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망과 양면성이라는 속성이 서예지를 만나 격정적인 진폭을 그렸다. ‘암전’의 서예지는 그 어느 때보다 강인하고 치열하게 연기한다.
영화 ‘암전’(감독 김진원)은 신인감독이 상영금지 된 공포영화의 실체를 찾아가며 마주한 기이한 사건을 그린다. 서예지는 모두에게 인정받을 만한 입봉작을 내놔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신인감독 박미정을 연기한다. 아무도 봐선 안 되는 공포영화의 감독 김재현 역은 진선규가 맡았다.
서예지가 만들어낸 미정은 집착과 욕망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다. 어쩌면 ‘성공’이라는 타이틀과 그로 인한 압박은 구색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미정은 단순한 광기로 치부되기에는 사연 많은 과거를 안고 있고, 서예지는 그런 미정의 얼굴을 시시각각 바꿔가며 마음껏 재주 부린다.
영화 ‘암전’ 배우 서예지 사진=천정환 기자 |
미정은 자신의 아픔을 잊게 해준 공포에 집착한다. 언뜻 듣기에도 추상적인 이 감정을 서예지는 영리하게 풀어냈다. 격정적으로 치미는 캐릭터의 감정에 눌리기보다 그 감정을 이리저리 굴려서 복합적인 감정선을 가진 인물로 변모시키는 데서 오는 서늘함이 ‘암전’ 속 귀신보다 무서울 정도다. 감정의 진폭을 능수능란하게, 능동적으로 다뤄낸 서예지의 연기는 발군이다.
86분이라는 러닝타임은 짧다면 짧을 수 있지만 영화를 끌고 가야 하는 배우로서는 부담감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거의 모든 장면과 씬에 등장하는 서예지도 마찬가지다. 다행히도 서예지의 얼굴이 86분 내내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데도 보는 이의 입장에서 거부감이나 어색함은 없다. 서예지의 무표정 속에서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이 엿보이고 적당히 우울하며, 그 특유의 저음 목소리가 영화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덕분이다.
감정선을 촘촘히 그려낸 한편 액션도 시선을 붙든다. 액션보다는 살기 위한 발버둥에 가깝지만, 공포에 지지 않고 어떻게든 이겨내려는 미정의 몸부림은 곧 서예지의 사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sunset@mk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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