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왼쪽 둘째)이 25일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은 뒤 문재인 대통령 등과 환담하고 있다. 윤 총장 오른쪽은 부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 [이충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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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 풍요와 희망을 선사해야 할 시장기구가 경제적 강자의 농단에 의해 건강과 활력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 헌법체제의 본질입니다."
윤석열 검찰총장(59·사법연수원 23기)이 25일 첫 취임사부터 강한 메시지를 시장에 던졌다. 취임사를 통해 "공정한 경쟁 확립과 이를 무너뜨리는 범죄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강조한 게 그 증거다.
2017년 5월부터 2년여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하며 국가정보원, 기무사령부, 직전 사법부 등을 대상으로 적폐수사에 주력했다면, '문재인정부 집권 후반기'와 겹치는 향후 2년 임기 동안 대기업들의 불법행위를 적폐수사 대상으로 삼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검찰 수장이 취임 첫날부터 기업들의 불법 행위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 의지를 천명하면서 재계는 윤 총장의 일거수일투족에 긴장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르면 26일 단행될 검찰 고위 인사에도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서울중앙지검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등 현재 진행 중인 수사부터 강도를 더욱 높이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날 윤 총장은 취임사에서 "검찰이 형사 법집행을 하는 데 있어 우선적 가치는 공정한 경쟁질서 확립"이라고 밝혔다. 대검 대변인실은 취임사와 함께 설명자료를 이례적으로 배포해 취임사 발언의 의미를 자세히 설명했다. 총장 취임사에 대한 설명자료 배포는 처음이다. 이 자료의 제일 앞부분은 윤 총장이 공정경쟁을 강조한 배경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대검은 이 자료를 통해 "윤 총장이 '시장경제와 가격기구, 자유로운 기업 활동이 인류의 번영과 행복을 증진해왔고, 이는 역사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장경제의 성공조건으로서 '공정한 경쟁'이라는 룰(규칙)을 매우 중시하고, '시장의 룰이 깨지면 모든 것이 다 무너진다, 룰을 위반하는 반칙행위는 묵과할 수 없다'는 투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대검은 "윤 총장은 특히 시카고학파인 밀턴 프리드먼과 오스트리아학파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사상에 깊이 공감하고 있고, 자유시장경제와 형사 법집행의 문제에 관해 고민해 왔다"는 학문적 근거까지 덧붙였다. 윤 총장은 한국경제학회 회장을 지낸 부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의 영향을 받아 시카고학파가 추구한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대검은 또 "(윤 총장은) 그간 많은 대형 경제사건 수사를 담당하면서 공정한 경쟁의 룰을 깨뜨리는 우월적 지위의 남용, 시장교란행위에 엄정 대응해왔다"고 밝혔다.
윤 총장이 2006년 현대·기아차 횡령 배임 수사 등을 통해 이 같은 철학이 확고해졌음을 강조한 것이다. 당시 수사는 윤 총장이 특별수사 전문가로 인정받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다만 "경제적 강자의 반칙과 농단에는 강력 대응하되 중소기업의 사소한 불법까지 수사권을 발동할 것인지는 '정부의 과도한 개입 자제' '비례와 균형' 관점에서 헌법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소신을 밝혀왔다"고 설명했다.
또 윤 총장은 '국민과 함께 하는 검찰'을 향후 임기 동안의 검찰 비전으로 제시했다. 윤 총장은 "형사 법집행 권한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으로서 법집행의 범위와 방식, 지향점 모두 국민을 위하고 보호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헌법정신을 가슴에 새기고, 국민의 말씀을 경청하며, 국민의 사정을 살피고, 국민의 생각에 공감하는 '국민과 함께하는' 자세로 법집행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자료를 통해 "검찰의 수권 근거, 목적이 모두 헌법에서 나오므로 어떻게 일할 것인지도 헌법에서 나온다는 의미에서 '헌법 정신을 실천하는 검찰'이 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을 더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서는 "형사법집행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가장 강력한 공권력 권한이므로 오로지 헌법과 법에 따라 국민을 위해서만 쓰여야 하고, 사익이나 특정세력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후보자 지명 이후부터 검찰의 정치적 중립 수호와 하명 수사 논란이 계속된다는 점에서 이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윤 총장을 "우리 윤 총장"이라고 부르며 '권력형 비리'에 대해 엄정한 자세로 처리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그런 자세는 살아 있는 권력에도 같아야 하고, 그래야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 국민이 체감하게 되고 권력 부패도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아군, 적군을 가리지 않고 엄정하게 나서라는 문 대통령의 주문은 윤 총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책임감 있는 자세로 임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해석된다.
윤 총장은 퇴근길에 만난 취재진이 수사권 조정에 대해 취임사에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묻자 "나중에 차차"라며 말을 아꼈다.
[박용범 기자 / 채종원 기자 / 성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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