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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이슈 윤석열 검찰총장

    '윤석열의 1호 지시'는 특별공판팀 설치…"도쿄지검 ‘특별공판부’서 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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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尹 총장의 1호 지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특별공판팀 구성"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팀장으로 검사 20여 명 규모 될 듯
    법조계 "‘정치적 논란’ 직권남용죄 기준 마련하는 기회돼야"

    조선일보

    지난 25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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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중앙지검에 특별공판팀을 설치합시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1호 지시다. 치열한 법리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 대한 공소 유지를 담당할 특별공판팀을 꾸리라는 것. 수사한 검사들이 기소 후 직접 공판에 참여해 공소 유지를 하며 유죄를 입증하라는 취지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별공판팀은 검찰 중간 간부 인사를 마친 다음달쯤 설치될 예정이다. 신봉수 특수1부장이 팀장으로 거론된다. 신 부장은 차장급 승진 대상자로도 거론되고 있어, 승진에 성공할 경우 차장급 특별공판팀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수사했던 검사 20여 명도 인사 개편 때 소속을 옮기지 않고 특별공판팀에서 재판에 투입될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태스크포스(TF)로 꾸릴지, 검사를 어떻게 차출할지 등 구체적인 직제 개편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윤 총장의 취임 후 첫 실험인 특별공판팀은 일본 도쿄지검의 특별공판부에서 착안했을 것이라는 게 검찰 내부의 설명이다.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윤 총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 대한 공소 유지를 강조하며 도쿄지검 사례를 자주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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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도쿄 지요다구 중앙합동청사 제6호관에 있는 일본 검찰청 건물.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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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지검 특수부’ 명성 뒤엔 특별공판부 있었다
    도쿄지검은 1992년 일본 최대의 정치 스캔들인 ‘리크루트 사건’ 공소 유지를 위해 ‘특별공판부’를 처음 설치했다. 이 사건은 취업 정보 제공업체인 리크루트가 로비를 위해 계열사의 비상장 주식을 정·관·재계 40여 명에게 뿌린 사건으로, 1988년 아사히신문 지방 기자의 특종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당시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가 연루된 사실을 밝혀냈고, 이듬해 다케시타 총리는 사퇴했다. 당시 뇌물을 받은 후지나미 다카오 관방장관은 1999년 유죄가 확정됐다. 사건이 불거진 지 11년 만이었다.

    이 사건 재판은 직무 관련성이 있느냐가 쟁점이 됐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수많은 증인이 불려 나온 가운데 치열한 법리 공방이 벌어졌다. 검찰 입장에선 직접 수사했던 검사가 아니고선 유죄 입증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수사했던 검사들을 특별공판부에 보내 공소 유지와 유죄 입증에 나선 것이다.

    ‘거악(巨惡)을 잠들지 못하게 한다’는 도쿄지검 특수부의 명성 뒤에 특별공판부가 있었던 셈이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1976년 미국 군수업체 록히드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구속하며 이름을 날렸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국민신뢰도 1위 기관이었고, 기소한 사건의 유죄율은 99%에 달했다. 검찰 내에서도 검사 40명에 검찰 사무관 80여 명이 배치돼 사실상 독립 외청으로 존재했고, 특수부장은 도쿄지검장의 지휘에서 벗어나 있을만큼 영향력이 막강했다.

    법조계에서는 "우리나라와 다른 일본의 재판 절차에선 특별공판부 역할이 더 중요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일본은 특신상태(特信狀態), 즉 수사기관에서 피의자의 진술이 믿을만한 상태에서 이뤄졌는지를 우리보다 훨씬 까다롭게 따진다는 것이다. 재판에서 진술을 번복할 경우 검찰에서 조작이나 강압은 없었는지를 꼼꼼하게 살펴보기 때문에 보통 재판 기간이 10~20년씩 길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 "길고 치밀하게 진행되는 재판에서는 직접 수사한 검사가 아니면 피고인 측 논리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실제 2000년 이후 대검 중앙수사부(2013년 폐지)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등이 구속 기소한 권력형 비리 사건 피고인의 무죄율은 10.1%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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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는 모습. /남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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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尹 총장, 논란 많은 ‘직권남용’ 기준 세워보자는 것"
    우리 검찰에서도 특정 사건을 위한 특별공판부 실험이 실행된 바 있다. 이 역시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취임하면서다. 윤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 취임 직후인 2017년 8월 특수4부에 검사 10여 명을 배치해 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사건의 공소 유지를 맡겼다. 이른바 ‘특별공판부’였다. 그러나 현재는 대부분 검사가 전출됐고, 김창진 부장검사 혼자 남아 박 전 대통령의 상고심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윤 총장은 왜 취임하자마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의 특별공판팀 구성을 지시했을까.

    이 사건 재판은 공전(公轉)을 거듭하고 있는 데다 기소된 전·현직 고위 법관들이 하나같이 "검찰이 무리한 법 적용으로, 무리한 기소를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경우, 재판 도중 재판부 기피신청을 해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자 항고까지 해서 재판이 멈춰있는 상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지난 5월 재판에서 "법률가가 쓴 문서라기보다 소설가가 미숙한 법률 자문을 받아서 한 편의 소설을 쓴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또 이 사건의 주요 혐의가 ‘직권남용죄’라는 것도 검찰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직권남용죄는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은 데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따로 판단한 바 없다. 공직자의 직무범위와 권한이 모호해 과거에는 사실상 처벌하지 않는 범죄로 여겨졌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검찰은 이른바 ‘적폐청산’ 사건의 관련자 대부분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경우 기소된 범죄 사실 47개 중 41개가 직권남용 혐의다. 그는 후배 법관들에게 위법한 일을 시키지 않았다며 기소된 혐의 모두를 부인하고 있다.

    윤 총장이 이 사건 재판에 특별공판팀을 설치하는 것은 직권남용죄에 대한 해석 기준을 제시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게 검찰 안팎의 해석이다. 검찰 한 간부는 "(윤 총장은) 판사들이 기소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재판을 직권남용 범죄에 대한 기준을 논의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면서 "재판부와 검찰, 피고인 모두가 법률 전문가여서 발전적인 법 해석과 기준이 나올 수 있도록 해보자는 취지로 보인다"고 했다. 검사 출신 한 로스쿨 교수는 "사건을 직접 수사한 검사들이 재판에 참여하면 유죄를 받아내는 것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며 "특수부의 주요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이 직접 공판에 참여한 경우는 많지만, 특별공판팀을 만들어 전면적으로 재판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라고 했다.

    [홍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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