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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 (수)

'제2 박막례' 돼볼까...유튜버로 인생 이모작 꿈꾸는 5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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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는 더이상 1020 세대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지난 13일 오후 5시 서울 강동구 암사동의 한 ‘유튜브 크리에이터’ 학원. 기본반에는 50~60대로 보이는 중노년층 4명이 빨간색 유튜브 로고가 띄워진 스크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 학원에서는 2주 간의 교육을 통해 1인 미디어 방송장비 사용법과 주제 선정·동영상 편집 등 ‘유튜버(유튜브에서 방송을 하는 사람)가 되는 방법’을 가르친다.

수업이 끌나갈 무렵, 강사가 ‘프로 유튜버로 거듭나는 비법’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강의실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박막례’(박막례 할머니·구독자수 101만명) ‘01seeTV(김영원 할머니·32만명) ‘성호육묘장’(안성덕 할아버지·17만명) 등 수십만명 이상의 구독자를 가진 유명 유튜버들이 거론될 때면, 수강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수강생은 "젊은 사람들이 BTS를 좋아하듯, 우리한테는 박막례 할머니가 BTS"라며 "박 할머니처럼 유튜브를 해서 돈도 벌고 유명해지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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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50+센터 유튜버 수업 모습. /성북구50+센터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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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실현·성취감·소통...‘유튜버’로 인생 이모작 꿈꾸는 5060
1인 미디어 세상에 5060 시니어 유튜버들이 쏟아지고 있다. 유튜브에서 시사 프로그램을 즐겨보던 5060 세대들이 콘텐츠 생산자로 나선 것이다. 이들에게 유튜브는 단절된 경력을 이어주는 매개(媒介)이자, 은퇴 후의 삶을 새롭게 꾸려나갈 ‘터전’으로 꼽힌다.

시니어 유튜버들은 학원이나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유튜버 수업'을 듣고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법을 배운 뒤, 개인 채널을 개설해 운영하는 식이다. 송파구의 한 여성문화센터에서 만난 한 달 경력 초보 유튜버 나경화(60·유튜브 채널 잠실언니)씨는 "2~3분 남짓한 요리 영상을 올리기 위해 새벽까지 밤을 지새우며 촬영하고 편집하는데, 피곤한 줄 모르고 정말 재미있다"고 했다. 나씨는 "잘봤다, 재미있다 등 영상에 달리는 댓글 1~2개에 마음이 터질듯이 설레인다"라고 했다. 아들 둘을 키워 낸 전업주부 나씨에게 유튜브는 자신의 목소리를 오롯이 전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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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서울 서초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초보 시니어 유튜버들. 왼쪽부터 유튜버 잠실언니(60), 분홍할매(72), 좋아좋아아줌마(53). /김세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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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나 자식의 출가 등 인생의 전환기를 맞은 이들은 ‘유튜버'로 삶의 2막을 열었다. 37년간 교직에 몸담았던 이명자(72·채널명 분홍할매)씨는 최근 치매예방 관련 콘텐츠를 올리는 유튜버가 되기로 했다.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는 어머니 성격에 유튜버가 딱 맞다"는 장녀의 추천 때문이다. 이씨는 "시간을 버리기보다는, 내가 아직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면서 "나이에 제약없이 도전할 수 있어 너무 좋다"고 했다.
유튜브는 세대간의 연결통로가 되기도 한다. "스마트폰 작동법도 제대로 몰랐었는데, 유튜버가 되니 신세계가 열린 느낌." 구연동화 강사인 백미애(53·채널명 좋아좋아아줌마)씨의 말이다. 백씨는 "유튜브로 인해 새로운 차원의 소통이 가능해졌다"면서 "(구연동화 강사 양성 수업을 주로 진행하고 있어) 아이들과 대면(對面) 동화구연 수업을 못한 지 오래됐는데 (유튜브를 통해) 아이들과 젊은 엄마들이 내 수업을 듣고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다"고 했다.

◇지자체 ‘50+ 유튜버 수업’ 인기…‘프로 유튜버’ 강의는 경쟁률 15:1
지방자치단체의 유튜버 강의도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시는 50대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유튜버 수업을 지역별로 진행하고 있다. 영등포구·노원구·성북구 등은 20명 수준의 정원이 모두 찬다고 한다. 서울시 50+ 유튜버 수업 관계자는 "영상·촬영 과정은 항상 (예비) 수강생들의 관심이 몰린다"며 "실제로 수강한 이들의 만족도도 높다"고 했다. 수강생들은 대부분 자녀들이나 손주들의 추천으로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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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를 넘어 ‘프로 유튜버’에 도전하는 이들은 사설학원으로 몰린다. 한 유튜버 학원의 저녁반 등록 경쟁률은 15:1이었다. 10명을 뽑는데 150명이 지원했다. 이 가운데 40~50대가 80%를 넘는다는 게 학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학원에 다니는 김윤철(45)씨는 "19년 관리직으로 일했는데, 경직된 생활에 자괴감이 많았다"며 "처음엔 취미생활로 생각했지만 1인 미디어 산업이 점점 발달하는 것을 지켜보며 나 역시 은퇴 후 인생 2막으로 유튜버를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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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구독자 시니어 유튜버 ‘박막례’의 저서. /위즈덤하우스


◇‘시니어 유튜버' 현상은 "노년층 소통과 소외의 양면"
전문가들은 시니어 유튜버들의 등장 배경으로 ‘성취감'을 가장 주된 이유로 꼽았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중장년층은 직장에서도 은퇴할 나이고, 아이들도 독립해 사회적으로 필요없는 존재라고 느끼는 시기"라면서 "유튜버 활동을 통해 다시 사회에서 역할을 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라고 했다. 사회적 기여가 끝나가 우울감을 느끼는 중장년층들이 ‘유튜버'라는 새로운 도전을 통해 다시 활력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유튜버 붐’은 노년층 소외 현상이 반영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5060세대에서 유튜브가 인기를 끄는 것은 이들이 기성 미디어로부터의 소외감을 유튜브를 통해 해소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성수 문화평론가는 "TV에는 60대 이상을 겨냥한 콘텐츠가 많지 않지만, 유튜브를 보면 ‘각설이’ 등 시니어들이 즐길 거리가 많다"며 "중장년층의 유튜버 데뷔는 시니어들이 스스로 원하는 문화를 구축하는 능동성이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
유튜버 데뷔는 이런 풍조에서 시니어들이 스스로 원하는 문화를 구축하는 능동성을 보여준다"고 했다.

[최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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