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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세상읽기] 피해자들의 기억을 기억하며 / 류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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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류영재
춘천지방법원 판사


오빠랑 아빠가 한 것 같아요.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피해자에게 재판부가 성폭력에 대한 합의를 누가 한 것인지 묻자 피해자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답변했다. 가해자로부터 잘못했다고 사과를 받았어요? … 아니요. 오빠나 아빠가 합의할 때 증인에게 허락을 구하던가요? 피해자는 이 질문에 한참 동안 대답을 하지 않았다. 법정엔 침묵이 흘렀고, 피해자는 난감하다는 듯이 손가락을 마주 쥐었다. 증인은 피고인을 용서하고 싶어요? 처벌하지 않았으면 좋겠나요? 피해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자리에서는 오빠나 아빠를 신경쓰지 않고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아요. 재판부가 부연설명을 하자 그제야 피해자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터져 나오는 울음 가운데 간신히 피해자는 말했다. “처벌했으면 좋겠어요.”

미성년 피해자 대상 범죄 재판에서 위와 같은 상황은 종종 발생한다. 범죄에 대한 형사사법절차가 진행되면서 피해자는 범죄 입증을 위한 증인의 지위로 전락하게 되고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가 재판 절차에 반영되지 못한다. 피해의 진정한 회복과 정의 실현을 가해자에 대한 처벌 및 손해 배상으로 갈음하다 보니 정작 피해자는 주변인이 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아닌 판사에게 반성과 사죄를 표한다. 금전적 합의가 이루어지면 그것으로 모든 피해가 회복되고 피해자의 정의가 실현되는 양 다룬다. 미성년 피해자의 경우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가족들이 합의를 하고 가해자는 그 합의를 근거로 피해자의 처벌 불원 의사가 의제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과정 어디에서도 가해자의 피해자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반성, 그로 인한 피해자의 피해 회복, 자기 치유 및 용서의 단계를 찾아보기 힘들다. 한술 더 떠 가해자는 합의를 이유로 피해자의 입을 막고 가해와 피해의 역사를 지우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권 분야에서 개인이 국제법의 권리주체로 등장하면서 기존의 국가 주권 중심의 국제법 질서는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국가가 국제법상의 강행규범을 위반하여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면 피해자는 가해국에 대한 국제법상 책임을 물을 권리를 갖게 되고 그 권리는 피해자 자국의 외교적 보호권과 구분되는 별개의 권리라는 점이 인정됐다. 이런 인권침해 피해자의 권리를 정리한 것이 2005년 유엔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피해자 권리 기본원칙’이다.

피해자 권리 기본원칙에 규정된 피해자의 권리, 즉 정의와 배상과 진실에 관한 권리에는 피해 회복 및 배상에 관한 권리 이외에도 ①진실을 완전히 공적으로 공개하고 ②명예회복을 위한 공적 선언 및 ③사실과 책임인정을 포함한 공적 사과를 받으며 ④피해에 대한 정확한 사실 기록을 남길 권리와 ⑤재발방지 대책 수립을 요구할 권리가 포함돼 있다.(양현아, ‘2015년 한일외교장관의 위안부 문제 합의에서 피해자는 어디에 있(었)나: 그 내용과 절차’/이주영·백범석, ‘국제인권법상 피해자의 권리와 피해자 중심적 접근’)

최근 개봉한 영화 <주전장>과 <김복동>에는 일본에 의해 전시 중 군 성노예로 관리되며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기록돼 있다.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피해를 기억하고 또 기억하며, 진실을 알리고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내지 2015년 ‘위안부’ 합의로 일본군 성노예로 인한 인권침해 사안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피해자들의 진실 공개·기록·보존 및 확산의 노력을 협정 위반으로 간주하며 직간접적으로 방해한다. 그러나 인권침해 피해자는 금전적 배상·보상을 받을 권리만을 갖지 않는다. 진실을 공개하고 공적 사죄를 받으며 기록을 남기고 재발방지를 요구할 권리를 별도로 갖는다. 이 권리들은 금전적 배상·보상으로 갈음할 수 없으며, 국가 간 협정으로 제한할 수도 없다.

앞에서 언급한 재판에 증인으로 선 피해자는 문제해결의 중심에 서지 못했다. 그 결과 가해자로부터 진정한 사죄를 받지 못했으며 상처를 치유할 기회도, 용서할 기회도 갖지 못했다. 당시 그 소녀가 돈을 받은 가족에 대한 생각과 아물지 않은 자신의 상처 속에서 갈등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결국 터져 나온 울음 또한 잊히지 않는다. 나는 그 울음을 기억하며,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이 중심에 서서 진실과 정의를 취할 수 있도록 그들과 연대하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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