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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이대근 칼럼]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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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갈등은 과거사라는 특정 영역에 국한된 쟁점에서 비롯됐다. 그것도 우호 국가 간에 발생한 일이다. 제한된 분야에서 제한된 수단을 통해 제한된 목표를 추구하는 게 합리적이다. 아베 신조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양국관계 전반을 흔드는 도발을 했고, 그 때문에 전쟁 수사가 난무한다.

경향신문

하지만 이건 전쟁이 아니다. 양국이 모든 영역에서 모든 자원을 동원해 국가 대 국가로 맞서야 할 당위성, 불가피성이 없다. 양국에서 각각 정부·시민사회·개인이 똘똘 뭉쳐 국경선을 두고 대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양국 모두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다. 한국도 일본도, 정부·시민사회·개인 사이 아무런 틈이 없어서, 밖에서 보나 안에서 보나 국가라는 하나의 단위로만 관찰되는, 완전한 통일체가 아니다. 한·일 각각 내부에는 다른 견해와 관심, 이익을 가진 개인과 집단이 층층이 쌓여 있고 그들은 서로 경쟁도 하고 불화하기도 한다. 양국이 갈등하는 상황이라 해도 이런 내부 구조는 변함이 없다. 그게 바로 한·일이 민주주의 체제인 이유이다.

민주주의 체제 간에서는 국경을 가로질러 교차 대립하는 일이 흔하다.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둘러싼 논쟁이 좋은 예다. 철거를 결정한 일본 당국에 맞서 양국의 예술가와 시민들이 표현의 자유 문제로 갈등하고 있다. 이 대치선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박근혜 정부가 블랙리스트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때 정부와 예술가가 갈등했던 것처럼 대립의 축은 상황에 따라 이동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혐한에 혐일로 대응, 인종주의에 인종주의로 맞서고, 일제 볼펜·일식집·사케와 같이 일본 관련 모든 것을 부정하며 한국 대 일본으로 대립 축을 못 박는 것은 문명사회에 어울리는 태도가 아니다. 일본은 모든 악덕의 집합체이며 일본 전면 부정이 곧 선이라는 생각은 마니교적 이분법일 뿐 이다.

다행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혜로워진 시민들은 일본 아닌 아베가 문제임을 깨닫게 되었다. 역사를 거꾸로 세우는, 아베의 반동은 아베를 표적으로 삼는 것의 적실성을 입증한다. 마침 아베는 지난 15일 종전 기념사에서 일본인 300만명의 희생이 조국의 장래를 걱정한 결과였다고 했다. 하지만 같은 날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일본 군국주의가 300만명을 희생시켰다는 것이 더 역사적 사실에 부합한다.

아베와의 싸움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생각해야 할 게 있다. 우리 사회가 한·일 분쟁의 와중에도 퇴행의 길로 내몰리지 않으면서, 더 성장하고 더 건강해질 수 있는지 성찰하는 일이다. 일본과 이런 경쟁을 할 수 있는지 묻는 것과도 같다. 누가 역사 앞에 더 정의로운가? 누가 더 평화를 추구하는가? 누가 더 다양성을 존중하는가? 누가 더 불평등 해소에 적극적인가? 누가 더 소수자의 권리를 존중하는가?

정부·여당은 그런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경제 보복에 대응한다며 주 52시간 노동제,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유보하거나 적용 예외로 하는 비상책을 내놓았다. 세 가지는 악명 높은 장시간 노동, 가습기 살인, 재벌 집중의 반사회적 현상을 치유하기 위해 높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도입한 제도다. 이해 당사자 간 이익과 손실, 산업 발전과 생명 존중, 기업 경쟁력과 재벌 개혁이 겨우 균형점을 찾아서 이룩한, 많지 않은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아베와의 싸움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취급한다. 그사이 비리혐의로 재판 중인 한국 최고 재벌은 나라를 살릴 구세주 대접을 받는다. 아베가 한국에서 이룬 역전극이다.

만일 세 가지를 내주고 이겼다고 해보자. 그 대가로 얻은 것은 노동 조건의 악화, 기업의 눈먼 이윤추구, 재벌 집중 심화다. 그것이 무슨 일을 낼지 우리는 잘 안다. 우리 안에 꽈리를 틀고 앉아 우리를 할퀴고 상처를 낸다. 위기 때 약자를 보호하면서 사회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강자는 더 강해지고 약자는 더 약해지면서 사회가 약해진다. 노동과 생명과 정의를 기득권 방패막이로 써먹은 대가는 분명하다. 아무나 흔들 수 있는 나라임이 아베에 의해 드러나는 것이다. 아베와의 싸움에서 지는 것이다. 분명히 해두자. 그건 아베나 일본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 때문에 지는 것이다. 우리는 안과 밖 두 개의 전선에서 모두 승리해야 한다. 상처뿐인 승리가 우리의 목표일 수 없다.

한국은 일본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아베와 싸우고 한·일이 갈등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더 성숙해졌으면 한다. 일본도 성숙해지면 좋겠다. 그러면 양국관계도 성숙해지지 않을까?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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