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자 개인전 '인연의 향연'에 전시된 금속공예 작품들. 현대화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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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행진, 가을의 산책, 새벽의 메디슨 강…. 지난 60년 세월 동안 계절이 바뀌고, 풍경이 달라질 때마다 마주하는 순간들을 어느 것 하나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매일같이 은과 연철, 동을 두드리고 주물러 깎으며 조각으로 남겼다. 스쳐가는 모든 인연을 소중하게 여긴 덕에 그의 조각 곳곳엔 사람들의 이야기가 꼭 빠지지 않는다. 그릇이나 주전자, 거울 같은 일상 사물도 그의 손을 거치면 언제나 특별한 인연을 떠올리게 한다. 63년 전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계 금속공예가 김홍자(82·사진)의 이야기다.
김홍자의 개인전 '인연의 향연'이 오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현대화랑에서 열린다. 1994년 갤러리현대 개인전 이후 30년 만에 현대화랑과 함께 개최하는 개인전으로, 1990년대 작품부터 근작까지 다양한 크기와 용도를 가진 금속공예 작품을 한자리에 펼친다.
김 작가는 "자연환경이든 사람들이든 일상적으로 지나치기 쉬운 것들에서 느끼는 순간적인 인상을 소중히 여겨 금속 재료를 통해 이를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언젠가 인상 깊게 봤던 대나무를 인물의 표면에 금으로 새긴 '대부'(2022), 여러 사람이 모여 머리 위 무지개를 보고 있는 듯한 '무지개 풍경 Ⅶ'(2012) 등이 대표적이다. 같은 메디슨 강을 표현한 작품도 청명한 '새벽의 메디슨 강'(1984)과 묵직한 고요함이 느껴지는 '겨울의 메디슨 강'(1986)은 사뭇 다르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섬유예술(자수) 전공으로 이화여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61년 부모님을 따라 미국 하와이로 이주했다. 이후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블루밍턴 인디애나대에서 섬유·금속공예를 배운 뒤 동 대학원에서 금속공예 석사학위를 받으며 작업의 깊이를 쌓아나갔다. 1973년부터는 몽고메리칼리지에서 금속예술 주임교수로 활동하며 43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오랜 시간 한국을 떠나 있었지만 그는 늘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토대로 작업에 동아시아의 미학과 서구 모더니즘을 모두 담아내기 위해 연구했다. 이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은으로 만든 조각 '동과 서의 만남'(2000)이다. 서양 기법으로 만든 계단 형태의 받침대 위에 한국 전통 기법으로 만든 둥근 은 그릇을 올렸다. 2019년에는 한국 전통의 금속공예 기법인 포목상감, 금부, 옻칠, 칠보 등을 집대성한 영문 서적 'Korean Metal Art'를 출간하기도 했다. 김 작가는 "한국적인 것, 나의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이끌어가는 게 내 작업"이라고 밝혔다.
'돌아가는 당신과 나'(2022)는 동양 철학의 윤회 개념을 연상시킨다. 서로 애틋해 보이는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있지만 한 사람은 몇 계단 위에 서 있고, 두 사람 사이엔 순환을 상징하는 원이 보인다. 삶과 죽음, 이별과 만남처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인간 관계와 그 유한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80세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그는 "나는 작품을 해야 빛나는 사람"이라며 "낯선 미국 땅에서 혼란스러웠을 때도, 나이 들어 세월의 야속함을 느낄 때도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한 건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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