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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화폐의 네트워크 외부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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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경제학 시즌2-11] 민수 씨는 가족 여행을 떠나기 전 깜빡하고 휴대전화 충전기를 챙기지 않았다. 평소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흔한 물건보다는 독특한 것을 좋아하는 민수 씨는 휴대전화 역시 국내에서는 같은 기종을 찾기 어려운 유럽산을 쓰고 있었다. 민수 씨는 의도치 않게 휴가 동안 오롯이 가족들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민수 씨 아내는 "예년과 달리 휴가 동안 남편과 대화를 많이 할 수 있어 좋았다"며 칭찬을 했다. 그러나 정작 민수 씨는 속으로 '이제 다른 물건은 몰라도 휴대전화만큼은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평범한 기종을 선택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민수 씨의 휴대전화 사례처럼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상품을 많이 사용할수록 내가 가지고 있는 상품의 효용 또는 가치가 상승하는 현상을 '네트워크 외부효과(Network Effect)'라고 한다. 외국어 공부를 할 때 기왕이면 사용 인구가 많은 언어를 선택하거나, 가능하면 이용자가 많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택하는 현상이 바로 네크워크 외부효과가 실생활에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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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네트워크 외부효과가 현저하게 나타나는 산업이나 상품 시장에서는 특정 상품의 이용자가 일정 수준 이상, 시장 전체의 절반을 넘어서면 나머지 사용자들도 자연스럽게 해당 상품이나 시장으로 몰리는 현상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네트워크 외부효과는 앞서 예로 들었던 휴대전화, SNS와 같은 첨단 정보기술(IT) 산업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화폐 제도'에서도 찾을 수 있다. 네트워크 외부효과는 화폐의 3대 기능인 교환, 가치척도, 가치저장 기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가진 화폐와 같은 종류의 화폐를 여러 사람들이 많은 시장에서 두루 사용할수록 내가 가진 화폐의 가치가 상승한다. 많은 사람이 보유하고 있어 다양한 거래에서 빈번하게 사용할수록 해당 화폐의 교환 기능은 향상된다. 또 화폐의 교환 기능이 강화돼 같은 화폐를 사용자하는 이용자들의 절대적인 숫자가 확보되면 화폐 가치가 특정 경제 사건이나 소수의 의도에 따라 쉽게 변동하지 않게 돼 화페의 가치저장 기능과 가치척도 기능이 함께 강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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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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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네트워크 외부효과와 화폐의 3대 기능 간 관계는 가상화폐 미래를 이해하고 전망하는 데 훌륭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경기 부양을 위해 전통적인 통화정책 기조와 달리 대량의 통화를 시중에 공급했다. 확장적 통화정책이 급격히 진행되자 화폐가치가 하락할 가능성이 증가했고, 현금성 금융 자산을 보유한 투자자들의 불만이 커졌다. 이 같은 시장 분위기를 등에 업고 가상화폐는 발행할 수 있는 통화량를 시스템으로 엄격하게 한정하고, 자금 거래의 익명성을 보장해줘 투자들의 주목을 받았고, 가치가 급격히 상승했다. 2016년 이후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요 가상화폐 가격이 드라마틱하게 상승하자 다양한 가상화폐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2018년을 기준으로 거래되고 있는 가상화폐 종류는 1600개가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많은 가상화폐 가운데 어떤 화폐가 끝까지 시장에서 살아남아 그 가치가 상승할 것인지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가상화폐 역시 기존의 법정화폐와 같이 기본적으로는 화폐의 3대 기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네트워크 외부효과로 인해 결국 소수의 가상화폐만 시장에서 살아남게 되며, 그것들이 기축통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예측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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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이후 변동폭이 크긴 했지만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 주요 가상화폐들 가치는 크게 상승했다. 그러나 가상화폐를 실제로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들의 절대적인 숫자나 실물 거래에서 결제로 수단으로 활용되는 사례는 달러화나 유로화 같은 전통적인 통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직은 미흡하다.

그런데 최근 이런 가상화폐 시장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세계 최대 SNS 공급 업체인 페이스북이 지난 6월 가상화폐를 발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페이스북이 발행하려는 가상화폐는 별자리 가운데 천칭자리에서 이름을 빌려와 '리브라(Libra)'로 부른다. 페이스북의 리브라는 단순히 대형 IT 업체가 기획한 가상화폐이기 때문에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가상화폐들이 갖고 있던 구조적인 문제들을 영리하게 보완했기 때문에 정부, 기업, 금융 투자자 할 것 없이 많은 이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 현재 페이스북은 20억명이 넘는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어 명실공히 SNS 산업에서 덩치가 가장 큰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페이스북의 이용자 가운데 10%만 가상화폐인 리브라를 사용해도 앞에서 언급한 네트워크 외부효과가 충분히 나타날 수 있어 글로벌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을 쉽게 할 수 있다. 이뿐만아니라 페이스북은 기존 가상화폐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리브라 리저브(The Libra Reserve)라는 제도를 마련했다. 기존 가상화폐들은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신뢰와 특정 가상화폐가 미래에 주요 결제수단으로 시장에서 자리 잡게 되면 막대한 투자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미끼로 이용자들을 유인했다. 그러나 기존 가상화폐들은 심각한 기술적 문제가 발생하거나 나쁜 소문으로 시장에서 외면당하면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화폐가치가 '0'으로 수렴하게 된다. 반면 리브라는 최악의 경우 페이스북이라는 발행 주체가 파산해도 안정적으로 그 가치를 담보할 수 있는 리브라 리저브라는 지급준비금 제도를 마련했다. 이는 18~19세기 법정화폐가 민간에서 절대적인 신뢰를 얻지 못하던 시절 중앙은행들이 시행했던 금본위제도와 유사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금본위제란 정부가 인쇄한 종이 화폐는 신뢰할 수 없지만, 달러화와 같은 법정화폐를 소유주가 원하면 정부가 금으로 교환해줄 것을 보증하겠다는 것이다. 금본위제가 시행되자 사람들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법정화폐를 신뢰해 그것을 거래 수단이나 가치저장 수단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페이스북 역시 이처럼 자사에서 발행하는 리브라에 대해 달러나 유로화 같은 주요 기축통화로 교환해줄 것을 약속했다. 이는 가상화폐의 발행 주체인 페이스북이 리브라 리저브로 확보한 주요국의 통화량만큼만 가상화폐를 발행하겠다는 약속으로도 해석할 수 있어 시장의 신뢰는 더 커질 것이다. 따라서 리브라에 투자하고 이것을 결제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페이스북의 강력한 기술과 네트워크 외부효과로 인한 영향력에 대한 기대뿐만 아니라 리브라 리저브 제도로 인한 안전성까지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이와 같은 강점으로 페이스북은 리브라가 국가신용이 바닥까지 떨어져 사실상 은행권을 발행할 수 없는 베네수엘라나 짐바브웨와 같은 개도국에서는 법정화폐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야심 찬 기대를 하고 있다. 또 정부 신용도가 앞서 말한 두 국가처럼 극단적으로 낮지는 않지만 디지털 금융 시스템에 대한 개발과 보급이 미흡한 아프리카와 남미 지역에서는 페이스북이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준비해온 편리하고 안정적인 가상화폐와 금융 상품들이 시장을 쉽게 장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병일 경제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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