건강성에 대한 거부다. 서구근대 이분법 담론에서 위생, 청결, 건강은 남성적 항목에 속했다면, 전염, 불결, 질병은 대체로 여성적 항목에 속했다. 젠더 또한 관계맺기에 의해 구성된다는 점에서, 고정된 생물학적 여성은 없다. 해러웨이의 이런 입장은 여성의 본질, 여성의 경험만을 주장하는 편협한 페미니스트들이 참조해야 할 대목이다.

해러웨이는 관계맺기의 구성과 배치의 변화가능성을 에스에프와 같은 스토리텔링에서 찾는다. 새로운 스토리텔링은 세계를 제작하는 힘이다. 새로운 설화는 순혈주의의 자족적인 자기제작(autopoiesis)과 나르시시즘적인 자기복제에서가 아니라 사이보그, 뱀파이어, 반려종, 타자들과의 공생에서 가능해진다. 여기서 잡종 사이보그 뱀파이어는 기독교 부활서사의 패러디이자, 성차별, 인종차별, 종차별에 대한 반격이다. 뱀파이어성은 건강한 비장애 이성애 정상성과는 다른 지점에서 퀴어한 친족들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전략적 장소다. 해러웨이식 스토리텔링은 부식과 오염과 혼종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괴한 뱀파이어 친족으로 보철하고 땜질하는 것을 혐오하지 않는다.

해러웨이의 ‘사이보그-반려종 자매’는 이성애주의의 정상성, 자본주의의 생산성, 인간중심주의의 우월성, 여성만을 챙기는 여성주의의 순결성을 인용하면서 파괴하고 균열을 내면서도 공모하고 웃는다. 그런 유머는 ‘두터운 지금’을 위한 상상력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지구상에서 생존을 위해서라도 아이 생산을 멈추고, 괴상한 친족 사이보그 반려종을 만들자! 그것이 해러웨이의 구호다. 그런 구호가 한국 페미니즘에 하나의 생존 가이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한겨레

임옥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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