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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난임치료 34년, 1만명에 생명 준 '삼신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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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인터뷰] 최동희 분당차병원 난임센터 교수

"결혼 15년 만에 아이를 만날 수 있게 해주신 교수님이 '삼신할머니' 같더라고요." 난임 치료 끝에 최근 건강한 아들을 낳은 40대 엄마가 최동희(62) 분당차병원 난임센터 교수에게 보낸 손 편지다.

조선일보

지난 6일 경기도 분당차병원에서 최동희 교수가 난임 여성이 보내온 편지를 펼쳐 보이고 있다. /장련성 기자


최 교수는 1985년부터 34년간 차병원에서 난임 치료를 해온 이 분야 전문가다. 최 교수 도움으로 세상 빛을 본 신생아가 최근 1만명을 넘겼다. 차병원 측은 "난임 시술 건수와 최근 48% 수준까지 올라간 시술 성공률을 함께 감안할 때 올해 1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고 했다. 난임 치료 후 임신에 성공하면 분만 등 나머지 절차는 다른 의사들이 맡고, 차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에서 출산하는 경우도 많아 더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기 어렵다고 했다.

최 교수가 처음부터 산부인과 의사를 꿈꾼 건 아니었다. 최 교수는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1981년 의사국가고시에서 수석을 차지했다. 그런데도 '여자 전공의는 안 받겠다'는 과가 많아 얼마 안 되는 선택지 중 산부인과를 골랐다.

최 교수는 "난임 치료를 받는 여성들은 유산과 사산을 반복하면서도 아이 갖기를 포기하지 못한다"며 "'저렇게 힘들면 그만둘 만도 한데' 싶은 환자들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쓴다"고 했다.

2017년 자궁 내 질환 때문에 어렵게 임신하고도 여러 차례 배 속 아이를 잃은 환자가 다시 임신했다. 이 환자는 조산을 막기 위해 출산 전 3개월간 병상에 누워 버텼다. 출산에 성공한 환자가 아이를 안고 최 교수 진료실에 와서 "너무 오래 누워만 있었더니 걸음을 잘 못 걷겠다"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작년 가을엔 43세 여성이 매달 배란되는 난자를 하나씩 모아 결국 임신에 성공했다. 난소 기능이 '폐경' 수준에 가까워 난자 추출 자체가 어려웠는데 극적으로 아이가 생긴 것이다.

최 교수는 "과거에는 '아이가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으냐'고 시부모가 압박해 병원에 오는 환자가 많았다면, 요즘은 부부가 아이를 원해 난임 치료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재혼한 뒤 새 배우자와 아이를 갖고 싶다며 병원을 찾는 40~50대 여성도 꽤 있다.

최 교수 진료실에는 '꼬마 손님'도 자주 온다. 최 교수 도움으로 태어난 세 살짜리 꼬마가 3년 전 엄마 따라 병원에 왔다가 최 교수를 보더니 "함머니(할머니)다, 함머니" 하고 좋아했다. 엄마가 최 교수 도움으로 둘째도 낳으려고 병원에 오면서 데려온 아이였다. 엄마는 당황해서 "할머니가 아니고 의사 선생님"이라고 아이를 나무랐지만 최 교수는 "듣기 좋다"고 웃었다.

최 교수는 1998년 난자·배아 냉동 보관 기술을 다른 차병원 의료진과 공동으로 개발했다. 최 교수는 "당시만 해도 '젊은 암 환자들이 나중에 임신을 시도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결혼·출산을 늦추는 여성들을 돕는 기술이 됐다"고 했다. 그만큼 결혼이 늦어졌을 뿐 아니라 결혼하고도 '2세 계획'을 미뤄두는 사람이 늘어났다.

최근 마흔을 앞둔 대기업 여성 부장이 난임으로 최 교수를 찾아와 "결혼할 때 시댁 어른들과 '부장이 되면 임신하겠다'고 합의했다"면서 "부장으로 승진하고 바로 병원에 왔다"고 했다.

최 교수는 "저도 그 마음 안다"고 했다. 최 교수도 두 딸을 키운 '워킹맘'이다. 여자 의사에 대한 편견이 생겨 후배들이 손해를 볼까 출산하고 한 달 만에 병원으로 돌아오며 악착같이 버텼다.

"직장 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요즘 여성들이 선뜻 출산을 선택하기 어려운 걸 이해해요. 요즘엔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기도 쉽지 않아졌잖아요. 아이 낳고 기르기 힘들죠. 하지만 두 딸이 낳은 손주를 보면 아이는 가족에게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선물' 같아요. 저출산이 심각하다고 모든 부부에게 아이 낳기를 강요할 순 없지만, 아이를 희망하는 엄마들에겐 꼭 귀여운 아기를 안게 해주고 싶어요."

[홍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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