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전시관 찾은 문 대통령
독립군 발싸개 등 학생들과 관람
흰색 두루마기 차림 행사장
입장 27분 이어진 경축사 45일간 준비
정확한 전달 위해 일본어 번역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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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된 연설이었지만 2019년 광복절을 맞아 선택한 공간은 의미심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에서 광복절 경축식을 마친 뒤 전시관으로 향했다. 전투화는커녕 천으로 만든 발싸개를 신고 눈 덮인 백두산 자락을 뛰어다녔던 독립군, 3·1운동 만세 함성이 울려퍼지기 2년 전 중국 상하이에서 작성된 독립운동가들의 선언문, 3·1운동 당시 거리에 뿌려졌던 독립선언서 등 일제와 타협하지 않고 피 흘리며 싸웠던 이들의 자취가 생생히 남겨진 곳이다. 한-일 관계가 더없이 민감한 상황에서 5700자의 경축사에 담을 수 없었던, 일본을 겨냥한 ‘무언의 대응’이었다. 지난해 광복절 행사는 미군 기지가 떠난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했다.
3·1운동을 주제로 한 3전시관에 처음 들른 문 대통령은 학예연구사로부터 ‘대동단결선언서’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2년 전 2017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 대통령은 1917년 7월 상하이에서 14명의 독립운동가가 발표한 ‘대동단결선언’의 국민주권 이념이 독립운동의 이념이 됐으며, 3·1운동과 상하이 임시정부로 이어졌음을 역설한 바 있다. 학예연구사가 대동단결선언서를 설명하면서 “8월29일(1910년 일제에 의해 강제 합병된 날)은 나라를 빼앗긴 날이 아니라 우리 국민주권이 시작된 날이라고 독립운동가들이 당당히 선언하고, 그 정신을 토대로 임시정부가 수립될 수 있었다는 사상적 토대를 보여주는 의미있는 자료”라고 말하자, 문 대통령은 “우리가 신민으로부터 국민으로 바뀌는 순간으로 적극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공감을 나타냈다.
신흥무관학교 관련 자료가 모여 있는 5전시관에서 문 대통령의 눈길을 끈 것은 대전자령전투 당시 독립군이 헝겊과 짚으로 묶어 신발 대신 사용했던 발싸개였다. 7전시관에선 일본인 사토 마사오가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독립선언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사토 마사오의 조부 요시헤이는 1919년 평양에서 그릇가게를 하다가 3·1운동 당시 거리에 뿌려진 독립선언서를 주웠고, 아들인 도시오가 1954년 아버지 유품에서 이를 발견했으며, 손자인 사토 마사오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고향으로 가는 게 맞다’며 기증했다는 내용이다.
전시관 관람에 앞서 문 대통령은 흰색 두루마기 차림으로 행사장에 입장해 27분 동안 단호한 어조로 경축사를 했다. 1800여명의 참석자들은 경축사가 이어지는 동안 20번의 박수를 보냈다. 앞서 김원웅 광복회장이 기념사를 하면서 “(일본의 조처에) 의연하게 잘 대처하고 있는 문 대통령께 격려의 힘찬 박수를 부탁드린다”고 말하자 대부분이 박수를 치며 호응했지만,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박수를 치지 않고 손에 쥔 종이에 무언가를 적는 모습이었다.
이번 경축사 준비엔 6주 정도가 걸렸으며, 막판까지도 수정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간소화 우대국) 배제, 이에 대한 정부 대응 조처 등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면서, 일본을 향해 어떤 수위와 내용으로 메시지를 전할지 고민이 깊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경축사 영어 번역본과 함께 이례적으로 일본어 번역본도 제작했다. 한-일 관계의 민감함을 고려할 때 메시지의 정확한 전달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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