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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성폭력 무고 사건 기소율, 성범죄 견줘 0.78%뿐…가해자 방어수단으로 쓰이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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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찰청·한국여성정책연구원 포럼

성폭력 가해 지목자가 맞고소한 경우 84.1% 불기소

“피해자 증언 막기 위해 무고 고소 부추기는 현상 문제”

“성폭력 범죄 특성상 ‘무혐의’가 곧 ‘무고’는 아냐”

“피해자 중심주의는 성폭력 무고수사 때도 반영돼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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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2018년 성폭력 무고죄로 기소된 피의자 수가 같은 기간 성폭력 범죄로 기소된 피의자 수에 견줘 0.78% 수준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또 성폭력 가해자 지목자가 무고로 맞고소한 경우 84.1%는 불기소처분을 받고, 기소된 사건 중에서도 15.5%는 무죄 선고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폭력 피해자가 “다른 이익을 노리고 허위 진술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일각의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연구결과 밝혀진 셈이다. 이에 따라 성폭력 가해자가 피해자의 증언을 막거나 위협하는 수단으로 무고죄로 역고소하는 행위에 대해 보다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단 의견도 나왔다.

19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성폭력 무고의 젠더 분석과 성폭력 범죄 분류의 새로운 범주화’ 포럼에서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성폭력 범죄 피의자 중에서 억울하게 무고당한 사례는 극히 적다”며 “성폭력 피해자의 고소나 증언을 막기 위해 성폭력 가해자가 피해자를 무고죄로 고소하거나, 고소하겠다고 협박하거나, 가해자의 변호사가 무고 고소를 부추기는 현상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형법상 무고는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 처분 또는 징계 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하는 것”으로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성폭력 사건의 무고는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허위로 고소하거나 신고하는 것을 말한다.

이번 연구는 대검찰청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검찰 사건 처리 자료를 기반으로 무고죄 단일범을 추출한 뒤, 성폭력 피해자가 무고죄 피의자인 사건 등을 분석한 결과다. 최근 2년(2017∼2018년) 동안 검찰의 성폭력 범죄 사건 처리 인원수는 총 8만677명으로 이 가운데 중복 가능성이 있는 타관 이송 인원 8937명을 제외하면 7만1740명이었다. 같은 기간 성폭력 무고죄로 기소된 피의자 수는 약 556명으로 추정된다. 두 인원수를 비교할 경우, 성폭력 범죄 피의자 수에 견줘 성폭력 무고죄로 기소된 피의자 수는 0.78% 수준이다. 성폭력 무고 중 가해자에 의한 고소 사건은 대부분 불기소(84.1%)되는 것 역시 “가해자의 무고 고소가 남발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고 김 부연구위원은 지적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성폭력 범죄가 ‘혐의없음’을 이유로 기소되지 않는 비율이 54.5%로 전체 범죄 평균(29.1%)에 견줘 높은 수준으로 이는 성폭력 무고가 많다는 주장이 나오는 근거가 된다”면서도 “성폭력 범죄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성폭력 범죄의 경우 당사자 진술이 주요 증거인 데다 목격자가 없는 경우가 많아 입증이 어려운 범죄란 특성을 갖고 있다. 또 현행법은 성폭력을 ‘상대의 동의 여부’가 아닌 ‘폭행이나 협박’을 기준으로 삼다 보니, 원치 않는 성관계여도 ‘범죄 행위’로는 포섭되지 않기도 한다. 재판부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이나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편견과 의심도 영향을 미친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인 박은정 검사는 “수사 실무상 성폭력 피해자를 무고로 인지하기 위하여는 단순히 성폭력 피의자를 기소할 수 없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나아가 피해자의 피해 사실 진술에 명백한 허위와 객관적 사실에 반하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성폭력 무고와 관련해 의미 있는 판례도 나오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11일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자가 성폭행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한 사실에 대하여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되거나 무죄 판결이 선고된 경우 그 자체를 무고로 하였다는 적극적인 근거로 삼아 신고 내용을 허위로 단정하여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지난해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성폭력 사건 종결 시까지 성폭력 무고 사건의 진행을 중단”하도록 권고했고, 실제로 대검찰청은 이에 따라 성폭력 수사 매뉴얼을 개정하기도 했다. 박은정 검사는 이를 두고 일각에서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무죄 추정 원칙에 반하여 위헌이다”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에 대해 “법리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피의자에 대한 무죄 추정 원칙에는 피의자가 피해자를 무고로 고소할 권리는 포함되지 않는 데다, 모든 무고 사건에서 원 사건의 수사가 종결돼야 무고 판단이 가능하므로 무고 수사 중단 지침을 두는 것은 합리적이라는 설명이다. 박 검사는 다만 “한국의 성폭력 법령체계에서 피해자가 성폭력이라고 주장하는 지점과 법률이 성폭력이라고 인정하는 간극에 대한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며 “성폭력 수사와 재판과정을 관통하는 ‘피해자 중심주의’는 성폭력 무고 수사과정에서도 여전히 적용돼야 할 원칙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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